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딜 가도 코인 얘기다. 회식자리에 가보면 옆테이블 회사원들은 다 코인 얘기 중이다. 어제 우리 회사에서 발행하는 일간신문 1면 톱기사에도 가상화폐란 말이 등장했다. 이제 시골사람들도 관심을 갖기 시작할 것이다. 난리다 난리.
이러다보니 규제를 해야 한다는 의견, 아예 전면금지 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애국심에 호소하는 주장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인터넷 특히 페이스북에서는 가상화폐가 국부를 유출시킨다는 주장, 또 가상화폐 시장에 돈이 몰리다보니 정상적인 경제활동, 산업활동을 위축시킨다는 글이 올라오더라.
한국내 코인 가격이 해외보다 훨씬 비싸고('김치 프리미엄') 그만큼 한국의 부가 해외로 유출되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일까? 비트코인이 한국 경제를 망치고 있을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김치프리미엄의 의미
비트코인에 김치프리미엄이 존재한다는 건 외화유출이 많이 일어난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외화유출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국내외간 거래가 잘 일어난다면 국가간 가격차이는 줄어들어야 한다. 지금처럼 한국과 해외에 30%~50%의 가격 차이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외국과 한국간 비트코인 거래가 일어나기 어렵다는 뜻이다. 비트코인 자체는 쉽게 이동할 수 있지만 그것을 사기 위한 외환의 이동은 각종 규제 때문에 자유롭지가 않다. 걱정 안 해도 될 정도다.
(2) 환율의 움직임
증거도 있다. 가상화폐 때문에 달러가 많이 해외로 유출되었다면 원달러 환율은 올라갔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지난 1년 간 원달러 환율은 10% 이상 떨어졌다.(1190원 수준에서 1070원 수준으로 내려갔다) 달러 유출이 아니라 오히려 달러 유입이 엄청나게 많았다. 수출이 호황이었고 주식시장에도 외국인 투자가 늘었다.
가상화폐 거래에서 한국에서 외국으로의 달러유출이 있었다고 해도 한국 경제 전체로 보면 미미한 수준이라는 얘기다. 외환보유고도 역대 최고치다. 요즘 한국 정부는 환율이 너무 내려가서 기업의 수출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이 걱정이다. 환율하락을 막기 위해 금융시장에 개입하기도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요즘 해외에서 달러로 코인 사시는 분들은 우리 정부의 환율방어 정책을 도와주고 있는 셈이다. 애국하고 계시다.
(3) 리스크 전이 가능성
코인 버블이 꺼졌을 때 그것이 국가적 경제위기로 번질 것이라는 주장도 근거가 없다. 코인은 실물경제시장과 거의 격리되어 있다. 코인을 담보로 은행대출을 받을 수도 없다. 코인은 기업의 자산으로 인정받지도 못한다. 코인을 기반으로 한 구매 등 경제활동도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코인시장이 몰락한다고 해도 그냥 거기서 끝이다. 닷컴버블이나 금융위기때처럼 다른 시스템으로 전이가 될 가능성은 적다.
과거 닷컴기업 주식이나 서브프라임모기지는 기업과 은행의 자산(담보)으로 잡혀있었기 때문에 그 가치가 하락했을 때 도미노 현상을 가져왔었다. 은행들이 자금을 회수했고 유동성이 사라진 리만브라더스가 망했다. 코인은 다르다. 코인을 자산으로 잡아놓고 있는 기업이나 금융기관은 없다. 레버리지도 없고 따라서 도미노 현상도 없다. 금융위 부위원장님도 말씀하신 바다. 뭐, 코인 사기 위해 신용대출을 땡긴 직장인들은 있겠지만, 그들이 돈을 날린다고 해서 다른 시스템에 큰 영향이 가지는 않는다. 애초에 신용대출이라는 것의 정의 자체가 그렇다. 대출이 부도날 때에도 대출자 본인이나 은행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판단할 만큼만 해주는 것이 신용대출이다.
