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지난 토요일은 광복 70주년을 맞이한 날이었습니다. 전국에서 광복 70주년을 축하하는 다양한 행사가 벌어졌죠. 박근혜 대통령도 경축사를 발표했는데요. 그 경축사의 한 구절 때문에 논란이 일어났죠. 바로 “광복 70주년이자 건국 67주년을 맞는 역사적인 날”이라고 언급한 대목 때문입니다.
MC: 광복 70주년이자 건국 67주년... 무엇이 문제죠? 잘 모르겠네요.
차: 그렇죠? 대부분의 청취자들께서도 마찬가지이실 텐데요. 광복 70주년이라는 말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패망하면서 우리 민족이 해방을 맞이하였으니 2015년 8월 15일은 광복 70주년이 되는 것이죠. 문제는 건국 67주년이라는 말입니다.
MC: 지금부터 67년 전이면 1948년 8월 15일이고 그 때 대한민국이 탄생했잖아요? 그것을 기념하자는 게 잘못인가요?
차: 아닙니다. 그것은 당연히 경축해야할 일이죠. 문제는 건국이라는 단어입니다. 1948년 8월 15일 당시의 기록 사진을 살펴보면 한결같이 건국이 아닌 ‘대한민국 정부수립’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에도 건국이라는 표현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건국은 엄연히 다른 이야기거든요.
MC: 1948.8.15에 우리 정부가 처음 수립되었으니 그게 곧 건국 아닌가요?
차: 그렇게 생각하기가 쉽죠. 하지만 그게 그렇지 않습니다. 먼저 건국이란 새로 나라를 세웠다는 말인데요. 따라서 건국이라는 표현을 쓰게 되면 대한민국은 67년짜리 신생 국가가 됩니다. 반면 광복이라는 말은 ‘빛을 다시 되찾았다. 국권을 다시 회복했다’는 의미죠. 우리의 역사에서 대한민국은 갑자기 튀어나온 나라가 아닙니다. 단군이 고조선을 세운 이후 비록 왕조는 여러 번 교체되었지만 고래로부터 국가의 전통을 이었다는 의식만은 바뀌지 않았죠. 일본에 의해 국권이 피탈 되었을 때도 ‘망국일’이라 하지 않고 ‘국치일’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반드시 국권을 회복할 것이라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의지로 많은 선열들이 독립운동에 나섰고 그 결과 광복을 맞이할 수 있었던 거죠.
MC: 그러고 보니 우리는 이미 개천절을 지키고 있군요. 하지만 의미를 대한민국에만 한정한다면 건국이라는 표현을 쓸 수도 있는 것 아닐까요?
차: 물론 좁은 의미로 사용한다면 그렇게 주장할 수도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대한민국이처음 역사에 등장한 것은 1919년 4월 13일이거든요. 바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날이죠. 그래서 1948년 제정된 제헌헌법 전문에도 분명히 “기미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라고 명시했습니다. 이러한 정신은 지금까지 이어져 현재 헌법 전문에도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되어 있고요. 또한 1948년 당시 관보를 찾아보면 연도 표기를 모두 대한민국 30년으로 하고 있습니다.
MC: 그러니까 설령 대한민국 건국이라는 말을 쓴다 하더라도 1948년 8월 15일이 건국기념일이 될 수는 없다는 말씀이군요.
차: 그렇습니다. 다른 나라의 예를 살펴봐도 건국기념일이라는 명칭을 쓰는 나라는 찾기 힘듭니다. 미국만 해도 영국으로부터 벗어난 7월 4일을 인디펜던스데이(Independence Day), 그러니까 독립기념일이라고 하지 건국기념일이라고 하지 않죠. 프랑스는 7월 14일을 혁명기념일로 지키고 있고, 중국 역시 건국기념일이 아닌 국경절(National Day)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유구한 역사적 전통을 과시하기 위해서겠죠.
MC: 듣고 보니 건국 67주년이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고민해 봐야겠네요.
차: 물론 역사 전공자도 아닌 대통령이 이런 논란을 모두 알고 건국 67주년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표하는 것은 혹시 이러다가 광복절이 건국절로 바뀌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광복절은 1945년 8월 15일 이루어진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1948년 8월 15일의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모두 기념하는 날입니다. 두 사건 모두 우리 역사에서 너무나 중요한 순간이기 때문에 경중을 논할 수 없는 일이죠. 건국이라는 말로 해방과 정부수립을 모두 기릴 수는 없습니다.
MC: 그러네요. 건국이라는 말에는 해방의 의미는 담겨있지 않죠.
차: 그렇게 되면 임시정부와 해방을 위해 목숨까지 바쳤던 선열들의 공훈이 격하되는 것입니다. 해방을 위한 모든 노력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공을 세운 것만 못하게 되는 것이죠. 나아가 조금 비약하자면 비록 친일을 했다 하더라도 대한민국 탄생에 기여했다면 용서할 수 있다는 논리로 연결될 수도 있습니다. 청취자들 중에는 제가 괜한 걱정을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와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미 지난 2008년 국회에서는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려는 법안이 발의된 적도 있었죠. 그리고 한 명사는 광복절을 맞이해서 모 신문에다가 “해방 기념일은 이제 그 빛을 잃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MC: 건국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해방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네요.
차: 광복 70주년이 지난 지금도 김원봉을 비롯한 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친일파들에 대한 단죄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때에 광복이 먼저냐 건국이 먼저냐를 따지는 것은 어쩌면 공허한 논란인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그보다 역사의 진실을 바로 세우려는 노력이 더욱 필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출처] 110.건국 67주년- 건국이 아니라 정부수립(2015.8.19)|작성자 개구장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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