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난 어쩌면 글에 소질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라고 막연하게 생각함.
그때 쪼렙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40대 이후의 내 삶이 보이질 않았음.
그러다 운좋게 전략기획으로 옮겨서 꽤 인정받고
지방 소도시, 도청일 기획하면서 재밌게 일함.
그런데 서른 초반에 자취방에서 알지롱 하다가 생각해보니까
또다시 내 40대 이후의 삶이 안 보임.
당시 연봉이나 대우는 만족스러웠는데 끽해야 40중후반까지
시골에서 구르다가 짤릴 운명이었음.
그래서 장가도 가고 평생 일할 것도 찾기 위해 사직서 내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옴.
그렇게 '세상이 망해도 교육산업과 결혼산업은 망하지 않는다!'라는
생각에 웨딩 컨설팅 업체에서 일하게 됨.
다행히 그동안 전략기획 스킬 쌓은 거랑 웨딩업계 일이랑
콜라보가 잘 돼서 안정적으로 기반 닦아나감.
그런데 또 알지롱 하다가 갑자기 의문이 드는 거임.
아 이거면 50대까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다음은?
그리고 그때까지 이 일을 재밌게 할 수 있을까?
내가 정말 이 일을 하려고 태어난 걸까?
오만 생각이 머리를 꽉 채움.
그런데 그때 TV 틀어놨었는데 마침 얼마 전 코로나로 죽은
김모 감독이 청룡영화제에서 상을 수상하고 있었음.
근데 수상소감에서 "제가 처음 영화공부를 시작한 XXX 아카데미에서..."
라는 말을 듣고 갑자기 뭔가가 머리를 딱 스침.
그동안 알지롱거들이 댓글로 달아준 무수한 ㄴㅇ;ㅣㅏ른ㅇ;ㅣㄹㄴ들이
떠오르면서 그 순간 내가 평생 가장 재밌게 잘 할 수 있는 일을 깨달음.
그렇게 바로 인터넷에 XXX 아카데미를 검색했는데 이게 또 운명적인게
마침 그 날이 수강생 모집 마지막 날, 마감 5분 전이었음.
그래서 냅다 수강신청 하고 'MBC 아카데미 드라마 작가 기초반'을 다니게 됨.
그렇게 드라마 작가의 꿈을 품고 회사 다니면서 공부를 병행하기 시작했는데
7시에 칼퇴하고 저녁먹고 커피숍 가서 차 끊기기 전까지 글을 씀.
그리고 주말엔 아카데미가서 수업듣고 무한 반복.
진짜 주말에 쉬어본 적도 없고, 매일 4~5시간 자면서 글만 씀.
그런데 첨엔 당장 드라마 작가 될 것 같은 자신감이 있었는데
막상 전국에서 모여든 작가지망생들 사이에 끼이니까 내가 개쪼렙인거임.
근데 포기하지 못한게
그동안 알지롱에서 받은 수많은 ㄴ아ㅣ룬ㅇㄹㄴㅇㄹ 리플들이
'난 글을 잘 쓴다!'라는 자신감이 되어 날 버텨주고 있었음.
그렇게 몇 년 동안 회사 - 글 - 회사 - 글 무한반복의 지옥에서 계속 구름
그렇게 혹독한 작가교육원 전문반까지 수료하고
드디어 7년 만에 KBS 드라마 공모전 최종심사까지 올라감.
비록 당선은 안됐지만, 드라마 쪽은 최종심 올라간 것만으로도 꽤나 큰 성과라
(경쟁률 막 3천대 1) 자신감 얻고 다시 글쓰기 시작함.
그런데 8년 째도, 9년 째도 계속 미끄러짐.
마침 회사 그만두고 작게 사업 차린게 어느정도 할만해지고
계속 하면 평생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기도 했음.
근데 평생 그 일 하면 재밌을 것 같지가 않음.
그래서 결국 아내한테 고백함.
나 1년만 제대로 글 써보고 싶다.
지금까지 공부한 거 알지 않느냐. 내가 쓴 글들도 보지 않았냐?
나 가능성 있다! 여기서 포기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
그러니까 아내가 의외로 '응 해봐'라고 허락함.
아내도 나 알지롱때부터 쓴 똥글 다 읽어보고
크리스마스에 올린 사진 때문에 사귀게 된 거라
내 글에 대해 밀어주는게 있었음.
그렇게 막 성장하던 회사 때려치고 노트북 하나 달랑 든 채
어느 허름한 공동작업실을 들어감.
그리고 이제 진짜 거기서 먹고 자고 하면서 글만 씀.