(4) Stock 과 Flow의 차이
가상화폐 시장이 자금을 빨아들인다는 것도 현재로선 비논리적인 주장이다. 코인은 돈을 빨아들이지 않는다. 자금을 묶어놓지 않는다. 직관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이렇게 생각해보라. 모든 거래에는 상대방이 있다. 파는 사람이 있어야 사는 사람이 있다. 누군가 2000만원을 코인에 처박았으면 다른 누군가는 그 2000만원을 현금화해서 챙겼다는 것이다. 들어간 돈 만큼 나온 돈도 있다. 코인 시장의 자금 유출입은 항상 0이다. 100만명이 100만원씩 코인에 돈을 넣었다면 다른 편에서는 100억원을 벌어서 현금화한 100명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 돈으로 그들은 강남에 아파트도 사고 예금도 하고 주식도 사고 벤츠도 뽑는다. 돈은 경제에서 계속 순환 중이다. 손바꿈만 일어날 뿐이다.
이는 주식시장도 마찬가지다. 주가가 오른다고 해서 그만큼 시장에 돈이 묶이는 것이 아니다. 가격은 말 그대로 가격일 뿐이다. 삼성전자 주가가 2배 오르고 시가총액이 2배가 되었다고 해서 2배의 자금이 삼성전자로 흘러들어가 그 안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삼성전자는 최초 주식을 발행했을 때에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받았을 뿐, 그 이후 주식시장에서 벌어지는 일은 삼성전자와 관련이 없다. 투자자들끼리 손바꿈만 하고 있을 뿐이다.
다만, 비트코인은 그래픽카드로 채굴하는 과정에서 전기 에너지를 엄청 빨아들이고 있다는 게 문제다. 하지만 그것이 한국경제에 위기를 가져올 정도인가? 전혀 아니다.
(5) 코인값이 오른다면, 금지론자들이 기회비용을 책임질 것인가
규제론 혹은 금지론자들의 가장 큰 문제는 이들이 코인 가격 하락(버블 붕괴)을 당연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예상과는 달리 코인값이 떨어지지 않고 계속 오른다면 어떻게 될까. 코인을 구매해서 저장해놓은 분들은 국부창출을 도운 셈이 된다. 지금과 같은 고환율 상황에서 환율 변동성을 줄여주는 역할까지 해줬으니 두 과업을 동시에 달성하는 애국자가 된다. 반대로 코인 보유를 금지시키자고 한 사람들은 국부창출을 막은 반역행위자가 된다.
https://www.ft.com/content/43f1e468-f5e9-11e7-88f7-5465a6ce1a00
상상이긴 하지만 코인 값이 오를지 떨어질지 그걸 누가 어찌 알 수 있을까. 엊그제 팀 하포드의 FT 칼럼에서 말했듯이, 버블은 지나고 봐야 그게 버블인지 알 수 있다. 진행과정에서는 알 수가 없다. 약 20년 전 미국의 닷컴버블 때, 하포드의 FT 동료 한 명이 '온라인 서점 하나의 시가총액이 전 세계 모든 오프라인 서점의 가치보다 높다는 게 말이 되냐?'라며 비웃었다고 한다. 그 회사가 현재의 아마존이다. 만일 그 사람의 말을 듣고 아마존 주식을 팔아치운 사람이 있다면 속이 대단히 쓰릴 것이다. 지금은 닷컴버블 때보다 훨씬 더 많이 올랐다.
가상화폐도 마찬가지다. 하라고 부추길 필요도 없지만 하지 말라고 막을 필요도 없다. 남의 손해를 대신 매워줄 게 아니라면 말이다. 가격을 예측할 수 없는 한, 코인이 국가 경제에 주는 영향 역시 '국부유출'이라고 뭉개버리고 넘어갈 수는 없다. 국부유출이 될지 국부창출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가격을 예측할 수 있는 건 오직 신 뿐이다. 내가 이렇게 얘기했는데도 불구하고 코인값이 떨어지거 거품이 꺼질 것이라 확신하는 사람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본인의 신념을 증명해보는 건 어떨까? 해외 거래소에서 코인을 short할 수 있는 기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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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가상화폐 국부유출론에 대해 생각해봤다. 국부유출이 일어난다거나 경제위기를 불러올 것이라는 주장은 신빙성이 없다. 이번엔 더 나아가서, 설령 버블이 터지고 위기가 온다고 해서 그게 꼭 나쁜 것인지도 생각해보자.
