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글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나의 배경에 말함으로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말이라는 비판을 방지하고자 한다.
간단히 배경을 설명하자면 나는 개신교 전도사님인 어머님 밑에서 모태신앙으로 자랐고 중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믿기 시작하였고 이후 고등학교, 재수, 대학교 1학년때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교회에 다녔다. 단순히 다니는 것에 그치지않고 교회내에서는 항상 임원을 맡았고 고등학교 대학교에서도 기독교 동아리로써 활동하였다. 내가 다닌 교회는 초대형교회나 개척교회가 아닌 대예배 참석이 1000명정도되는 중형교회였으며 장로회 합동신학 교회였으며, 매년 수련회, 기도회, 부흥회 참석은 물론 해외 선교, 사랑의 교회 찬양모임이나 CCM가수 콘서트들도 자주 참석하였다. 또한 성가대와 찬양팀으로서 찬양팀으로 활동하고 때때로 찬양 인도로 맡았었다. 현재는 아래에서 나열할 이유로 인해 기독교를 나온 상태이며 현재는 불가지론자로서 주위에서 주도적으로 기독교를 비판하는 입장이다. 이상으로 배경 설명은 마치기로 한다.
그럼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한다.
1.대화의 단절
예전에 택시 기사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있다. 어떤 기독교 아주머니가 탔길래 김선일 사건 이야기를 꺼내며 택시기사 아저씨가 말하길 정부에서 돈을 줬기때문에 풀려난 것이 아니냐 라고 했더니 아주머니께서는 풀려난 이유가 믿음이 좋아서 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택시기사 아저씨가 어떻게 믿음이 좋은 줄 알 수 있냐고 했더니 잡혀서도 기도했다고 하잖아요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내가 말하고 싶은 기독교와 일반인의 대화의 단절을 아주 잘 보여주는 예이다.
70, 80년대에 지역 사회에서 콩 한쪽도 나누며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던 교회들은 배고픔이 사라지니 문을 닫은지 어언 20년이 넘는다.
조지 로메오 감독의 영화 랜드 오브 데드에서 냉전시대의 두 진영을 겉모습은 비슷하지만 대화가 불가능한 인간과 좀비로 표현한 것에 버금갈만한 일이다.
필자의 경우, 기독교인으로서나 비기독교인으로서나 신과 인간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성장함에 따라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렇기 때문에 관련된 많은 책, 영화, 다큐, 음악등을 들었으며 기독교인은 더욱 이래야한다고 믿었다.
특히 파울로 코엘료의 책을 읽고 이것저것 다른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되어서 교회에 와서 친했던 멘토들에게 해당 이야기를 이야기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그런 생각은 악마가 주는 것이다. 생각을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며 왜 그런 생각을 하냐며 이런 나를 위해서 소위 믿음 전담반이라는 것을 만들어 내가 내는 의견에 대해 그건 틀렸다고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기독교는 이를 소위 사탄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사탄의 책이다. 사탄의 음악이다. 사탄의 영화다. 저것들은 이단이다 등으로 이래저래 신도들의 눈과 귀를 가려 생각을 막는다.
또한 다른 종교에 대해 이단이라고 칭하며 (천주교도 물론 이단에 포함) 오직 기독교만이 참 진리인양 떠든다.
현재 사회를 움직이는 하나의 기준이 논리인데 이들은 이것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이들에게 논리적인 답을 요구하면 그 부분은 믿음이라는 이유로 대답을 회피한다.
(얼마전에 동성애와 관련하여 목사와 싸운 적이 있는데 그때도 동성애는 유전적으로 다르게 태어났기 때문에 자신이 태어난 것에 따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냐며 따졌지만 과학이 하나님 위에 있을 수 없다는 이야기만 반복하더라. 혼전순결도 마찬가지.)
2.기독교의 정체
그렇다면 기독교는 무엇인가?
현재 기독교가 유지되는 이유는 생각하기를 멈췄기 때문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수많은 규칙은 왜 지켜야하는지 본인들도 모르기 때문이다.
규칙에는 이유가 있으며 이 이유가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면 사라져야한다.
하지만 이들은 그 이유를 모르기 때문에 맹목적으로 지켜야하는 규칙이된다.
(율법주의자라는 비난을 피하기위해 규칙이라는 표현을 쓰도록 한다.)
예를 들어 보자, 이슬람에서는 돼지고기를 먹지않는다.
이유는 돼지고기가 중동지역에서 쉽게 부패하여 여러 질병을 전염시켰기 때문이다.
내가 볼 때 기독교에서 현재 지키라고 하는 규칙들은
모두 현 기독교를 유지하기 위한 규칙 뿐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헌금의 경우에 기독교가 타 종교에 비해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들은 헌금내라고 당당히 이야기 할 수 있다. 규칙이기때문이다.
