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렬 한국야구위원회(KBO) 홍보위원과 정삼흠 LG코치는 고려대 동기생이다. 절친한 사이인 그들은 현역 시절 팀간의 경기가 있을 때면 곧잘 만나 식사를 하거나 소주잔을 기울이곤 했다.
87년 9월6일, 다음날 해태와 MBC의 맞대결을 앞두고 둘은 여느 때처럼 광주 모 음식점에서 반주를 곁들여 저녁식사를 했다. 그런데 그들은 평소와 달리 소주잔을 놓고 제사만 지내고 있었다. 눈치빠른 정삼흠이 먼저 말을 꺼냈다. "너, 내일 선발이지." 선동렬은 고개를 끄덕인 뒤 반문했다. "너도 (선발) 맞지."
다음날 선발 투수가 술을 자제하는 것은 당연지사. 그러나 자존심이 뭔지…. 서로의 처지를 알아버린 그들은 당장의 기싸움에서 지고 싶지 않았다. 음식점에서 소주잔을 홀짝홀짝 비우던 그들은 교외로 술판을 옮겼다. 부어라 마셔라 하다 보니 어느새 그들 주위에는 소주병 20개가량이 나뒹굴고 있었다. 먼저 술을 그만 마시자거나, 줄행랑치면 지는 것으로 약속이 된 터라 술자리는 밤새 이어졌다. 먼동이 틀 때야 비로소 술자리를 파했다. 말술인 그들이었지만 워낙 마신 양이 많은 데다 잠도 부족해 몸을 제대로 추스를 수 없을 정도였다.
그들의 사정을 알 리 없는 감독들은 선발 출전을 지시했다. 선동렬과 정삼흠은 술냄새를 풀풀 풍기면서 마운드에 올랐다. 1이닝을 버티기도 힘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술에서와 마찬가지로 마운드에서도 지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었다.
그들은 마운드를 오르내리다 눈이 마주치면 눈짓과 몸짓을 주고받았다. '이제 그만 내려가라'는 무언의 대화였지만 누구도 먼저 항복하지 않았다. 회가 거듭될수록 그들의 볼은 더욱 위력적이었다. 결국 0-0으로 승부를 가리지 못해 경기는 연장에 들어갔다.
연장 11회초 정삼흠이 먼저 교체됐다. 투구수가 많아 선수보호 차원에서 감독이 강판을 지시한 것이었다. 그제야 선동렬도 마운드를 내려왔다. 연장 10회까지 선동렬은 2피안타 10탈삼진의 완벽에 가까운 투구를 했다. 정삼흠도 5안타를 맞았지만 실점은 하지 않았다.
그후 그들은 술을 마시고 선발대결을 하지 않았다. 지기 싫어 마운드에 오른 그날의 맞대결이 너무도 끔찍했기 때문이었다.
정삼흠 나름 에이스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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