버블이 꼭 나쁜 것일까?
흔히 가상화폐의 가격 상승을 두고 과거 네덜란드의 튤립 버블에 비유하곤 한다. 튤립 한 뿌리가 한두 달 사이에 집 한 채 값까지 올라갔다가 순식간에 폭락하는 바람에 난리가 났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우리가 잊기 쉬운 점이 있다. 당시 네덜란드의 투자거품은 튤립에 국한된 이슈가 아니었다. 1602년 네덜란드동인도회사의 설립과 함께 암스테르담에 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가 문을 열면서 금융산업에 완전히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처음에는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이 회사 사무실에서 만나서 악수를 하고 서명을 해서 거래하던 것이었는데, 불과 수십 년 만에 비대면 선물거래, 옵션거래, 담보거래 등 파생상품의 발명과 발전으로 이어졌다. 마켓메이커, 브로커 같은 직종도 생겨났다.
부유한 사람뿐 아니라 하녀와 뱃사공들까지 동인도회사 주식을 샀고, 요즘처럼 주식투자 가이드북이 대중에게 인기를 끌었다. 덕분에 동인도회사의 주가는 백 년 넘게 거품 수준을 유지했다. 또 다른 상품의 거래에도 영향을 미쳤다. 당시 암스테르담 거래소에서는 동인도회사 지분뿐 아니라 수많은 농산물과 공산품이 함께 거래됐다. 암스테르담 인근에 있는 하를렘 시에서 이뤄진 튤립 거래 역시 네덜란드 금융산업의 발전에 따라 현물 아닌 선물(futures) 거래로 이루어졌다. 작은 증거금만 내고 일정 가격에 살 수 있는 권리를 미리 확보하는 것이다.
당시 네덜란드 금융산업의 발전은 신용거래를 가능케 하는 튼튼한 은행 인프라(암스테르담은행), 법적 인프라(3심제 법원), 시민간 계약을 중시하는 민주주의 의회제도(국왕이 없는 민주공화국)가 동시에 함께 발전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튤립 버블 폭락의 뒷처리를 하는 과정에서도 네덜란드의 금융산업은 한층 더 발전했다. 가격 거품이 꺼져서 어마어마한 액수의 선물 계약이 부도가 났을 때, 그 뒷처리를 어떻게 해야 할까? 매수자는 증거금은 날렸지만 더 이상의 책임에 대해서는 배째라며 오리발을 내밀었다. 매도자는 억울하지만 그렇다 해서 큰 피해를 본 것은 아니다. 계약 관련자들은 법원에서 소송으로 다퉜다. 전례가 없던 일인지라 네덜란드의 법조인들은 지혜를 모아서 상인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중재안을 내야 했다. 덕분에 튤립 버블 때문에 파산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상인들은 상호 신뢰를 회복해 튤립 거래를 계속 이어나갔다.
이런 전통은 현대에도 이어진다. 요즘도 한 증권사가 계약을 부도내고 파산할 경우 그 책임을 거래소 회원들이 나누어 분담하는 제도가 있다. 금융산업은 이렇게 자잘한 사건과 사고, 버블과 붕괴의 과정을 통해 발전한 것이다. 비만 오면 잠겨버리는 작은 나라 네덜란드가 이후 약 200년간 유럽의 최고 부자 나라로 살 수 있었던 이유다. 유럽의 증권거래소들이 합병해서 만든 Euronext 거래소 역시 현재까지도 암스테르담에 본사가 있다. 튤립산업은 어땠을까? 버블이 터지면서 몰락했을까? 아니다. 사람들이 떠드는 것만큼 피해는 크지 않았다. 네덜란드는 현재까지도 튤립산업의 독보적인 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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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은 화폐일까? 아니면 금과 같은 투자 자산일까?
