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시지 않아도 돼요. 안심하세요."
"그럼 내가 아까 있던 곳은..."
"다시 갈까요?"
'그럴 필요는 없...'
"욱..."
잠시 진정하고 주위를 천천히 보던 엘란츠가 조금 먼 곳의 바닥 쪽에서 무언가 발견했다. 붉은색 가득한데 그 틈으로 다른 색이 섞여있었다. 그게 무엇인지 이해하는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급하게 고개를 돌렸지만 이미 늦었다.
"웨에...─"
최근 먹은 것은 아루잔이 주었던 알약 외에는 없었기에 헛구역질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소중한 수분을 입 밖으로 뱉어내게 되었다.
"괜찮으세요? 멀미하시는 건가요?"
걱정스러운 얼굴로 변한 아루잔이 말했다.
"아니, 아니야. 으..."
아루잔을 향해 손을 간신히 휘저으며 고개는 여전히 숙인 채 말하는 엘란츠.
"그냥 아무것도 안 보이게 해줘. 빨리."
엘란츠의 말에 순식간에 다시 어두운 공간으로 변한다.
"왜 그러신 건가요?"
"못 보겠어."
"혹시 높은 곳을 무서워하셔서 그런가요?"
"아니야. 욱..."
엘란츠는 다시 구토감을 느꼈지만 최대한 참으려고 노력했다. 그와 동시에 아루잔이 죽인 것을 인간이라 표현하지 않고 달리 말할 방법을 찾기 위해 생각해야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자신에게 구토감을 일으키는 존재를 설명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러나 역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엘란츠는 아루잔에게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떨어질 때 부딪친 걸..."
"네? 아..."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는 듯, 아루잔의 얼굴이 종이 안에서 크게 끄덕인 후 활기차게 외쳤다.
"표면 정화를 실시하겠습니다!"
"정화 완료!"
말이 끝나자마자 곧장 다시 활기차게 외치는 아루잔이다.
"다시 외부의 모습을 비춰도 될까요?"
여전히 고통스러워하는 엘란츠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아루잔, 그는 아직 다시 밖의 모습을 볼 준비가 되지 않았기에 손바닥을 아루잔이 볼 수 있게 들어 좌우로 흔들었다.
"알겠습니다!"
힘차게 대답하는 아루잔. 그런 그녀의 힘찬 대답은 엘란츠가 원하던 방향과 거리가 멀었음을...
다시 주위의 풍경이 드러난 후에야 그는 깨달았다.
'어째서...'
그나마 다행이라면 표면 정화라는 것이 완벽하게 작동하여 보고 싶지 않았던 광경을 더 이상 볼 필요가 없다는 점이었다. 다만, 거기에는 작은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아주 사소한 문제였다.
"아직 준비가 안됐다고 했는데 어째서..."
"네!? 전 빨리 열어 달라고 하신 줄 알았어요!"
괴로워하던 엘란츠의 숙인 고개로 보이는 바닥, 그 아래에 있던 작은 인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다시 나타났을 때는 조금 더 많은 인간이 나왔다.
겉으로 보기에는 작은 건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숫자는 어마어마했다.
"세상에... 저게 다 뭐야."
"경고! 원시 무기 확인!"
"원시 무기? 뭘 말하는..."
아루잔을 바라보려 고개를 돌렸을 때, 아루잔의 얼굴 대신 나타난 것은 바로 밑 인간들의 손에 들고 있는 무기였다. 각각 다양한 총들을 들고 있는 모습이 확대되어 나타났다.
뒤이어 무기를 들고 있던 손이 위로 뻗는다.
'설마.'
공기를 찢는 굉음의 연속.
탕─! 탕─! 탕─! 탕─! 탕─!
땅 아래, 지상에 있는 인간들이 아루잔을 향해 사격을 가하는 소리다.
"으앗!"
아직 익숙하지 않은 엘란츠는 자신에게 날아드는 듯한 총알 세례에 놀라 얼굴을 팔로 가로막으며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뒤로 펄쩍 뛰었다.
"아파! 아파! 아파!"
정작 아프다고 소리친 것은 아루잔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공격이 통한 것은 아니었다. 되려 쓰러진 쪽은 아래 있는 인간들의 일부였다.
이전에 모래 한 톨을 튕겨내었던 것처럼 그들이 쏘아낸 총알 역시 쏘아졌을 때와 비교하여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튕겨낸 것이었다. 그럼에도 아루잔은 계속해서 아프다고 소리치며 우는 얼굴로 이리저리 날뛰었다.
진짜 날뛴 쪽은 엘란츠가 보기에는 빛나는 하얀 종이였지만.
자신의 몸을 살피고 아무렇지 않다는 걸 확인한 엘란츠가 아루잔을 보고 바로 아래 인간들의 모습을 확인한다.
'익숙해지려면 힘들겠어... 어머니, 도대체 이건 무슨 일인가요. 게다가 저건 왜 저렇게 아프다고 하고 있는 걸까요.'
점점 시끄러운 소리가 줄어든다. 아루잔도, 총성도 사라져갔다.
