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망의 을유년 새해가 밝았다. 예로부터 닭은 희망의 상징. 어둠의 끝을 가장 먼저 감지하고 머지않아 빛이 찾아올 것임을 알려주는 동물인 까닭이다. 2002월드컵 이후 침체에 빠졌던 축구계에서도 2005년을 맞아 시원한 계명성(鷄鳴聲)을 기대하고 있는데 바로 81년생 닭띠들의 활약이다. 지난해 올림픽팀에서 주축으로 활약하며 축구팬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안겨줬던 이들은 독일전(지난해 12월19일) 맹활약을 통해 어느새 선배들의 자리를 위협할 정도로 성장했음을 여실히 증명했다. 한국 축구를 다시 흔들어 깨우기 위해 목청을 가다듬고 있는 스물네 살 닭띠들의 힘찬 목소리를 들어봤다.

박지성(이하 박)=새해 복많이 받아라. 드디어 우리의 해가 밝았다.

조재진(이하 조)=그래. 너도 복많이 받아라. 특히 넌 부상 조심해라. 작년에 부상 때문에 고생많이 했잖아. 대표팀 경기도 많이 못뛰고. 네가 없으니까 내가 골넣을 기회도 줄어들었잖아. ㅋㅋ.

박규선(이하 규)=대신 내가 있었잖아. ‘2004년에 가장 많이 성장한 선수’라는 평가 못들었냐.

박=그래 그래. 다들 열심히 했고 그만한 성과도 있었으니 정말 좋다. 재진이 말대로 난 작년에 부상 때문에 기대만큼 못해서 아쉽다. 특히 “대표팀이 박지성 중심으로 가야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들을 때면 정말 고마우면서도 죄송스러웠다. 올해는 안 다치고 경기를 많이 뛰면서 팬들의 기대에 반드시 부응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있어.

조=나는 2가지 목표를 세웠어. 하나는 대표팀에서 내 자리를 잡아 최종예선 통과에 기여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J리그 득점왕이야. 작년 후반기에 많이 적응해서 자신있어. 일본에 ‘조재진’이라는 이름을 확실히 인식시킬 거야.

규=내 목표도 월드컵 최종예선이야. 그럴려면 (송)종국이 형하고 경쟁해야 하는데 열심히 해볼 생각이야. 경험은 내가 부족하지만 나만의 장점도 있으니까. 장점을 잘 살린다면 얼마든지 해볼만 하다고 생각해.

박=그러고 보니 하나 더 떠오른다. 바로 챔피언스리그(CL)야. 우리 팀이 88년 이후 처음으로 16강에 진출했는데 우승까지 해보고 싶어. 아직까지 아시아선수가 CL에서 골을 넣지 못했다고 들었는데 꼭 골도 넣어서 아시아 선수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고.

조=멋진 생각이다. 스물넷이면 자기 이름을 걸고 선수생활을 해야할 나이니까. 12년 전엔 생각도 못했던 것들이 어느새 우리 눈 앞에 있네.

규=12년 전이면 너 파주에 있을 때 아니냐?

조=맞아. 파주 신산초등교에 다닐 때지. 너희들도 알겠지만 축구하기에 환경이 그리 좋지 않잖아? 그래서 제대로 하려면 서울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어. 마침 대신중 이상열 코치가 아버지한테 맡겨달라고 부탁했고 그래서 서울로 오게 됐으니 내 축구인생에서 중요한 한 해라고 할 수 있지.

규=내 경우도 그래. 난 93년에 선수생활을 시작했거든. 구리초등교 다닐 때 축구가 좋았거든. 공부도 신통찮았고. 그래서 친구들하고 부양초등교로 테스트 받으러 갔고 운동을 시작했지. 그때는 나 센터포드였다.

조=어? 그럼 너랑나랑 포지션이 뒤바뀐 셈이네. 나는 그때 미드필더였어. 체격이 작았거든. 고1때 양쪽 어깨를 다친 뒤로 1년에 15㎝씩 커서 고3때부터 포워드를 보기시작했다.

박=나는 그냥 국가대표가 되고싶었어. 막연히 월드컵에서 뛰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 과연 내가 월드컵에 나갈 수 있을까,만약 나간다면 어떤 플레이를 할까,뭐 그런 식으로. 그때는 그게 정말 ‘꿈같은 얘기’였는데 10년 만에 꿈을 이루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지.

규=대단하다. 용꿈 꾸고 태어난 값을 했구만.

조=너 태몽이 용꿈이었냐? 나도 그런데. 우리 엄마가 개울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데 용이 나오더니 갑자기 다리를 무는 꿈이었대.

박=나도 엄마가 태몽을 꾸셨어. 물가에 서 있는데 용이 물속에서 나오더래. 신기해 하면서 지켜보는데 용이랑 눈이 마주치는 순간 용이 엄마 몸을 감고 하늘로 올라가는 꿈이었대.

조=반드시 최종예선을 통과할 이유가 하나 늘었군. 용꿈까지 꾸신 엄마 실망시켜드리면 안되잖아. 하하하.

규=그래 꼭 그래라. 나도 엄마한테 태몽이 뭐였는지 물어봐야겠다.

박=지난 12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 12년 동안도 꿈을 위해 뛰자. 그래서 다음번 닭의 해에 웃을 수 있게.

규=다음번 닭의 해면 36살인데,그쯤이면 은퇴했겠다. 너희들은 은퇴하고 뭐하고 싶냐? 난 식당 사업을 해보고 싶은데. 엄마 음식솜씨가 좋아서 그런가 맛있는 음식에 관심이 많아. 지금도 식당에 가면 이것저것 관심있게 보고 그래.

조=난 제대로 된 일식집을 구상 중이야. 애견숍도 재밌을 것 같아. 내가 개를 좋아하잖아. 난 정상에서 은퇴할 생각이니까 2017년엔 확실히 다른 일을 하고 있을 거야. 축구 밖에 몰라서 그런지 모델활동이나 방송같이 아주 다른 분야에 관심이 많이 가.

박=은퇴하면 난 좀 쉬고 싶어. 명보형처럼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우선은 푹 쉬고 싶어. 세계일주도 좋고 여행을 하면서 차분히 운동선수가 아닌 생활을 좀 즐기고 싶어.

조=그래. 그날을 위해 올 한해 정말 열심히 하자. 닭의 해인데 우리 닭띠들이 뭔가 보여줘야잖아?

규=우리 ‘KFC&D’(Korea Football Chicken & Dog,올림픽팀 출신 닭띠와 개띠들의 모임) 멤버들에게 아주 중요한 1년이다. 우리 멋지게 뛰어보자는 뜻으로 파이팅 한번 할까?

일동=좋아. 하나,둘,셋, 아자! 81년 닭띠! 아자아자!! 한국축구 !!


/정리=임지오 bingo@stoo.com

KBO | 1741명이 읽었어요. 3.144.232.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