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어로즈와 LG 트윈스의 7차전이 열리고 있는 잠실 구장.
취재석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낯선 얼굴이 보인다.
PD : "NHK?"
NHK : "(일본어로) 예, 그렇습니다."
인간 극장 [ 머나먼 세이브 ]
7회초, 일찌감치 8점을 내고 앞서가는 히어로즈의 공격.
히어로즈 벤치엔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이광환 : "모든 경기가 오늘만 같았으면 얼마나 좋아."
하지만 그와 반대로 NHK 취재진들의 얼굴엔 먹구름이 가득하다.
NHK 카메라맨 다나카씨는 전광판을 보며 한숨을 짓는다.
다나카 : "딸 얼굴 본지 2년이 넘은거 같습니다."
유배 아닌 유배생활을 하는 NHK 취재진들이 한국에 입국한지 2년이 흘렀다.
한국에서 활약하는 투수 다카스 신고를 취재하기 위한 일정.
하지만 2년 동안 다카스는 단 한번도 등판하지 않았다.
이광환 : "저 사람들 심정을 모르는건 아닌데...
근데 내일 경기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이렇게 하루 이틀이 흘러 어느덧 2년.
운명의 장난일까. 다카쓰가 등판할 만한 상황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무엇보다 답답한것은 다카쓰 본인.
다카쓰 : "하도 심심해서요. 요즘엔 부업을 시작했습니다."
다카쓰씨가 하는 부업이 뭔지 따라가 봤다.
경기 중반, 어딘가로 향하는 다카쓰.
다카쓰가 도착한 곳은 경기장 밖 빵집이었다.
다카쓰 : "경기를 하다보면 배도 출출해지고...
이렇게 바깥에서 먹을거리를 사와서 벤치로 들고가 팝니다. 마진 좀 남겨서요."
PD : "상대팀 벤치에도 파나요?"
다카쓰 : "네 그렇습니다."
PD : "뭐가 제일 잘 나가죠?"
다카쓰 : "음 아무래도...역시 배를 든든하게 해주는 빵이 제일 잘 나갑니다."
PD : "누가 자주 이용하나요?"
다카쓰 : "뭐 다들 많이 사먹지만...그중에서도 특히 SK의 박 상(さん), 기아의 이 상(さん)이
제일 많이 이용하죠."
9회말 LG의 공격.
12 : 0 으로 앞선 상황에서 다카쓰의 등판 기회는 없었다.
전준호가 나가 깔끔하게 경기를 마무리 한다.
하이파이브를 하는 히어로즈 선수들.
NHK 취재진은 이제 완전히 익숙해진 동작으로 장비를 챙긴다.
PD : "장비 챙기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네요."
다나카 : "댁도 이 짓만 2년 해보슈."
오늘도 세이브 장면을 카메라에 담지 못한것이 화가 나는지, 카메라맨 다나카씨가
톡 쏘아 붙인다. 그래도 가족이 멀쩡한 다나카씨는 행복한 편이다.
음향 담당 나카무라씨는 부인이 도망을 갔다.
나카무라 : "2년 동안 집에 안들어갔으니...할수없죠."
짐을 챙기고 버스에 타는 취재진들.
이렇게 오늘 하루가 저물어 간다.
2편
다음날.
기아와의 경기가 열리는 목동야구장에 어김없이 NHK 취재진이 와 있다.
다나카 : "오늘은 올라올거라고 믿습니다. 왠지 느낌이 좋네요."
다나카씨의 말대로 오늘 경기는 팽팽한 투수전으로 흘러가는 것이 심상치 않다.
6회가 끝난 후 히어로즈의 1점 리드로 2 : 1의 스코어.
NHK 취재진에 갑자기 활기가 돌기 시작한다.
다나카씨는 상기된 목소리로 국제전화를 건다.
다나카 : "여보? 나요. 응. 놀라지마. 드디어 촬영을 할 수 있을것 같아!
그래. 우리 딸 초등학교 들어갔다고?"
나카무라씨도 전화기를 붙들고 뗄줄을 모른다.