역사가 이번에도 교훈을 준다. 최초의 public company였던 네덜란드동인도회사가 만들어졌을 때, '주식'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여러 사람이 돈을 모아서 회사를 설립했고, 이 투자자들은 수익에 따라 배당을 받았고, 그 권리를 타인에게 양도할 수 있다는 것 정도가 정관에 쓰여있었을 뿐이다. 시간이 가고 거래가 되면서 차츰 여러 의미가 부여되고 법적 판례가 쌓여가며 오늘날의 '주식'이라는 개념이 정립됐다. 예를 들어 주주총회 참석의 권리, 회계장부 열람권 같은 기본 권리도 1602년 창립 당시엔 존재하지 않았다. 종이 형태의 증서(증권)도 없었다. 후대 사람들이 점차 옷을 입히고 모양을 가꾸어 간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지금 비트코인을 놓고서 이것이 화폐인지, 투자자산인지 고민하는 것도 사실 큰 의미가 없다. 시간이 가면 저절로 정리가 될 것이다. 신산업은 항상 쓰임새가 정체성을 만드는 것이지 정체성이 쓰임새를 만들지는 않는다. 에디슨은 본인이 발명한 축음기가 음악을 듣는 용도로 쓰이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한다. 한국 정부는 코인에게 "화폐"라는 지위를 부여해주기 싫어서 "가상증표"라는 용어를 쓰기로 했다는데, 그것도 별 의미 없는 행위다.
한 술 더 떠, 현재 한국의 법무장관인 박상기 님은 가상화폐를 전면 금지해야 한다고 기자회견에서 말했다. 가상화폐 거래를 중개하는 업체를 범죄자 취급했다. 그는 대한민국이 아무런 사건도 사고도 없이 무조건 안전한 나라가 되어야 하며, 정부는 국민들을 100% 안전하게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한국 국민이 가상화폐 버블 붕괴로 인해 피해를 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인 것 같다.
그런 마인드로는, 한국은 네덜란드와 같은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이 세상 어떤 나라도 그렇게 해서 성공한 선진국이 된 경우가 없다. 가상화폐 거래를 금지한 나라들이 다들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라는 게 우연이 아니다.
리스크 테이킹 없이는 발전도 없다. 사건과 사고가 우당탕탕 터지면서 그 뒷처리를 하는 과정에서 시스템이 발전하는 것이며 그 사건과 사고들에서 교훈을 얻으며 아이디어가 발전한다. 그게 튤립 버블의 진짜 교훈이다. 국민을 어린아이처럼 보호만 해야 하는 존재로 취급하는 나라는 영원히 후진국이다. 아니, 선진국이냐 후진국이냐도 중요한 게 아니다. 자유민주주의국가에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개인간 거래를 정부가 막을 이유가 없다.
가상화폐가 설령 버블의 드라마틱한 붕괴로 끝난다고 해도, 설령 투자자 몇 명이 좌절해서 한강으로 향한다 해도, 가상화폐 산업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얻는 블록체인 노하우, 금융거래소 운영 노하우, 사이버 보안 노하우는 영원히 한국의 자산이자 강점으로 남는다. 또 버블 붕괴를 처리하는 과정의 혼란과 거기서 얻게 될 경험 역시 한국 법조계와 금융감독기관의 지적 자산이 된다. 한국이 뭔가 세계적으로 앞서가는 분야가 탄생했는데 그걸 억지로 죽일 필요가 없다. 이것은 기회다.
두 달 전쯤 코스콤(한국 증권거래소의 IT부문 자회사) 다니시는 분의 이야기를 들었다. 여의도 증권거래소에서 가까운 IFC 빌딩에 코인원 거래소 사무실이 있는데, 하루가 멀다하고 최신, 최고급 IT 보안 장비들이 그 안에 들어가고 있어서 부럽다는 것이다. 엔지니어 입장에서는 최신 장비들을 써보는 경험을 한다는 것 자체가 경쟁력이다. 개인의 경쟁력이기도 하고, 국가적 경쟁력이기도 하다. 증권거래소 담당자가 부러워할 정도의 IT 역량을, 지금 코인 거래소들이 쌓고 있는 것이다. 그게 두 달 전이었으니 지금까지 또 얼마나 많은 경험과 역량이 생겼을까. 규제당국도 마찬가지다. 국제기구 협의를 하면 외국 대표들이 한국 대표에게 와서 '한국은 가상화폐를 어떻게 관리감독할 것인지'를 묻는다고 한다. 이것은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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