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치즈키 카린의 매력이라고 한다면 가벼운 음침함 내지는 시니컬함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소녀만화에서 흔히볼 수 있는 꽃이 만발하는 연출 따위는 전혀 고려에
넣지 않죠. 타치바나 히구치의 'M과 N의 초상'을 읽어본 분들이라면 그 분위기에서
개그 포인트를 완전 제거한 느낌과 비슷하다고 하면 좀 이해가 갈려나요.
여튼 국내에 발매된 '웃을 수 없는 이유'와 이 '스위치' 둘 다 그러하다 보니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고 국내에선 별로 인지도가 높지 않은 편입니다.
일반적으로 소녀만화에서 어른인 남자와 여학생의 이야기를 그릴 때에는
정신연령을 둘 다 낮춘 후 둘 사이의 미스커뮤니케이션을 그리는 것이 보통이지만
'스위치'는 오히려 여자애의 정신 연령을 높여서 (라기 보단 그냥 좀 그늘을 만든
것 뿐이지만) 대등한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것이 특징입니다.
비교적 유사한 작품을 꼽아보자면 마츠모토 토모의 'KISS'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만 위트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끝까지 어린애인 모습을 감추려고 하는
모습에선 꽤 큰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교사와 학생이라는 관계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으레 스쳐지나가는 그러한 하나의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식이 강합니다. 실제로도 혹시나 그 둘 간의 사랑이
이야기거리가 되었을 때는 둘의 철없음을 비웃기에 바쁘죠. 작중 교사인
히로타 역시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학생일 때의 세계는 좁으니까,
나중에 뒤돌아봤을 때 아 그 땐 학교 말곤 없었지 하고 자신의 좁은 시야를
인정하게 될 것이라고. 하지만 그를 좋아하는 케이는 어느새 자신의 나이보다도
훨씬 발돋움을 해서 어른이 되어 있었습니다. 아무 것도 확실한 게 없는 힘든
길이지만 많은 인내 끝에 자신의 매력을 히로타에게 각인시키고 말죠.
여고생...을 그렸지만 발랄함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흑과 백으로만 이루어진
지나치게 모던한 느낌이라 잔재미를 찾기는 매우 어려운 작품입니다.
하지만 처음엔 그저 조숙하고 과묵한 애인 줄로만 알고 있던 케이가
성숙한 여자로 진화하는 과정을 지켜보다 보면 작품에서 눈을 떼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마지막 컷은 진짜 최고...
국내에 소개된 모치즈키 카린의 또 다른 작품인 '웃을 수 없는 이유'는 어릴 적
질투심 때문에 던진 한 마디가 트라우마가 된 소녀와 그 한 마디를 던진 소년이
수 년 만에 다시 재회하는 이야기입니다. 역시 소녀는 좀 음침한 설정이구요..
'웃을 수 없는 이유'에는 한 권당 한 두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오히려 본편보다
단편의 평이 좋습니다. 짜임새도 좋지만 특유의 음침함과 튀는 설정이 잘
맞아떨어지는 작품이 많기 때문에.. 물론 본편도 재밌습니다.
(개그는 확실히 '스위치'보다는 '웃을 수 없는 이유' 쪽이 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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