"어떻게 할까요! 대응해도 되겠습니까?"
"이미 다 끝난 것 같은데..."
바로 아래 쓰러진 인간들을 보며 씁쓸한 표정을 짓는 엘란츠와 화난 표정을 지어 보이는 아루잔이었다.
"아직 생명 활동이 정지되지 않은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렇게 할 필요 없을 거야. 저 상태로는 더 이상 살아남기 힘들어."
한번 다치게 되면 더 이상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한 곳. 그것이 지금의 지구였기 때문이다.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길도 없고, 치료한다고 해도 그 후유증은 심하다. 정상적인 상태에서도 살아남기 힘든 상황 속이었기에 부상은 죽음과도 같았던 것이다.
그랬기에 엘란츠는 쓰러진 이들을 보며 동정하는 마음을 가졌지만 길게 가지 않았다. 그들은 영양 상태도 좋았고, 무장도 잘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너무나 뻔했다.
"그보다, 아픈 거야?"
"네? 이상하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아하하..."
땀방울과 함께 웃는 눈, 아치형으로 올라간 입으로 곤란하다는 얼굴이 된 아루잔.
"그래도 괜찮아요! 다 튕겨냈으니까요."
"튕겨냈는데 왜 아픈 거야?"
"아, 그게 말이에요!"
"경고! 원시 무기 확인!"
말을 하려다 말고 경고를 하는 아루잔의 말에 곧장 바닥으로 무엇이 나타났는지 확인하는 엘란츠였다. 하지만 눈으로 그것을 미처 확인할 수 없었기에 아루잔을 바라보았고, 그녀는 곧장 자신의 2차원 평면 얼굴 대신 엘란츠가 보고자 하는 것을 보여주었다.
덩치가 거대한 인간이 어깨 위로 들고 있는 물건은 이전에 본 적 없던 물건이었다. 기다란 원통으로 이루어진 쇳덩어리. 그걸 들고 있는 인간의 입은 꾸준히 움직이고 있었다.
엘란츠는 목에 선 핏대를 보고 뭔가 외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라고 말하는 건지 들을 수 있을까?"
"확인하겠습니다!"
-"...버리고 떠난 걸로 모자라서 다 죽이러 왔냐! 오냐, 이 똥포맛도 한 번 봐라!"-
선명하게 들리는 굵은 여성의 목소리였다. 믿기지 않았다. 어딜 봐도 여성으로 보이지 않는 체구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엇이란 말인가. [버리고 떠난] 이란 것은.
엘란츠는 이제 곧 날아올 [똥포]라는 것을 아루잔이 얼마나 아프다고 외칠지 궁금해졌다.
"괜찮을까?"
"네? 물론이죠! 전 전략적 만능 기밀 우주 전함 대..."
퐁, 푸슝─...
'이게 무슨 소리야? 난 방귀 같은 걸 뀌지 않았는데... 혹시...'
아루잔을 바라보는 엘란츠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방귀까지 뀌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것은 그들을 향해서 다가가고 있었다.
"방금 그 소리는..."
"아──────파!!!"
굉장한 소리가 엘란츠가 미처 귀를 막을 틈도 없이 들려온다. 아루잔이 외치는 소리가 묻힐 정도의 거대한 소리.
쿠──────쾅!
엘란츠는 인상을 찌푸리며 귀에서 손을 뗐다. 이미 반 정도의 소리를 듣고 난 후에야 뒤늦게 귀를 막은 그는 소리로 인한 고통이 이토록 클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음과 동시에 다쳤던 뒤통수의 통증이 되살아났다.
"으..."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는 엘란츠
"괜찮으신가요!? 내부에 타격은 전혀 없었습니다만..."
귀가 먹먹해졌지만 아루잔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던 것은 아니었기에 엘란츠는 대답했다.
"소리가 엄청나."
"아, 소음에 의한 충격이시군요! 소음 충격 보호 시스템을 가동하도록 하겠습니다!"
실은 아루잔에게는 많은 기능이 있어 만능이라 불리는 것이었지만 그 중 대부분은 제대로 설정되지 않았기에 이 사실을 모르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엘란츠는 그녀를 만난 이후 여태까지 계속 그래왔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러한 부분으로 고통을 받을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이 밖의 소리를 듣고자 했던 것이 큰 독이 되었던 것이다.
-"이 망할 녀석들! 언제까지 버틸 수 있는지 보자! 우리 애들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무사히 있을 줄 알았냐!"-
땅 밑에서는 불만을 토로하는 외침이 계속되었다.
"다시 공격을 재개할 것이 98.5 퍼센트로 예상되었습니다."
98.5 퍼센트를 알아듣지 못했지만, 이대로 있으면 이전의 공격을 다시 받을 것은 들은 내용을 통해 알고 있는 엘란츠였다.
"다른 곳으로 이동해줄 수 있지?"
"네!? 대응하지 않습니까?"
놀란 듯 검고 굵은 동그란 눈이 되어 말하는 아루잔에게 그는 다시 말했다.
"집은 찾지 않아도 좋아. 이제 여길 떠났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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