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에서 모두가 당연히 봐야할 것 처럼
칸에서 부른 대한민국의 대표 영화인 마냥 광고를 하길래...
어떤 영화일까 싶어 보고왔는데,
상영시간도 길고... 씬 호흡도 너무 길고...
대중적인 영화라고 하기엔 좀.. 아니 전혀.. 흠... 아니 애매하더군요.
대중성과 작가주의 정도가 비슷한 영화를 찾자면
이냐리투 감독의 '버드맨'이나
최근에 나온 대런 아로노브스키의 '마더!'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아무튼 흥미롭게 보고오긴 해서 글을 남겨봅니다.
제가 느낀 주제는
'박탈감에 짓눌린 이 시대 청년들의 이야기, 그들의 감정, 그들에 대한 연민'
정도로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영화 자체는 곡성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인과관계를 탈피하는 테크닉을 썼다는 점에서)
이 이야기는 할 수 있다면 아래에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무튼 이 영화는 주인공인 종수(유아인)로부터 시작합니다.
영화내내 다른 캐릭터의 시선은 묘사해주지 않더라구요.
다른 모든 캐릭터들은 모두 종수의 시선을 통해서 묘사됩니다.
그 때문에 다른 캐릭터들의 행동의 속내를 영화내내 절대 알 수 없습니다.
이 부분은 종수의 대사로도 노골적으로 드러납니다.
종수가 말하죠,
'저는 이 세상이 수수께끼같아요'
그래서 관객도 이 영화가 수수께끼 같게 만듭니다.
아무튼 이 영화는 종수로 대표되는 이 시대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청년의 고충에 대한 모습을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있더라구요.
(변기딸린 주방같은 얘기도 나오죠 ㅋㅋ)
군필 대졸(문과), 먹고 살기위해 하는 전공과 관련없는 일, 꿈은 작가.
엄마는 집나가고, 아빠는 재판중... 집안문제도 많습니다. 돈은 당연히 별로없고...
시골에 집은 하나 있어서 잘곳 걱정은 없는게 다행인 캐릭터죠.
그런 종수 앞에 우연히 해미가 나타납니다.
해미는 전형적으로 손에 잡힐것 같은 여자중에 가장 매력적인 여자입니다.
해미의 자취방에 비치는 남산타워에 반사 된 빛처럼
운이 좋아서 만나게 된 천재일우의 여자같아요. 종수는 이걸 넘나 잡고싶죠.
(아시다시피 반사 된 빛은 금방 사라지고 해미도 곧 사라지죠)
나 처럼 별 볼 일 없는 인생에, 나랑 술도 마셔주고 잠도 자주니 얼마나 좋나요.
리틀 헝거, 그레이트 헝거를 하는걸 보니까 나보다 좀 나은거 같기도하고
귤 사먹을 돈은 있을 것 같은데 귤을 먹으려고 마임도 배웠다는게 엉뚱한고 매력적입니다.
아무튼 종수는 해미한테 고양이가 없다는것 잊는 법을 배우고 해미는 아프리카에 갑니다.
헐 근데 해미가 무슨 벤이라는 남자를 데리고 옵니다;
간만에 만난 행운에 이상한놈이 껴버린거죠.
거기다 벤이란 사람 너무 잘났습니다. 왜냐면 막 포르쉐 오너거든요...
그 놈은 요샌 일하는거랑 노는거의 구분이 없다는 존나짜증나는 소리나 합니다.
종수는 눈뜨고 코 베일것 같은 느낌을 받지만 뭐라고 말도 못합니다.
해미랑 사귀기로 한것도 아니고 당당하게 뭐라고 하기엔 벤이 너무 잘나서요...
벤은 이 영화에 나오는 제일 큰 수수께끼중 하나죠.
영화에선 '개츠비'라고 표현하죠.
젊은 나이에 포르쉐 몰고, 강남의 고급 맨션에 살면서 일도 안하고 매일 친구들과 파티...
스펙을 쌓는다거나 엄청난 자격증을 딴다고 도달할 수 있는 클래스가 아닙니다.
현실의 '갓물주'라고 불리는 이들로 생각할 수 있죠.
한국엔 개츠비가 참 많습니다.
아무튼 이 때 부터 해미는 벤이랑 붙어다니고 종수는 깍두기 같은 느낌으로 껴들게 되는데,
종수는 해미랑 사귀냐고 물어볼 용기도 없습니다. 해미한테 저 사람이 널 왜만나냐고 물어보는게 다죠.
용기도 없이 벤에 대한 적개심만 쌓입니다.
근데 이 때 쌓이는건 적개심 뿐이 아닙니다, 부러움이 있죠.
