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싸게 해 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붕대 한 뭉치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
대단히 무뚝뚝한 도닥이었다. 곧 레이드 시간이라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말아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광폭화를 켜더니 열심히 붕대를 말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마는 것 같더니, 레이드 시간이 다 되도록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반듯하게 말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레이드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말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말 만큼 말아야 붕대가 되지, 옷감이 재촉한다고 붕대가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깎는다는 말이오? 도닥붕, 외고집이시구먼. 이제 레이드하러 가야 한다니까요."
도닥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서 사우. 난 안 팔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지각 포인트는 어차피 깎인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말아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붕대란 부드럽고 깨끗하게 말아 놔야지, 말다가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말던 붕대를 가방에다 넣고 태연스럽게 /춤 하고 있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붕대 뭉치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다 됐다고 내 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붕대다.
포인트를 깎이고 지각자가 된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즐와우(櫛瓦宇)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도닥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도닥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비행선 프로펠러를 바라보고 섰다. 그 때, 바라보고 섰는 옆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트럴다워 보였다. 부드러운 눈매와 흰 이빨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도닥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減殺)된 셈이다.
레이드 도중 피 없는 도닥에게 붕대를 말아주니, 쉬는 시간에 그 붕대 어디서 났냐고 야단이다. 자기 붕대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붕대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도닥의 설명을 들어 보니, 붕대가 너무 헐거우면 감다가 끊겨버리기 일쑤이며, 너무 빳빳하면 감기다 절로 풀려버리는 일이 많아 레이드시 수리비를 올리기 단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도닥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나는 그 도닥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도닥이 나 같은 뉴비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붕대가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메추라기 구이에 다크문 폭탄주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레이드가 끝난 후 오그리마에 가는 길로 그 도닥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은 이미 소멸하고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비행선의 프로펠러를 바라보았다. 푸른 창공에 날아갈 듯한 프로펠러 끝으로 흰구름이 피어나고 있었다. 아, 그 때 그 도닥이 저 구름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붕대를 말다가 유연히 추녀 끝에 구름을 바라보던 도닥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이때 내 머릿속에 시구가 떠올랐는데, 그것이 그 유명한 오오(五五).. 투올남(投兀男)...오오(五五) 였다.
재밌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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