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광복 70주년 아닙니까? 영화 흥행으로 인해 독립운동을 했던 분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만, 그만큼 지금까지 무관심했던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네요.
차: 그래서 오늘은 영화 ‘암살’에서도 비중 있게 등장하여 가장 큰 화제가 되고 있는 인물 약산 김원봉 선생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MC: 김원봉이라면 지난 시간에 잠깐 이야기 하신 것 같아요. 일제가 김구 선생의 현상금 60원보다 훨씬 많은 100원의 현상금을 매겼다고 하셨죠?
차: 그렇습니다. 단연 일제가 가장 두려워했던 독립 운동가였다고 말할 수 있죠. 김구보다 먼저 무장투쟁을 시작했죠. 김구와 함께 1930년대 이후 중국 내 독립운동의 양대 산맥으로 불린 김원봉은 1898년 밀양에서 태어났습니다. 밀양 사람들은 두 명의 역사적 인물을 존경한다고 하죠. 한 명은 지조를 지킨 사림의 거두 김종직이고, 다른 한 명은 일본과 맞서 싸운 것으로 유명한 승병대장 사명당으로 밀양에는 그를 기리는 표충사까지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김원봉은 어릴 때부터 지조와 민족의식이 투철했습니다. 밀양공립보통학교에 다니던 소년 김원봉은 메이지 천황의 생일날에 동창들과 함께 일장기를 변소에 던져 버리기도 했죠.
MC: 역시 어릴 때부터 남다른 모습을 보였군요. 하지만 학교에서는 난리가 났겠는데요.
차: 맞습니다. 학교에서 퇴학당했죠. 이후 사립학교인 동화중학 2학년으로 편입하였는데, 여기서 김원봉은 민족의식이 투철했던 교장 전홍표에게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제가 전홍표를 위험인물로 인식하고 동화중학을 폐쇄시키는 바람에 이번에도 학업을 온전히 마칠 수 없었죠. 그래도 김원봉은 학업을 게을리 하지 않고 표충사에 들어가 공부하다가 서울 중앙학교로 진학합니다. 이곳에서 후일 독립운동을 함께하는 많은 동지들을 만나게 되고 중국 유학의 기회도 얻었죠. 이 무렵 김원봉에게 큰 영향을 미친 또 한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스승이자 고모부인 황상규인데요. 그는 대구에 본부를 둔 비밀결사 대한광복회의 일원이었습니다. 후일 대한광복회가 일제에 의해 발각되고 총사령 박상진이 체포되어 순국하자 만주 길림으로 가서 의군부를 조직하고 무장 투쟁을 준비했죠. 그리고 김원봉이 의열단을 결성할 때도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였습니다.
MC: 그렇다면 의열단은 대한광복회를 계승한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그리고 보면 무장 투쟁을 위한 비밀 조직이라는 점에서 유사한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차: 그렇습니다. 김원봉은 중국 칭따오의 덕화학교, 난징의 금릉학교 유학 이후 마지막으로 서간도 삼원보의 신흥무관학교로 가서 공부하게 됩니다. 잘 아시다시피 신흥무관학교는 이회영 일가가 전 재산을 털어 세운 독립운동가 양성을 위한 사관학교였죠. 대부분의 독립 운동가들이 이곳 출신입니다. 김원봉 역시 여기에서 13명의 동지들과 함께 의열단을 결성하였죠. 1919년 3.1 운동 직후로 그의 나이 22살이었습니다. 김원봉은 더 이상 평화적인 방법으로는 조선의 독립을 실현할 수 없다고 보고 폭력 투쟁을 내세웠죠. 하지만 무고한 불특정 다수를 살상하는 테러는 결코 아니었습니다. 조선의 독립을 위해 ‘5파괴, 7가살’이라는 명확한 타도 대상을 정했습니다.
MC: ‘5파괴, 7가살’이라면 파괴해야 할 5가지 시설과 죽여도 되는 7부류의 사람들이라는 뜻인가요?
차: 그렇습니다. 5가지 파괴대상은 ①조선총독부, ②조선인의 고혈을 빠는 동양척식주식회사, ③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사, ④각 경찰서, 그리고 ⑤기타 왜적의 주요 기관이었고요. 7가살은 ①조선총독 이하 고관, ②군부 수뇌, ③대만 총독, ④매국노, ⑤친일파 거두, ⑥적의 밀정, ⑦반민족적 토호들이었습니다. 여기에 역사가이자 독립운동가 신채호는 이들의 활동 지침이 되는 ‘조선혁명선언’을 작성해 주었죠. 이후 의열단원들은 지침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1920년 박재혁이 부산경찰서를 공격하여 서장을 폭사시켰고요. 1921년 조선총독부에 폭탄을 던진 김익상, 1923년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지고 1,000여명의 경찰과 대치했던 김상옥, 1924년 일본 천황을 향해 폭탄을 던진 김지섭의 의거가 대표적이죠. 한편 1925년 동양척식주식회사와 조선식산은행에 폭탄을 던진 나석주는 종래에 의열단원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실상은 김구와 이동녕의 지령을 받은 임시정부 요원인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의열단의 거사에 영향을 받은 것은 확실하죠.