저런 인생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지만 나도 사실 벤처럼 되고싶죠. 동경과 적개심이 동시에 쌓입니다.
이는 나중에 종수가 비닐하우스를 태우는 꿈을 꾸는것으로 드러나기도 하고,
실제로 비닐하우스에 불을 붙이려나 마는 장면으로 묘사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시간은 흘러흘러 파주, 종수의 집에서 셋이 대마초 파티를 합니다.
여기서 벤이 포르쉐 카 오디오에서 듣도 보도 못한 존나 멋있는 음악을 틉니다.
해미는 그 음악에 맞춰서 옷을 벗고 춤을 춥니다.
종수는 석양에서 춤을 추는 해미가 너무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듭니다.
나랑은 잤으니까 그렇다 쳐도, 벤 앞에서 옷을 막 벗어? 무슨 사이야?
마치 벤이 음악을 틀어서 해미의 옷을 벗긴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너무 기분이 더럽죠.
사실은 내가 벗기고 싶었는데.
여기서 종수가 속마음을 처음으로 강하게 말하며
벤에게 적대감을 내비칩니다.
"씨발 나는 해미를 사랑한다구요"
벤은 특유의 광대승천 표정을 보여주면서 미묘하게 웃습니다.
종수 마음의 소용돌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그리곤 비닐하우스 얘기를 하죠.
'버닝'이라는 제목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는 단서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벤의 취미는 비닐하우스를 태우는 겁니다.
누구의 소유인지도 모르는 비닐하우스를 태웁니다.
심지어 태우는데 템포도 있답니다ㅋㅋ 2달에 하나씩 태운답니다.
흉물스럽다, 쓸모 없다는 표현을 쓰는데 거슬림이 없습니다.
(물론 여기서 나오는 비닐하우스는 종수와 같은 평범한 사람의 메타포겠지만 그런 뻔한 얘긴 넘어가겠습니다)
동시존재니, 쓸모없다는 걸 받아들인다느니 하는 얘기를 하는데
종수는 비닐하우스를 태운다는 부분부터 하나도 이해가 안되었습니다. 너무 다른 차원의 이야기...
아무튼 벤에겐 나도 하찮고 사실 해미도 별 의미없는 존재라는걸 어렴풋이 느낍니다.
그 날 종수는 벤처럼 비닐하우스를 태우는 꿈을 꿉니다.
해미는 사라집니다.
이 이후로 종수는 벤의 취미를 스토킹하고, 해미를 찾아다닙니다.
(아버지의 이야기는 쓰고싶지 않았던 종수가, 벤의 이야기가 쓰고싶어지는 시작점?
혹은 수수께끼를 처음으로 풀고싶어하는 의지를 보인 장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종수는 벤이 태우는 비닐하우스를 찾는데 실패합니다.
간만에 만난 벤은 이미 비닐하우스를 태웠다고 말하죠.
또 나옵니다 그 애매모호한 표정.
태웠는지 안태웠는지 모르겠는 표정... 근데 태웠답니다. 너무 가까이 있어서 못봤을거라고 합니다.
그리고 벤은 자연스럽게 해미가 아닌 다른 여자를 끼고 다닙니다.
해미가 없어진건 별 일 아닌것처럼 말합니다.
근데 이런말을 합니다.
'해미가 종수씨를 특별하게 생각한거 알아요? 그때 처음으로 질투가 나더라니까...'
어이가 없습니다. 모든 걸 다 가져놓고 나는 해미 하나뿐인데 그걸 질투하다니
그 이 후 몇일을 계속 벤을 스토킹하던 도중, 벤의 집에 초대받게 됩니다.
벤의 서랍에서 해미에게 줬던 시계를 발견하게 됩니다.
종수는 의심합니다.
비닐하우스는 해미였나.
해미를 태워버렸거나 아무튼 어떻게 없애버렸나.
(물론 해미 직장동료가 해미와 같은 시계를 차고 있는걸 봤지만... 종수에게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고양이가 등장합니다.
(해미에게도 고양이가 '아마도' 있었죠, '보일이'라는)
보일이라고 부르니까 고양이가 종수에게 다가옵니다.
종수는 의심을 확신으로 바꿨습니다.
종수는 벤의 집을 떠나서 해미의 집으로 갑니다.
그리고 피나는 판토마임 수련 끝에, 해미가 없는걸 잊어버리는데 성공해서
해미에게 핸드잡을 받습니다.
그리고 영화에서 처음으로 소설을 집필하는 것으로 보이는 종수가 묘사됩니다.
여기까지 와서 영화가 거의 끝나가지만
영화에서 나오는 모든 사건의 인과관계는 종수의 뇌피셜처럼 묘사됩니다.