또한 위에서 말한 사탄의 ~도 같은 경우다. 규칙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규칙은 다음과 같은 효과도 가지고 있다.
십계명은 가장 기본이 되는 10가지 규칙인데 이 안에 간음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이는 누군가를 간음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는 것도 실제로 간음하는 것과 동일한 죄악으로 취급된다.
이를 통해 모든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고 죄책감을 느끼게 하며 그것의 유일한 해결책은 기독교인 마냥 희망고문을 만든다.
3.규칙의 정체
그렇다면 이러한 규칙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것은 성경이다.
이들에게 성경은 완벽함의 결정체이다. 무슨말이냐하면 다음과 같다.
성경의 한글자도 모두 주님의 뜻으로 들어간 것이며 나쁜 목적을 위해 수정된 것이 하나도 없다고 믿는다. 절대적이다.
하지만 성경을 살펴보도록 하자.
성경을 본적이 있는가? 굉장이 작은 글씨에 얋은 종이에 매우 두꼅다.
이것에 없는 말이 있겠는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이다.
본인은 교회에 다니며 다음과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성경에는 ~를 하지말라고 쓰여있었는데 설교 내용은 이게 진짜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하라는 이야기이다 라는 설교를 들은 적 까지도 있다.
아, 이들에게 설교 또한 절대적이다. 왜냐하면 모든 설교자들은 설교시간에
하나님이 이 설교자들을 빌려 이야기하는 것이 되기때문이다.
설교자가 되는 일은 쉽다.
거의 모든 대학에서 기독교학과는 최하위의 입학점수를 기록하교 있으며
목사 시험은 몇년째 불합격자가 한 명도 없다.
사실 나쁜 마음을 먹고 목사과 되어도 아무런 걸러낼 수 있는 장치가 없지만
이들은 이를 검사할 생각조차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성경이 내려오기 천년이 넘었는데 어떻게 이것이 수정되지 않을 수 있는가?
오히려 제대로 된 기독교 인이라면 더욱 수정될 확률을 확인하고 순수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해야하지 않는가? 필자가 실제 성경이 쓰여진 석판을 박물관에서 본 적이 있는데 그것과 현재 읽고있는 성경이 다른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이들이 말하는 소위 은혜라는 것이 있다.
그들은 설교를 듣거나 찬양을 들으면 은혜를 받았다는 표현을 한다.
필자가 해외 선교를 갔을 때 이동하는 버스에서 은혜받았다며 그들이 내내 찬양을 불렀다.
하지만 이 은혜는 쉽게 말해 즐거움이다. 사실 차이가 없다. 그들은 단지 해외에 갔다는 이유만으로 즐거워 부른 노래였다.
기독교 인이라면 한번 이 차이점을 나에게 설명해주기 바란다.
4. 기독교의 모순
기독교의 정체는 하나의 마이너 사회이다.
기독교라는 장벽 안으로 들어갔지만 그들이 하는 일은 사회와 다를 게 없다. (아니 사실 더하다)
기독교 인들을 구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 뭔지 아는가?
바로 그들이 입은 옷을 보면 구분하기 제일 쉽다.
그들은 사회와 스스로를 단절시키고 자기들 끼리만의 커뮤니케이션을 확장시켜갔기때문에
현대의 유행을 따르지 않고 외모에 집착하지 않는다며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하지만 실상을 뜯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그들 내에서도 옷을 잡입는 사람은 더욱 인기가 많다. (물론 유행은 따르지 않으며 걔중에 잘입는 것을 뜻한다.)
또한 필자가 고3일 때 고3이라고 교회를 안나오는 학생들과 그걸 방관하는 학부모들을 비판하는 설교를 들은 적이있다. 나는 이 말에 공감하고 고3과 재수 시절에도 교회활동을 줄이지 않았고 친했던 다른 형은 고3 시절동안 학교 생활을 안한 적이 있었다.
결과는 나는 지방대 그 형은 서울에서 알아주는 명문대에 진학하였다.
하지만 그 뒤 설교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학생의 본분을 지키지 않은 사람이라는 비판을 받았으며 그 형은 본분을 지킨 사람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교회에서 일하는 사람은 소위 사역자라는 이름으로 불리운다.
이 범주안에는 담임 목사, 부목사, 전도사로 구성된다.
전업 전도사를 제외하고는
보통 전도사 -> 부목사 -> 담임 목사를 거치게 된다.
보통 전도사는 유아부, 유치부,
부목사는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 대학부나 청년부를 맡는다.
부목사들의 실상을 말하자면 처참하다.
부목사 대부분은 최저임금을 받는다. 그 이유에 대해서 담임 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의 채워주심을 느껴보라는 훈련으로서 일부러 조금 주는 것이라고, 전도사는 이보다 더하다. 하지만 담임 목사들은 그런 거 없다. 그들은 훈련이라도 끝났다는 것인가?
