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04.11.29 17:51:43]
하루에 5~6끼, 한번 먹으면 몇 인분씩 먹어도 시원치 않은 씨름판 거구들이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붕괴위기에 빠진 민속씨름을 구하기 위한 거인들의 안타까운 고육책이다.
‘테크노 골리앗’ 최홍만(24) 등 LG투자증권 씨름단 선수들은 29일 서울 장충동 한국씨름연맹에서 김재기 한국씨름연맹 총재대행과 만난 뒤 다음달 6일 씨름단 해체에 대한 선수단의 방침을 밝혔다. 선수단은 일단 구미천하장사대회(12월3~5일)에 출전하기로 했지만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대회 직전 이사회를 개최해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달라는 게 선수단의 요구. 김총재대행은 “이사회는 예정대로 다음달 8일 열린다”고 밝혀 사태 해결에는 시일이 걸릴 전망. 씨름이 스모처럼 일본 국민들로부터 사랑받는 국민 스포츠가 되기는커녕 붕괴의 길로 접어드는 양상이다.
2ｍ18·160㎏의 거구인 최홍만. 짜릿한 승리를 거둔 뒤 테크노 댄스를 추던 그는 다른 선수보다도 더욱 시름에 빠진 눈치다. 씨름 2년차로 한창 훈련에만 몰두해야 하는 상황. 이날 동료들과 함께 한국씨름연맹을 방문한 그는 “비참합니다”라는 말로 작금의 심정을 대신했다. 그는 평소 성공한 스포츠 스타를 꿈꾸며 체육기사를 즐겨 읽었다. 하지만 최근 프로야구선수 심정수가 4년간 60억원에 삼성으로 갔다는 기사를 본 뒤에는 신문은 거들떠도 안 본다.
“심정수의 몸값이면 씨름단 3년을 운영하고도 남습니다.” 샅바도 손에 잘 잡히지 않았을 터. 요즘 하루를 어떻게 보내느냐고 물었다. “그냥 현실을 잠시라도 잊고 싶어요. 저녁이면 친구들을 만나 회포를 풀죠.”
‘술 몇 잔 마시면 잊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숙소에 돌아와도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
걱정하는 부모님 전화가 요즘들어 부쩍 늘었다. 최홍만은 이렇게 답한다.
“아직 젊잖아요. 씨름 그만둬도 잘 살 수 있으니 걱정마세요.”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어느새 잦아든다.
새로운 인수자가 씨름단을 운영해줬으면 하는 게 최홍만의 바람. 그러나 최악의 사태에 대해 조금씩, 아주 조금씩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씨름을 그만둘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상비군에서 비참하게 훈련하고 싶지는 않거든요.”
인수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최홍만은 상비군으로 전락한다. 연맹으로부터 소액의 월급을 받으면서 대회에만 참가하는 ‘구색 맞추기용’ 선수가 상비군. 1983년 출범한 뒤 최고 8개까지 팀이 늘어나면서 전성기를 구가했던 민속씨름. 현재는 LG투자증권, 현대중공업, 신창건설 등 3개팀만이 외로운 씨름판에서 ‘민족혼’을 잇고 있다. 그러나 LG씨름단마저 없어진다면…. 최소한 스포츠판에서만큼은 역동적인 민족혼이 끊길 수도 있는 암담한 상황이다.
“디지털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씨름을 외면하는 사회가 너무 냉정합니다. 국민들의 전폭적인 관심 속에 최고 스포츠로 자리잡은 일본 스모가 부러울 뿐입니다.”
〈김세훈기자 s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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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저 날 동대입구역 5번출구에서 렌즈 거래하고 있는데 LG 씨름단 버스가 옆에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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