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주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으로부터 "기업체 장을 만나 본격적으로 창단 준비에 착수하세요"라는 연락을 받은 나는 내가 만든 계획서대로 지역별 프로야구팀 창단을 추진했다.
계획서에는 ① 재무구조가 튼튼한 대기업을 총수의 출신 도(道)별로 선정한다 ② 경쟁상대인 동종 업종 기업을 가급적 피한다 ③ 전체그룹의 종업원 수가 3만명 이상인 대기업을 우선으로 한다 ④ 프로야구 발전에 관심과 성의가 있어야 한다는 네가지 원칙이 세워져 있었다. 맨 처음 만든 계획서 초안에 잡혀있던 연고지별 팀 창단 권유기업은 다음과 같았다. 서울-롯데, 부산-럭키, 대구-삼성, 인천-현대, 대전-동아건설, 광주-삼양사. 이렇게 여섯개 기업이 프로야구팀 창단을 권유할 제1후보였다.
그리고 서울-대우, 대구-포철,인천-대한항공, 대전-한국화약, 광주-금호, 해태, 미원 등이 2후보 그룹이었다. 롯데가 서울 연고의 제1후보였다는 이 자료는 지금껏 세상에 공개할 기회가 없었다. 1999년 발간된 한국야구사(유홍락.이종남.천일평 공저)에도 서울의 제1후보는 MBC로 돼 있다.
그러나 사실 MBC가 나중에 서울 연고를 주장하며 참여를 희망해 서울 연고를 갖게 됐을 뿐, 내 초안에는 롯데가 서울 연고팀으로 계획돼 있었다.
만일 그때 내가 만든 계획서대로 팀 창설이 이뤄졌다면 현재 서울 팬들은 롯데를 응원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롯데에게 가장 큰 연고지인 서울을 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이랬다.롯데는 국내에서 롯데 자이언츠라는 실업팀을 운영하고 있어 야구단 운영의 노하우가 있을 뿐 아니라, 일본에서 프로야구팀을 경영해 프로 마인드도 갖고 있었다.
게다가 신격호 회장의 야구에 대한 애정 또한 누구 못지않게 뜨거웠다. 프로구단 운영의 노하우를 갖고 있는 롯데에게 가장 노른자위 시장인 서울을 맡겨야겠다는 게 나의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5월부터 프로출범을 계획해온 MBC는 가장 먼저 팀 창설 의사를 밝히며 서울 연고를 강하게 주장했다.당시 MBC 이진희 사장의 동생 이상희 민정당 의원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던 허삼수 청와대 사정수석과 부산고 동기로 절친한 사이였다.
그리고 MBC는 당시 경향신문과 긴밀한 유대관계에 있었다. 프로야구 초창기의 흥행은 미디어의 도움 없이는 안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이호헌씨와 나는 결국 MBC에게 서울을 내주고 롯데에게는 제2의 도시 부산을 맡기기로 결정했다.
롯데는 내가 최초에 계획했던 서울 연고지안을 제시받은 바 없었던데다 신격호 구단주의 고향이 경남 양산이라는 점, 그리고 제2의 도시를 차지한다는 점에서 부산 연고지 제안에 쉽게 동의했다. 롯데는 나중에 동종 업종 기업인 해태가 참여하게 되자 앞서 얘기한 네가지 창단 원칙에 위배된다고 불평하면서, 이를 수용할테니 연고지를 서울로 옮겨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지만 금방 수그러들었다.
서울=MBC, 부산=롯데를 결정지은 뒤 삼성도 대구 연고지안에 동의했다. 삼성은 국내 굴지의 대그룹인데다, 나중에는 분리됐지만 중앙일보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가장 창단을 유도하고 싶은 기업이었다.
10여일 만에 3개 기업의 창단을 결정지으며 급진전했던 프로야구단 창단 작업은 호남지역 연고지 팀을 섭외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면서 실타래가 꼬였다.
이용일 前 한국 야구위원회 사무총장
정리=이태일 야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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