그리고 자연스레 엘지트윈스의 원년팬이 되었지요.
원래 가벼운 욕조차도 하지 않는 성품의 친구라
암흑기를 겪으면서도 단 한 번 선수들의 욕은 커녕,
오해를 살만한 소식조차 입에 담지 않았던 친구입니다.
어제 경기를 보러 그 친구와 함께 갔습니다.
206블럭 상단쪽에 앉아 함께 열심히 응원했습니다.
아쉬웠던 순간, 순간이 지나고... 경기는 끝났습니다.
가져간 응원도구, 유니폼, 경기 중에 생긴 쓰레기를 챙겼지요.
나오는 길에 중앙출입구를 보니 많은 사람들이 모였더군요.
경기 중에 피곤한 모습이 역력했던 친구가 좀 걱정이 되어
9회말 투아웃에 나가자고 했더니 친구는 거절했습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 응원할 거라면서 말이죠.
그랬던 그 친구가 갑자기 중앙출입구 쪽을 향해 가면서
주장 한정판 레플을 다시 꺼내 입더군요.
저희는 20대 초, 중반의 청년들과 고등학생에 둘러 쌓여서
우리 선수들에 대한 욕설이나 조롱을 고스란히 들었습니다.
선수들이 나오기를 기다린 것, 도망갔다는 소식에 대한 배신감 때문에
모인 사람들의 분노 수위는 점점 더해 갔습니다.
팬들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군중심리가 더해져 고성이 오가는 것이 싫었는지
친구는 자리를 옮기자고 제게 말했어요.
뒷쪽에서 한 시간 가량을 기다리다 친구는 저를 먼저 보냈습니다.
집이 멀어서 어쩔 수 없이 친구를 혼자 남겨두고 저는 나왔지요.
차를 가져오지 않은 것이 후회되더군요.
집에 들어오자마자 친구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친구는 열한시가 다 되어서 나왔다고 제게 말했습니다.
친구가 자신의 레플을 주장의 차에 올려두고 왔다네요.
그 레플... 친구 생일선물로 다른 친구와 함께 제가 선물한 건데ㅠ_ㅠ
주장의 한정판 저지를 보고 뛸 듯이 좋아했던 친구가
올해는 그 레플만 입고 야구장에 다니던 친구가 그랬다네요.
청룡과 트윈스를 사랑했던 23년의 마음을 유니폼에 담아
주장의 차에 두고 돌아왔다며 친구는... 울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원하던 것은 성적이 아니라면서
그냥 최선을 다하는 것 뿐이었다면서
이 팀을 사랑했던 날 중, 이렇게 비참한 날은 처음이라 하네요.
그리고 한동안 야구를 끊을 거라고 제게 말했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 건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친구 레플 사진과
그에 달려 올라오는 추측성 댓글들 때문입니다.
덤으로 친구의 진심을 오해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알리고 싶었습니다.
친구는 쌍마를 찾지 않으며 인터넷을 잘 하지 않기 때문에
친구 몰래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어 용기를 내었습니다.
저 역시 쌍마를 자주 찾지 않지만 친구와 통화를 하고
이곳에 와서 올라오는 글들을 살펴보니
이미 친구의 마음은 누가 가져갔나보네요....
어제 통화 중,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떡하냐고 친구에게 물었더니
친구는 그걸 가져간 사람이라도 열심히 응원해서
팬들에게 감동을 주는 야구를 선수들이 할 수 있으면 된 거라더군요.
혹시라도 그 레플 가져가신 분이 계시면
그 친구의 사랑과 열정을 가져가신 만큼
더 열심히 이 팀과 선수들을 응원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선수들이 팬들에게 기쁨을 주는 야구를 할 수 있도록....
그리고 친구에게 제가 새 레플을 선물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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