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분 한분 답장은 드렸지만 그래도 한번 정리를 해드리는게 좋을까 싶어 길지만 적어봅니다.
작년 와이프의 길고 길었던 항암은 암세포 사멸로 항암을 중단했다.
5년간의 추적검사가 필요하지만 그래도 의사 선생님의 '항암은 종료해도 될것 같습니다.'라는 말에 와이프는 기뻐했다.
꽤 오래 후유증이 남을것 같았던 형의 빈 자리도 빠르게 잊혀졌다... 다만 아직도 갑자기 생각나는 형의 생각은 아직도 지워지질 않았다.
와이프는 기뻐했지만 티를 내지 않았다. 아무래도 내 눈치를 보는 듯 싶었다.
나는 개의치 않았지만 아무래도 마음 한켠에는 계속 짊어지고 갈 것 같다.
와이프의 항암이 종료된 3개월이 지난 시점 와이프는 생리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알고 있었지만 와이프에게 같이 병원을 갈 것을 권유 했다.
항암은 남자보다 여자에게 치명적이다 특히나 가임기 여성에게는 더욱 더
항암제의 제 1 타겟은 분열하는 세포 그렇기에 여자의 난소와 난포는 아무런 잘못이 없지만 항암제에게 공격 받는다.
와이프는 림프암 진단 당시 4기로 판정 받았고 항암치료를 바로 권유 받았다.
난자를 얼리는 데만 1개월이 걸렸기에 당시로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결국 병원에선 '앞으로의 자연 임신는 힘들것 같습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의사 선생님과의 상담을 마치고 와이프는 잠시 화장실에 간다고 했다.
그렇게 잠시 갔다온다던 와이프는 한참을 화장실에서 나오질 않았다.
나도.. 여자 화장실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도 와이프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저 눈을 감고 기대어 가만히 있었다.
나는 뭐라 말을 건내지 못했다..
겪어보질 않은 상황에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급격히 말수가 줄어든 와이프를 뒤로 하고 나는 계속 출근 했다.
가게는 이제 지역 내에서는 어느정도 알아주는 한식당이 되었다.
일이 바빠졌다... 그만 큼 와이프에 대해서도 조금.. 아니 많이 소홀해 졌다..
항암이 끝났다는 것에 감사 했지만 내 마음은 아 이제 끝이구나 라는 단순한 생각이 었다.
하지만 항암을 겪었던 사람에겐 이제 시작이었을 뿐이였고 나는 챙겨주질 못했다.
한 동안 말이 없던 와이프가 집에서 밥을 먹다 말을 꺼냈다.
한참을 머뭇 거리던 와이프 입애선
"우리 이혼 하자.."
물론 이말은 이혼 까지만 하고 멈췄다
말을 다 하기 전에 이미 와이프는 울고 있었다.
내심 이 말을 꺼내기 까지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지 짐작도 안됐다.
나는 형이 암에 걸렸을 때부터 그리고 와이프가 항암을 시작했을 당시 모든 것을 알아보며
이런 상황이 올 것도 예상 했기에
"이혼 하고 싶어도 내가 못해주니까 그냥 옆에 있어줘 그럼 돼"
항상 연습하고 있었던 말을 꺼냈다.
와이프는 더 크게 울었다..
알고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바뀌는 건 없으니까.
마침 내 가방에 몇일 전 와이프의 담당 의사로 부터 도착한 편지를 보여줬다
의사 선생님과는 개인적으로 연락 했다.
도쿄에 아주 유명한 불임치료센터의 추천서 였다.
사실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방법이 있음을 알려주고 싶었다.
당시
내 주변에도 몇몇 불임 때문에 힘들어 하던 사람에게 상담했다.
하나 같이 입을 모았다. '힘들다 네가 생각하던 것보다 더 많이 힘들다.'
와이프에게 물었다.
"불임치료를 하는 쪽으로 가면 많이 힘들어. 나는 당신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하지만 그래도 하고 싶다면 말리진 않아 하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 하고나서 후회하는 쪽이라면.."
와이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달 뒤 와이프는 불임센터에 진료를 받기로 했다.
장모님은 또.. 와이프의 수발을 들게 됐다..
치료를 받기 시작하며 와이프는 매일 두개의 주사를 맞게 되었다.
부작용으로 복수가 조금씩 차긴 했지만 그래도 와이프는 멈추지 않았다.
아직까진 좋은 소식이 없다.. 그래도 와이프는 계속 치료 받고 있다..
그렇게 중간에 가게를 잠시 쉬고 한국에 다녀왔다.
여전히 조카들은 이뻤다.
형수는 조금 힘들어 보였다.
아직 초등학생들인 세명이 얼마나 투닥거리는지 나 조차도 감당이 안됐다.
금전적인 도움이라도 드리고 싶었지만 당장의 우리의 상황도 좋지 못했기에 작게나마 마음을 전했을 뿐이였다.
아버지와 형수, 조카들 와이프까지 밖에서 밥을 먹었을때
둘째 조카는 갑자기
"작은 아빠면 아빠잖아? 그럼 나 작은 아빠 말고 아빠라 부를래!"
형수는 잠시 아무말 없이 화장실을 조금 길게.. 갔다오셨다...
그렇게 어색한 식사는 끝나고
다음날 형이 있는 납골당으로 향했다
아버지가 같이 간다고 했지만 그냥 와이프와 둘이서 간다고 했다.
조용했다.. 생전 기독교 신자였던 형은 24시간 흘러나오는 찬송가 방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때 다 울었다고 생각했던 나는 형의 사진을 보자마자 다시 통곡했다.
그렇게 나 혼자만의 넋두리를 한참을 쏟아내고 일어났다.
노래를 잘 불렀던 형은 나에게 가끔 찬송가를 동영상으로 녹화해서 보내줬다.
화면 속 찬송가를 열창하는 형의 얼굴을 보며 눈시울이 붉어지지만 자꾸 꺼내보기 그래서
아주 가끔 생각나면 조용히 틀어서 본다.
언젠가는 좋은 날이 있을꺼라 기대한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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