MC: 의열단의 활약은 3.1 운동 이후 실의에 빠진 우리 민족에게 큰 자극이 되었겠어요. 아직도 누군가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렸으니까요.
차: 그렇습니다. 그것이 바로 김원봉과 의열단이 의도한 것이죠. 자신들의 거사가 심지가 되어 언젠가는 모든 민족이 한꺼번에 일어설 수 있는 날이 오리라 믿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김원봉은 암살투쟁을 넘어 군대를 창설하여 조직적으로 맞서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1926년 김원봉은 의열단원 24명과 함께 중국 국민당 정부가 세운 황포군관학교에 입학하게 됩니다. 이곳에서 군사 전략과 무기 제조법 등을 익히고 장제스, 저우언라이 등 중국의 지도자들과 교분을 쌓았죠. 그리고 그들의 지원을 받아 조선혁명간부학교를 설립하여 본격적으로 독립군을 양성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이곳에서 150여명의 인재들이 교육을 받고 독립운동의 중추적 역할을 하였습니다. 우리 고장의 자랑스러운 민족시인 이육사도 그 중 하나죠. 김원봉은 이들을 기반으로 1938년 중국 관내에서 등장한 최초의 조선인 부대, 조선의용대를 조직합니다. 조선의용대는 후일 임시정부의 한국광복군에 편입되어 한국광복군 제1지대로 재편됩니다.
MC: 의열단, 조선혁명간부학교, 조선의용대. 정말 김원봉은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가장 치열하게 일제에 맞선 큰 산이었군요.
차: 그렇습니다. 그의 나이 48세였던 1945년, 드디어 민족의 해방이 이루어지고 26년만에 고국의 땅을 밟게 됩니다. 김원봉은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동지이자 아내였던 박차정의 유해를 들고 고향 밀양을 방문했는데, 규모도 크지 않은 중소도시임에도 그를 보기 위해 10만 명의 인파가 운집했고 그의 발아래에는 레드카펫이 깔렸다고 하죠. 그야말로 열렬한 환영이었습니다.
MC: 얼마나 감격스러운 순간이었겠어요. 수십 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갔겠어요.
차: 하지만 김원봉의 영광은 거기까지였습니다. 1947년, 그는 좌익 빨갱이라는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었습니다. 김원봉의 체포를 명령한 사람은 친일부호로 지명되어 대한광복회에 의해 죽임을 당한 장승원의 아들 장택상 수도경찰청장이었고, 체포한 사람은 악명 높은 친일 고문 경찰 노덕술이었습니다. 특히 노덕술은 7가살의 명단 위에 있던 사람인데 뺨까지 때리면서 김원봉을 조롱했습니다. 김원봉은 “내가 일본 놈과 싸울 때도 이런 수모를 당하지 않았는데, 해방된 조국에서 악질 친일파 경찰 손에 수갑을 차다니 이럴 수가 있냐?”면서 사흘 밤낮을 통곡하였다고 합니다. 이후 월북을 택하게 되죠. 하지만 북한에서도 김원봉은 달가운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김일성은 처음에는 환영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자신과 비교할 수 없이 큰 존재인 민족영웅 김원봉을 부담스러워 했죠. 김원봉은 1958년 김일성 1인 독재가 강화되는 와중에 숙청되었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국제간첩 혐의로 체포되어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갔고, 분을 이기지 못해 청산가리를 먹고 자살했다고 하죠.
MC: 민족 영웅의 최후가 정말 비참했네요. 평생을 민족의 독립에 몸을 바쳤지만 남과 북 모두에서 환영받지 못했어요.
차: 뿐만 아니라 남쪽에 남겨진 김원봉의 가족들은 이후 빨갱이 가족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습니다. 6.25가 터지자 김원봉의 동생 4명이 북한에 협조할 가능성이 있다하여 산골짜기에 끌려가 총살당했고, 아버지는 유폐되었다가 굶어죽었습니다. 현재 생존해 계신 막내 여동생 김학봉 여사는 당시 어린 아이라 하여 겨우 살아났다고 합니다. 이후 북한에서 활동했던 김원봉의 흔적은 철저히 지워졌고, 남한에서는 월북하여 북한에서 최고위직을 역임했다는 이유로 독립운동가로 정식 서훈조차 받지 못했죠. 철저히 잊혔던 김원봉 이름 석 자는 광복 70주년이 된 지금에서야 영화를 통해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제라도 그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동시에 걸맞은 대우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출처] 109.일제가 가장 두려워했던 독립운동가-의열단장 김원봉(2015.8.12)|작성자 개구장이들
5865명이 읽었어요. 3.138.175.18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