모든 사건의 종수의 시선으로 관측되고, 종수는 진실을 물어볼 용기가 없거든요
벤은 그리고 항상 애매모호한 표정과 애매모호한 대답만 합니다.
그리고 해미는 그 존재 자체로 메타포였을 뿐 실제로 존재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닐하우스가 진짜 비닐하우스인지, 태우긴 태웠는지, 해미는 왜 사라진건지
우물 이야기도 진짜였는지,... 우물의 존재근거도 가장 믿음직 하지 않은 엄마의 입으로 들려줍니다.
그 시계는 진짜 해미의 시계인건지, 고양이는 진짜 보일이 인건지 우연인건지.
아니 애초에 해미가 진짜 고양이를 키우긴 했는지...
종수를 이 시대의 청년, 그리고 벤을 이들에게 박탈감을 주는 누군가 (개츠비, 혹은 사회 시스템)
라고 생각한다면
해미는 종수가 벤에게 박탈당한 모든 것들의 메타포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해미는 영화 외적으로 이러한 메타포이자
비닐하우스의 메타포(종수의 뇌피셜에서)이기도 합니다.
자 여기서 영화를 리와인드 해보면 벤의 집에서
해미가 메타포에 대한 질문을 종수에게 합니다.
종수는 대답을 하지 않죠. 종수는 메타포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것이 실체인지 비유인지.
왜냐면 그게 실체인지 비유인지 명확하지 않아도 확실한게 하나 있거든요
바로 종수에 마음에 생겨난 박탈감입니다.
아무튼 영화를 여기까지 보고나면
종수는 굉장한 박탈감에 빠집니다. 하지만 누가 무엇을 빼앗았는지에 대한
명료한 묘사는 영화 어디에서도 해주지 않죠.
(이 부분을 곡성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창동 감독의 이 전 작품에 비해
노골적으로 인과관계를 흐트려놔서 마치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는 상황.
즉, 곡성의 외지인의 정체와 무슨 행동을 했는지는 애매모호하게 묘사하지만
곡성주민들의 피해와 감정의 골은 노골적으로 묘사하는 테크닉을 차용했다고 보았습니다)
이 이후의 장면은 실제로 일어난 장면일 수도 있고,
아니면 종수의 소설 속 이야기 일수도 있습니다.
저는 소설 속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으로 종수의 시선이 없는 벤의 장면이 나오기 때문에 (화장씬)
종수의 전지적 시점으로 그려진 장면이라 생각했습니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종수는 벤을 불러내 아버지의 칼로 찔러죽입니다.
그리고 불태웁니다.
영화는 묵비권을 얻습니다.
수수께끼의 진실을 말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의 목숨을 끊어버렸죠.
그렇게 영화는 끝납니다.
휴 생각보다 길었네요, 짧게 쓸만한 깜냥이 안되서 주절주절 쓰다보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신분이 혹시 있다면 정말 감사하네요.
영화의 의도를 마무리 하자면,
이창동 감독은 박탈감에 짓눌린 청년들의 양가적인 감적을 묘사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첫째는 동경이죠. 종수는 아버지를 혐오합니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써보라는 얘기에 콧방귀도 뀌지 않죠.
아버지도 충분히 소설의 주인공이 될 만한 사람인데도 말이죠.
하지만 종수는 '아마도' 벤의 이야기를 씁니다. 벤은 '아마도' 해미를 죽인 사람인데도 받아들인 거죠.
둘다 부도덕한 범죄자일 지라도, 개츠비가 되고싶은 겁니다. 이미 도덕적인 부분은 관심사 밖 인거죠.
두번째는 분노입니다. 종수는 무언가를 박탈 당했습니다. 사실 당하지 않았을 수 도있습니다.
해미랑 사실 사귄것도 아닙니다. 모든 실체와 인과관계가 수수께끼 속에 사라졌지만,
종수의 분노 만은 실재합니다. 그리고 그 분노는 벤을 (소설 속에서)죽일정도로 강하죠.
감독이 이러한 종수(로 대표되는 청년들, 혹은 비닐 하우스)의 태도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지 부정적으로 바라보는지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그들에 대한 연민의 시선을 보내고 있는것을 확실하다고 느꼈습니다.
한국경찰은 비닐하우스 같은 것엔 관심이 없기때문이죠...
아무튼 간만에 며칠동안 되새겨 볼 만한 거리를
만들어 준 영화라 흥미롭고 좋았습니다.
사실 그렇게까지 재밌는 영화는 아니지만요.
(곡성처럼 이 형식 자체를 영화적 재미로 승화시키진 못하고 껍데기에 머물었다고 생각되네요)
그래도 흔히 나오는 영화는 아니기에
한번 씩 보시는건 나쁘지 않을것 같습니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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