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빅 (Jasenko Sabitovic)이 한국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지난 16일, 법무부 귀하시험에서 합격통지를 받아 한국인으로 귀화에 성공했다. 이는 신의손(FC서울), 이성남(성남일화)에 이은 세 번째 사례이다. 그러나 싸빅의 경우 앞의 두 선수와 다른 경향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한국국가대표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것이다.
신의손의 경우, 타지키스탄의 국가대표 경력이 있고 이성남은 2002월드컵 직전에 러시아 국가대표팀 엔트리에 들었기에 한국국가대표 선발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싸빅은 모국인 크로아티아에서 국가대표 경력이 전혀 없어, 한국국가대표 선발에 문제가 없으며 이르면 7월 아시안컵에서 그가 붉은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호령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최초의 파란눈 국가대표선발이 갖는 의미와 싸빅의 활약을 조망해본다.
싸빅은 누구?
크로아티아 출신(73년생)의 185cm, 80kg의 당당한 체격을 갖춘 선수다. 전형적인 센터백으로 제공권 장악능력이 빼어나다. 스피드가 뛰어나지 않아 오버래핑 능력이 다소 부족하나, 패싱력과 강력한 태클능력을 보유한 K리그 최고의 수비수이다.
그의 능력은 국내에서도 정평이 나 있으나 AFC챔피언스리그에서 보여준 활약으로 ‘아시아 최고 수비수’로 그 위상이 한껏 높아졌다.
올 3월, 일본 닛캇스포츠는 싸빅에 관한 흥미로운 기사를 실었다.
“싸빅이 귀화를 한다면 한국국가대표의 두려운 일원이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 근거는 2월에 벌어진 A3닛산챔피언스컵에서 성남과 요코하마가 맞붙은 경기에서 기인한다. 현 일본 최고 스트라이커로 불리는 쿠보를 싸빅이 원천봉쇄하며 싸빅의 존재감이 새삼 부각되었다. 쿠보가 유럽식 거친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고 긴 다리로 태클과 가로채기에 능한 싸빅을 뚫기엔 역부족이었다.
물론 싸빅의 경력은 아시아권에서 머문다. 그러나 현재 한국주전수비수인 김태영(70년생),최진철(71년생)의 노쇠화가 심각하고 또 정통수비수로써의 기량도 높다고 봤을 때 국가대표 선발 가능성은 매우 높다.
외국인 감독에게 편견은 없다.
본프레레 신임 국가대표 감독의 취임은 싸빅의 국가대표 선발 가능성에 더욱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완전한 “無”에서 새롭게 국가대표의 기틀을 마련해야 할 그로선 당연히 명성보다는 실력 위주의 선수선발을 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그가 표방하는 포백라인에서는 강력한 센터백이 반드시 필요하다.
돌이켜보면 한국국가대표 역사에서 강력한 수비력을 갖춘 센터백은 없었다. 전설로 자리잡은 홍명보 역시 스위퍼 역할을 담당했으며 최진쳘, 김태영 역시 스토퍼의 역할에 머물렀다. 센터백은 수비진을 조율하며 공격비중을 낮춘 대신 포백라인을 진두지휘해야 하는 역할이다. 대표적으로 프랑스의 드사이, 네덜란드의 스탐 등이 그 역할을 맡고 있다. 다시 말해, 싸빅의 등장은 한국국가대표 수비라인에 일대 혁신을 불러올 묘책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싸빅이 국가대표로 선발된다면 조병국 등과 중앙수비를 담당해 수비안정감을 높일 수 있으며 그것은 이영표, 송종국으로 대표되는 양쪽 윙백의 활발한 공격가담을 기대할 수 있다. 바로 숱하게 시도했으나 번번히 시행착오를 겪었어야 했던 4-4-2 포메이션을 이룩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첨언하자면 4-4-2는 어디까지나 수세의 구도에 불과하다. 4-4-2는 공세 때, 2-4-4로 변경되며 양쪽 윙백은 오버래핑하게 된다. 그러므로 현존하는 포메이션 중 가장 공격적이고 재미있는 포메이션으로 대변되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싸빅의 귀화와 본프레레 신임감독의 등장으로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다채롭게 활용 가능한 싸빅카드.
2004년 여름, 사실상 한국국가대표팀은 이원화가 된다. 해외지출 선수가 모두 소집되는 A팀은 7월 중국에서 벌어지는 아시안컵에 출전하게 된다. 그리고 B팀. 즉, 올림픽 대표팀은 8월 그리스 아테네에서 개최되는 올림픽에 출전해야 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올림픽팀에 소속된 조병국, 조재진, 김두현, 최성국 등은 대표팀에서도 필요하다는 점이다. 게다가 와일드카드로 유상철, 송종국, 김남일 등이 차출되면 아시안컵에 출전하는국가대표팀과 본프레레의 ‘첫단추’가 잘못 끼워질 공산이 높다. 다시 말해, 유망한 선수 단 한 명이 아쉬울 때라는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싸빅카드를 사용할 호기이다. 수비수가 태부족인 상황에서 싸빅 정도의 수비수라면 적절하게 쓸 수 있다. 그와 동시에 그에 대한 냉정한 평가의 무대가 될 것이다. 그 곳이 중국이든, 아테네든 말이다.
현재까지 세 명의 외국인 선수가 귀화했다. 그리고 마니치 등의 귀화설도 나오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많은 외국인 선수가 ‘한국인’으로 귀화할 수 있다. 앞선 신의손, 이성남과 달리 싸빅은 한국국가대표로 뛰며 ‘한국인으로 국가에 공헌’할 수 있는 자격을 갖췄다. 피부색과 눈동자가 다르다고 무작정 외국인으로 취급하기엔 너무 다양화된 세상이 아닌가?
어설픈 순혈주의는 갖다 대지 말자. 싸빅은 이제 한국인이며 실력을 갖춘 수비수이다. 그에게 붉은색 유니폼이 썩 잘 어울릴 것 같은 건 필자만의 생각인가.
안형빈 명예기자
2004/06/26 06:50 입력 : 2004/06/26 08:5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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