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마을에 루나라는 예쁜 토끼처녀가 있습니다.
분홍색 가구가 늘 갖고 싶은 그녀는, 하루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가 또 하루는 가수가 되고 싶다고 말을 바꾸는 식으로 오락가락하는 연예인 지망생이에요. 전체적으로 허영기가 좀 있는 연예인 지망생 여자애의 클리세 같은 성격인데, 그래도 다정한 면이 있어서 생활고에 시달린다고 하면 가지고 있던 옷을 팔아 생활비에 보태라고 주는 선심을 쓰기도 합니다. (그러나 80벨짜리 옷을 줘놓고, 몇 천벨로 가격을 후려친 벽지랑 바닥재를 팔아먹는 악덕 상흔을 발휘하기 때문에 어쩐지 낚였다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어느날 이었습니다. 저희 마을엔 안쵸비씨라는 새 동물 친구가 이사왔어요. 생긴 걸로 봐선 참새 내지는 종달새 쯤으로 되보이는 친구에요. 놀러갔더니 막 짐을 풀고 있는 중이라며 짐 정리 되는 내일 오라더군요. 막 돌아서 나오는 길에 루나를 만났습니다. 그녀는 상기된 얼굴로 내게 말했어요.
"너 혹시 안쵸비 노래 들어봤니? 역시 내 라이벌 감이라니까."
빠르기도 하다 싶었어요. 안쵸비씨, 짐 정리 한다고 나한텐 말도 못 걸게 하더니 루나에겐 노래까지 불러 줬구나 하는 배신감이 들기도 했구요. 그런데 안초비씨에 대한 루나의 관심은 다소 집요한 구석이 있었어요. 그녀는 저를 볼때마다 느낌표를 띄워 사람을 불러세우고는 계속 같은 말을 했어요.
"너 혹시 안쵸비 노래 들어봤니? 역시 내 라이벌 감이라니까."
그녀는 안쵸비씨가 몹시 신경 쓰이는 듯 했죠.
며칠 뒤. 다리 위에서 낚시를 하고 있던 저는 체리 숲 뒤를 지나고 있는 안쵸비씨를 보았습니다. 그런 그의 뒤로 루나가 따라가 말을 걸었어요. 두 친구들은 잠시 이야기를 나누더니, 안쵸비씨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휘파람 소리가 낭랑한 예쁜 노래였어요.
어라. 그런데 이게 왠 일일까요? 노래가 끝나자 루나가 화를 내기 시작합니다. 동숲 초보인 저는 동물이 화를 내는 걸 처음 봐서 신기하게 구경했어요. 낚시는 안중에도 없었죠. 둘은 투닥 투닥 싸우더니 뾱뾱 소리가 나는 수증기를 내뿜으며 헤어졌습니다. 저는 쫓아가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봤어요. 그랬더니 안쵸비씨는 '사소한 걸로 화 내는 거 이해할 수 없어'라고 했고, 루나는 '섬세함을 이해못하다니 최악이야'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안쵸비씨는 사라졌습니다.
진짜에요. 그냥 사라졌어요. 이사 간다는 인사도, 하다 못해 편지도 없이 홀연히 사라졌어요.
매일 매일 동숲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는 저는 고작 하루만에 사라져 버린 안쵸비씨의 행방에 당황해 하며 숲을 뒤졌어요. 안쵸비씨는 편지함에도 없었고, 집도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아예 이사도 안온 것처럼 완벽히 사라졌어요.
이건 무슨 에러가 아닐까, 내가 뭘 잘못 한 게 아닐까. 당혹해 있는 저에게 루나가 다가와 말을 걸었습니다. 그러더니 자기가 어떻게 보이는지를 묻더군요. 날씬하다고 했더니 후훗 하고 얼굴이 빨개진 그녀는 선물로 소파 하나를 던져 줍니다. 평소엔 고작해야 옷이나 자패를 떠넘기고 벽지로 폭리를 취하던 그녀가 웬일로 가구를 선물로 주네요. 초보인 르페이는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가구를 방에 펼쳐 봤습니다. 어여쁜 빨간 소파가 방 안에 펼쳐 집니다. 예쁜 소파에요. 아주 예쁜 소파. ....낯이 익은 소파입니다. 안쵸비씨의 방에 있던 소파거든요. 너무 예뻐서 달라고 졸라 볼까 생각했던 거라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요. 이건 안쵸비씨의 소파가 확실해요.
어라?
당황한 저의 머릿속에서 안쵸비씨와 관련된 기억이 차례차례 지나갑니다. 이사 온 지 이틀만에 사라진 안쵸비씨에 대해 제가 기억 하고 있는 것은 저 위의 이야기가 전부예요. 안쵸비씨는 어디로 간 걸까? 그것을 고민하던 제게 새로운 의문이 생겼습니다. 이제는 다른 게 궁금해요. 안쵸비씨가 어디 간게 궁금한 게 아니라, 루나가 뭘 했는지가 궁금해요.
늘 오디션을 입에 달고 다니는 루나.
안쵸비씨가 이사오자마자 그를 강하게 의식했던 루나.
안쵸비씨가 사라지기 직전에 같이 있었던 루나. 그리고, 그녀와 싸운 뒤 사라져버린 안쵸비씨.
어쩌면 저희 마을엔 록시 하트가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전 루나를 볼 때마다 그렇게 생각해요. 안쵸비씨는 대체 어디로 갔을까요.
2.
저희 마을엔 샐리라는 이름의 어여쁜 코끼리처녀가 있습니다.
새침떼기 아가씨라는 느낌의 유카리 양이나, 록시 하트를 연상시키는 루나와 달리 샐리는 얌전하고 착한 양가집 규수라는 느낌이 강해요. 말도 늘 존댓말을 하고, 별명이 아니라 본명을 불러주고, 늘 물뿌리개를 들고 다니면서 꽃을 가꾸거든요. 조건 없이 덥석 덥석 선물도 잘 주는 아가씨라 전 그녀를 '좋은 처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어요. 저는 우연히 호탕한 사지마씨와 그녀와의 이야기를 엿듣게 됩니다.
"저는 성격에게도 색깔이 있다고 생각해요."
샐리양은 말했습니다.
"그래. 있을꺼야. 그런데 난 무슨 색일까? 설마 검은 색은 아니겠지?"
검은 색은 절대 싫다는 기색으로 사지마씨가 대답했어요.
"사지마씨는 무지개 색이에요."
샐리양은 대답했지요.
"역시 그렇지?"
사지마씨는 안심한 기색으로 그렇게 대답했죠.
호호호. 사랑스럽게 웃은 샐리양은 조곤 조곤 덧붙입니다.
"그러나 무지개 색은 모두 합치면 검은 색이 되게 마련이지요."
무슨 소리를 하는 지 알지 못하는 듯 사지마씨는 그래 그래 하하하 웃고 맙니다. 가만히 엿듣던 저는 조금 오싹했어요. 샐리양 웃으면서 그런 말을 하다니 성격 있어요; 어쩌면 동숲 친구들 중 최강의 존재는 샐리양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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