나카무라 : "여보세요? 아... 나야. 자기 전 남편. 아, 아니. 그게...오늘 촬영 끝날것 같아서..
이 촬영이 끝나면 일본으로 돌아갈거야. 그러니까...저...다시...합쳤으면...해서."
하지만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기아 계투로 올라온 문현정이 일을 저지르고 만다.
스코어는 7 : 1로 히어로즈가 크게 앞서가기 시작했다.
다나카 : "아....아...뭐야 이거"
나카무라 : "칙쇼! 문 빠가야로! 시네!"
아연실색하는 NHK 취재진.
다나카씨는 울면서 다시 전화기를 들었다.
그 와중에 다카쓰가 부업을 시작한다.
이제 제법 익숙한 한국말로 외치는 다카쓰.
다카쓰 : "빵 와쏘요~마싰눈 빵이 와쏘요~죵봄씨도 마싰서서 매이루 촸는 빵이 와쏘요~"
야속한 야구공은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담고 오늘도 굴러간다.
그리고 다음날.
오늘도 목동 야구장에선 기아와의 경기가 열리고 있었다.
어제 기아 불펜진의 방화로 취재기회를 날린 NHK 팀은 의기소침해 있었다.
나카무라 : "이번엔 진짜 돌아갈 수 있을줄 알았는데..."
나카무라씨는 한숨을 쉬며 그라운드를 바라본다.
플레이 볼.
오늘 역시 팽팽한 투수전이다.
하지만 어제 일이 있었기에 취재진 역시 기대 하지 않고 경기를 지켜보았다.
6회, 7회, 8회...
8회 초가 끝나고 스코어는 3:1, 히어로즈의 리드.
이대로 게임이 계속된다면 9회 초에 다카쓰가 등판할수 있다.
8회말 마운드에 오른 건 기아의 한기주.
이기고 있는 경기가 아니지만 조범현 감독은 9회를 생각해 한기주를 올렸다.
한기주가 등판하는 순간, NHK 취재진은 한 마음이 되어 히어로즈 덕아웃을 노려보았다.
취재진의 눈길이 향하는 곳엔 태평한 얼굴로 해바라기 씨를 까먹는 이광환 감독이 있었다.
한기주의 속이 꽉찬 스트라이크.
히어로즈 타자들은 힘 한번 못써보고 3자 범퇴로 물러난다.
드디어 운명의 9회 초.
불펜에서 2년만에 몸을 푼 다카쓰가 마운드에 오르기 시작한다.
음향 담당 나카무라씨는 눈물을 흘리며 장비를 고쳐 쥐었고,
카메라맨 다나카씨는 "아빠 이제 갈께" "여보 사랑해" 라고 수없이 되네이며 카메라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 순간 이었다.
갑자기 천둥이 치더니 폭포수같이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물바다가 된 그라운드.
선수들과 심판이 급하게 철수하기 시작한다.
엉망이 된 그라운드를 바라보며 해설진도 한마디 거든다.
한명제 : "이거 갑자기 비가 오는데요? 기세로 봐선 금방 그칠것 같지 않네요."
허구연 : "이래서 돔구장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야구 인푸라가 턱없이 부족하거든요.
약 20분 후,
심판진에 의해 강우 콜드 선언이 내려졌다.
다카쓰는 내가 하는게 다 그렇지 뭘 이라는 듯한 표정으로 덕아웃으로 돌아갔다.
그 순간이었다.
취재석에서 그라운드에 뛰어들어가는 괴한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 : "칙쇼! 빠가야로! ㅅㅂ"
2년 동안의 한국생활 결과 제법 자연스럽게 ㅅㅂ이라는 단어를 말할수 있게된 다나카씨.
다나카씨는, 오늘 원없이 그 단어를 연발하고 있었다.
한명제 : "하하, 강우 콜드 세레머닌가요?"
캐스터의 웃음을 뒤로하고 다나카씨는 원망스러운 그라운드에 몸을 날린다.
나카무라씨는 이제 모든것을 포기한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굴 뿐이었다.
[출처] 머나먼 세이브 |작성자 뻘건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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