필자의 교회에서 부목사를 뽑을 때 있었던 일이었다.
담임목사가 꽤나 다혈질이였기 때문에 부목사를 뽑을 때
우리 교회에 지원자가 한 명 뿐이었다.
그 지원자분은 이전 교회 목사와의 문제로 3년간 사역(교회에서 일하는 것)을 쉬었던 사람이어서 다시 교회에 온다고 하면 일을 못할 것이 예정되었던 사람이었다.
뽑을까 말까 고민하던 중 담임 목사는 저녁예배 때 다음과 같은 꿈 이야기를 하였다.
예수님이 꿈에 나와서 기름에 반죽을 넣어서 도너츠를 만드는데 자기가 만드는 건 계속
실패하였는데 예수님이 만들기만 하면 성공했다고 한다. 이 때, 예수님께서 말하길
니가 그 사람을 훈련시켜라 라고 했다고 한다.
아무리 무슨 말들이 오가더라도 꿈에 예수님이 나왔다고 하면 그 의견은 절대적이된다.
그렇게 그 후보자와 2년간의 계약을 하고 부목사가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에 발생하였다. 역시나 뽑힌 후에 일을 잘 하지 못하였고 교회내에서 소문도 좋지않자
1년만에 속된 말로 짤렸다. 그런데 저녁 예배 때 담임 목사가 한 이야기는 충격적이였다.
이번에 그 부목사가 더 좋은 곳으로 가게되어서 나가게 되었다고..
또한 부목사는 갈 곳도 없었을 뿐더러 당시가 10월이었는데 12월까지 일해달라고 부탁을 받았다. 목사 임용기간은 5월과 11월이기 때문에 12월까지 일을 해야한다면 5월까지 쉬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필자는 이것에 문제를 삼고 담임 목사에게 부당하다고 편지를 썼지만 덕분에 새벽부터 담임 목사 호통을 듣고 담임 목사와 싸우고 그것을 계기로 교회를 나오게 되었다.
또한 기독교 동아리의 경우를 이야기 한다.
본인은 CCC였는데 매번 학교에서 학교의 복음화를 위해 눈물흘려 기도했다. 이는 진심이다.
그런데 정작 CCC에게 같이 놀자고 한다면 CCC 모임을 가야하기 때문에 못간다고 한다.
차라리 나라면 밥이라도 같이 먹으며 교회 얘기나 한번 하겠다.
5. 사회에서의 기독교
필자의 어머니를 예를 들어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다.
어머니는 기독교 회사에 다니신다. 이들이 하는 짓은 가관이다.
노동은 봉사라는 이름으로 무임금을 강요한다. 또한 그렇게 무임금으로 오래 일하다 나간 사람을 미화시킨다.
기독교라면 이런 일에 보다 더 정직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요즘 기독교 1층에 카페를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종교부지에 전도라는 명목으로 카페를 세우고
인력은 봉사라는 이름으로 무료로 쓰며 이는 수익은 모두 교회에 쓰인다.
필자가 다니던 교회의 담임 목사는 설교에서 자기는 세금 신고할 때
세무사가 실제보다 낮게 적으라는 말을 듣고 격노하며 그렇게 안했다고 자랑하며 정직에 대해 설교를 한 적이 있지만 실제로 그는 교회 꼭대기에 불법 개조하여 거주하고 있다.
4. 멍청한 신도
위의 부목사 사건에서 내가 나섰던 큰 이유 중 하나는 그 누구도 담임목사의 그 말에 의심을 품지 않았으며 부목사가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필자가 다니던 교회를 나온 후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는데 내가 그 교회에서 8년간 하루도 빠지지않고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나온 이후 담임 목사의 한 마디로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고 그것을 믿었다는 것이다. 나를 본 8년은 온데간데 없고 그렇게 되었고 내가 속해있던 대학부에서는 누군가를 좋아해서 고백했다가 차였다는 둥 기숙사에 들어갔는데 주말에 마음 껏 나올 수 없는 곳이어서 교회에 못 나온다는 등 자기들 편할대로 이야기를 만들어 합리화시켰다.
6. 이 글을 보는 기독교 인들에게
당신들은 비 기독교인에게 말한다. 존중해달라고. 그런데 존중에 대해서 한 마디 하겠다.
우리는 당신들을 존중하기 위해서 일요일날 약속도 못잡고 토일이 편한 약속도 금토로 바꿔야한다.
그런데 당신들은 무엇을 배려해주는가? 존중이라는 것은 양방향일 때 이루어지는 것인데
속으로는 니들은 불쌍한 이들이야, 너네 그러다가 지옥가라고 생각하면서 존중이라는 것이
성립할 수 있으며 그것을 감히 주장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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