근데 여전히 공모전은 계속 떨어지고, 작품은 안 풀림.
그렇게 1년이란 시간이 진짜 순식간에 지나감.
그러다가 친구 하나가 갑자기 연락와서 자기네 회사에서
웹소설 공모전 하는데 내보라는 거임.
근데 난 웹소설 거의 읽어본 적도 없었고, 습작으로 하나 썼다가
개폭망한 적이 있어서 그냥 넘기려다가 마침 드라마 공모전 끝나고
한 달 정도 시간이 남아서 시작함.
근데 갑자기 집안일 막 터지고, 입원한 어린 아들 옆에서
간이침대에 노트북 놓고 글쓰다가 간호사한테 혼나고 막 그럼.
암튼 시간에 쫓겨서 마지막 몇 화는 진짜 교정도 안보고 내버림.
그러고 또 다른 드라마 공모전 준비해서 내고 약속한 1년이 다 되어가는데
계속 탈락소식만 들려옴.
마지막으로 지원한 드라마 공모전 결과 보면서
'아 난 여기까지구나...'하면서 아내랑 약속한 대로 1년 지나서 정리 시작함.
'그래도 지금까지 최선을 다 했으니까 후회는 없다.'
하면서 작업실 짐 챙겨서 나오는데 기분이 진짜 엿같은 거임.
마흔도 넘었는데 이제 다시 무슨 일을 어떻게 시작하나.
애는 커가는데 가장 꼴이 이게 뭔가...
그렇게 집에 돌아갔는데 아내가 마지막으로 애 데리고 해외여행 가자고 함.
그동안 죽어라 글만 썼고, 이제 다시 일하면 여행도 못갈거니 알았다고 하고
여행준비 함.
그렇게 며칠 후.
갑자기 집안에 일이 생겨서 여행이 미뤄짐.
그래서 원래 여행가기로 했던 날 아침에 일어나서 밥먹고 있는데
전화가 한 통 걸려옴.
근데 처음 듣는 무슨 회사에서 자기네 공모전에 작품 내지 않았냐고 물음.
진짜 처음 듣는 회사라 거기 낸 적 없다고 하다가 갑자기 친구가 내라고 한
웹소설 공모전이 생각남.
그래서 혹시 거기 아니냐니까 맞다고, 지금 나 때문에 회사 발칵 뒤집혔다고
당장 오후 2시까지 오라고 함.
알고보니까 내가 그 공모전에 작품 내면서 너무 정신이 없어서
연락처를 안적음....
근데 심사위원들이 내 작품을 수상작으로 뽑아버림.
그렇게 신문에 공모전 결과 기사 내고 위에까지 다 올라갔는데
막상 작가가 연락이 안되는 거임.
그렇게 공모전 당일까지 연락 안돼서, 위에서는 당장 수상작 교체하라고
난리나고 무슨 연락처도 안적는 작품 뽑았냐고 담당자들 엄청 깨지는
상황에 겨우겨우 이메일로 수소문 해서 전화통화가 된 거였음.
그렇게 갑자기 전화받고 내가 무슨 상을 받는지 뭘 받는지도 모르고
대충 수염깎고 부랴부랴 광화문으로 감.
가서 담당자 만났더니 내가 대상이라고 함.
근데 난 진짜 안 믿겨서 혹시 무슨 착오 있는 거 아니냐고
진짜로 몰래카메란줄 알았음.
막 아내 연락받고 부모님도 오고 계시는 중이었는데
몰래카메라면 진짜 죽고 싶겠다 그러면서 행사장 맨 앞줄에 앉음.
근데 갑자기 무슨 대기업 임원들 와서 악수하고 들고 사진 찍으라고
판넬 같은 걸 주는데 거기에 'XXX 대상 상금 7500만원' 이렇게 써있음.
순간 너무 놀래서 담당자 붙잡고 이거 진짜냐고 계속 묻고
아내는 막 애 붙잡고 울고 있고 그렇게 말도 안되게 수상이 끝남.
그렇게 하루 아침에 웹소설 작가가 돼서 정식 계약하고 준비하다가
이번에 카카오에 런칭해서 막 연재 시작했습니다.
이게 잘 될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이렇게 '작가'라는 아직은 어색한 타이틀을 달 수 있게 해주신
모든 것의 시작 알지롱거 분들께 깊은 감사드립니다.
정말 여러분의 ㄴ잏ㄴ이ㅏㅎㄶㄴ 가 없었다면, 전 10년 동안 버티지
못했을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 세발오빠 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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