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왕이 이끄는 계(鷄)국군은 북의 서(鼠)국군을 맞아 대전 한밭에서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계와 서의 선봉 양훈과 주키치가 80합을 겨루었으나, 쉽사리 승부를 내지 못하였다.
마침 서국의 최성민이 병력을 망령되이 움직여, 계국 별동대 이여상의 부대가 상대 진영의
문 앞까지 길목을 열었다.
서국왕 박종훈이 명했다.
"뒤따르는 적군을 그대로 보내 주어라. 본대의 가르시아를 격퇴하면 적은 알아서 물러갈
것이다."
이에 서국군은 길을 비켜 계국의 진군을 허용하였다.
가르시아가 서국군의 위용을 보니, 비록 궁지에 몰렸으나 쉽게 공략할 수 있어 보이지는
아니하였다. 이에 가르시아는 후군의 야왕에게 표를 올려 답을 구했고, 야왕의 군령이
도착하였다.
[적에게 패한 척 하고 도주하여 기세를 올리게 하라]
이에 가르시아는 서국군의 공세 한번에 병력을 물리고 후퇴하매, 박종훈의 기세가 심히
등등하였다.
"이것 보아라. 이제 계에 남은 장수는 이희근 하나 뿐이니, 우리가 비록 이기지는 못해도
절대 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방에서 불길이 일어 서국군을 둘러쌓았고, 놀란 박종훈의 앞에
나선 장수는 바로 이희근이었다.
"내가 비록 용명은 없으나, 이렇게 밥상을 차려주시니 어찌 포식하지 않겠소? 이미 이여상
장군이 그대의 본진까지 점령했는데, 그대도 여기서 항복함이 옳소."
라 외치며 이희근이 1루로 달리니, 서국군은 가까스로 부대를 추스려 50리 떨어진 곳에
재차 진을 세우고, 야왕의 계군은 4강으로의 요충지 '스윕'을 탐하여 진군하였다.
서국의 박종훈이 기가 차서 말했다.
"주키치가 이리 선전했는데도 패했으니, 앞으로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이 때, 과거 10명의 적장을 벤 경력이 있는 심수창이 나섰다.
"주공께서 제게 선봉을 맡기신다면, 계국의 선봉 김혁민의 수급을 바치겠나이다."
"그대는 이번 전쟁에서 한 차례도 이기지 못하였거늘, 무슨 망발인가? 선봉은 김광삼으로
할 것이다."
박종훈의 단호한 거절에, 심수창은 말없이 물러났다.
다음 날, 김광삼이 김혁민과 맞붙었으나, 4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말머리를 돌려 달아났다.
"네 이놈! 5이닝도 채우지 못하면서 선발을 칭하다니, 부끄러운 줄 알라!"
김혁민이 포효하며 뒤쫒고, 장성호의 저격으로 김광삼이 2점짜리 화살을 맞으니, 서국은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박종훈이 낙담하는 순간이었다.
"작년만 해도 유원상만 못했던 적장은 그 입을 다물라! 나는 10승장군 심수창이다!"
고함을 치며 계국의 측면을 들쑤시는 자는 바로 심수창 그 사람이었다.
이에 계국은 추격을 멈추고 부대를 정비할 수밖에 없었고, 양 군은 다시 장기전의 태세를
보였다. 이에 야왕은 회의를 열었다.
"마침 강동우의 기습으로 적의 목줄기를 노릴 요충지 8회말을 얻었소. 하지만 적은 반드시
우리의 보급로인 9회초를 틀어쥐기 위해 움직일 거요. 누가 9회초를 막겠는가?"
장수들이 모두 말이 없는 가운데, 전 해와 이번 전쟁에서 군공이 많은 박정진이 나섰다.
"소장이 막겠습니다."
야왕이 잠시 고민했다.
"자네는 너무 많이 던지지 않았는가? 새로이 바티스타가 왔으니 맡기는게 어떻겠소?"
박정진이 가슴을 치며 말했다.
"제가 비록 활약한 해는 적지만, 선왕들을 따라 많은 경기를 치뤘습니다. 그 정도 자기
관리는 할 줄 아옵니다. 저를 보내 주시옵소서."
이에 야왕은 마음을 굳히고, 신주영을 부장으로 하고, 바티스타를 후군으로 하여 셋을
9회초에 파견하였다.
박정진이 9회초에 불펜을 차리고 난 뒤, 신주영을 불렀다.
"그대는 안타를 맞고 후퇴하라. 내가 병살로 잡겠다."
곁에 있던 바티스타가 놀라 물었다.
"야왕께서는 삼진으로 타자를 제압하라 명하셨소. 어찌 맞춰 잡으려 하시오?"
박정진이 차게 웃으며 대답했다.
"지금 서국의 타자들을 보니, 성질이 급해져 살살 던지면 알아서 병살을 칠 형국이오.
그대는 휴게실에서 오넬리가 먹던 한식 메뉴나 드시게."
신주영은 명대로 안타를 맞고 내려왔다. 이에 박정진은 만루까지 채웠다.
이를 보던 서국의 대장 이병규는 라면을 먹다 말고 크게 웃었다.
"노아웃에 만루를 채우다니, 이런 야구에 어두운 장수를 보았는가! 오늘 내가 큰 공을
세울 것이니, 이를 후에 라뱅 포리런이라 불러 주게."
이병규가 라면 국물을 뿌리며 계군을 습격하자, 박정진은 공도 제대로 못 던지고 크게
패해 덕아웃으로 달아나고 말았다. 바티스타가 삼진을 한 개 잡으며 분투했지만, 그걸로
대세를 막을 수 없어 함께 달아날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정원석, 전현태, 고동진 등의
반격으로 조금은 피해를 줄였지만, 9회초를 잃은 계국으로서는 스윕을 포기하고 그저
위닝시리즈를 노릴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처참한 패배 후, 야왕은 박정진을 불렀다.
"왜 그리도 맞았는가. 군법에 의해 나는 자네를 용서할 수가 없네."
"...저는 괜찮으나 신주영과 바티스타, 그리고 다른 투수들은 용서해 주시옵소서."
"예끼 니미, X잡고 반성이나 해."
"명을 받들겠습니다."
이에 '눈물을 흘리며 X을 잡다' 하여 '읍X정진'이라는 말이 생겼대나 뭐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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