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생일 선물로 CD를 주는 것이 유행처럼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동네마다 레코드점이 몇 개씩 있었고, 한 해에 몇 장씩 밀리언셀러가 나왔다. 하지만 지금 그 때의 뮤지션 중 남아있는 이들은 거의 없다. 아니, 있다 해도 그들 중 몇은 사업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다른 이들은 연기를 병행하게 됐으며, 또다른 이들은 서서히 물러날 준비를 하고 있다. 음악이 더 이상 한 장의 앨범으로 유통되지 않고 미니홈피의 BGM으로 소비되고, CD를 선물로 주면 음악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쯤으로 여겨지는 시대. 17년간의 음악 생활 끝에 CD로 발표하는 마지막 정규 앨범 을 들고 나온 이승환을 만났다.
: 이 CD로 내는 마지막 정규 앨범이라고 들었다.
이승환 : 음악을 더 이상 CD로 낼 수 없는 상황이 됐으니까. 요즘 CD는 기념품 같다. 놀이공원에서 놀고 나서 ‘한번 살까?’ 하고 사는 기념품. 이젠 CD로 음반을 내는 게 더 이상 무의미해지는 것 같다. 몇 억씩 들여서 기둥뿌리 뽑아 음악하는 걸 언제까지 할 수는 없으니까. 다음에는 집을 팔아야할 판국이니 그렇게 계속 쏟아 붓기만 할 수는 없다.
: 그러면 어떤 대안을 생각하고 있나.
이승환 : 없다. 온라인 음원으로 수익이 늘지 않았느냐고 하지만 그건 10대와 20대를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가수들이나 가능한 거지 우리는 아니다. 30대 이상이 온라인 음원판매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가 안 된다. 그리고 뮤지컬 시장이 공연 시장을 잡아먹고 있어서 공연 시장도 점점 축소되고. 대안이 있다면 아마 우리 연기자들이 잘 되는 거, 회사가 잘 되는 길 밖에 없을 거 같다. 내가 경영에서 손을 뗐으니까 더 잘 되지 않을까. (웃음)
“어차피 망할 건데, 기둥 뿌리 하나 뽑자”하며 만든 앨범
: 앨범이 가지는 의미에 비해 왠지 여유로워 보인다.
이승환 : 2, 3년전만 해도 되게 괴로워했었다. 나나 나와 함께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트렌디한 음악을 하는 건 아니니까. 그러면 그걸 마케팅으로 보완해야 하는데, 마케팅을 하려면 똥물에 발을 담궈야 하거든. 그러긴 싫고. 거기서 오는 딜레마가 컸는데 이번엔 뭐 어차피 망할 건데, 기둥 뿌리 하나 뽑고... 그런 기분이었다. 그래서 이번 앨범은 내가 생각해도 덜 느끼하다. 욕심이 빠졌거든. 잘 해야겠다는 욕심.
: 이번 앨범은 8집 에 이어 더 간결해진 것 같다. 이승환 특유의 스타일은 유지했지만 그걸 매우 컴팩트하게 정리한 것 같은데.
이승환 : 대중적인 고려를 안 할 수는 없었다. 지금 트렌드가 무겁거나 진지한 걸 싫어하니까 내 색깔만 주고 어느정도 걸러냈다. 녹음하면서 사운드적인 면에서는 무거운 걸 빼려고 노력했다. 그래도 다른 앨범에 비교하면 무겁겠지만. 사실 개인적으로는 불만이긴 하다. 나는 원래 기승전결을 매우 따지는 편이라 곡이 좀 길어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요즘 대중들은 기승전결 대신 ‘전결’만 원하니까. 등 떠밀려 짧게 됐다고 해야 하나.
: 하지만 대중들은 그렇게 대중적이라고 생각하진 않을 것 같은데 (웃음) ‘Pray for me’같은 곡들은 대중이 어느 곳에 포인트를 두고 들어야할지 잘 모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예 록도 아니고, 그렇다고 가요도 아니고. 가스펠도 섞여있고.
이승환 : 대중성을 생각했다는 거지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안 하는 게 아니니까. 그래도 지난 앨범에서는 7번 트랙부터는 완전히 내가 하고 싶은 음악만 했는데 이번에는 그래도 9번부터다. (웃음) 미국 스탭들은 오히려 좋아하던데, 이런 식으로 여러 가지가 섞이는 걸 듣는 전통이 한국에서는 없기 때문에 대중들이 듣기는 어려울 거라는 생각은 한다. 그래서 그런 전통을 세워보고 싶은 마음도 있고. 여러 장르를 하면서 내 식대로 하고 싶었다.
: 그런데 그런 장르의 문제는 결국 사운드의 문제라고도 생각된다. 4집 이후로는 점점 사운드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승환 : 내가 어렸을 때 스피커를 통해 감동받았던 건 소리였다. 나는 가사가 잘 들리지 않는다. 가사는 잘 안들리고 다 소리로만 들린다. 소리에 결부되지 않고 멜로디만으로 감동받는 건 익숙하지 않다. 보컬이 어떻게 노래를 하는가를 듣고, 편곡과 사운드의 배치를 듣는다. 갑자기 멜로디만 들리는 음악을 하라고 하면 내가 못 참는 거다.
“음악 하는 사람들을 ‘딴따라’로만 바라보던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
: 그렇기 때문에 대중음악계 흐름과 동떨어진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가. 어떤 사람들은 쉽게 가면서 더 잘되기도 하는데.
이승환 : 양지에 있는 사람이 있으면 음지에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하듯이, 나같은 사람도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드림 팩토리처럼 기존 홍보방식에 의존 안하고, 나처럼 대중성하고 상관없는 음악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2~3년 전에 가요계에서 CD가 없어질 거라고 얘기했다가 욕먹기도 했는데, 결국 이렇게 되지 않았나. 이 현실을 빨리 알렸어야 했다. 그래야 정부의 제도적 지원도 받았을 테고. 그 때도 계속 “잘 된다” 는식으로 홍보하다가 이렇게 돼 버린 거다. 제작자들이 너무 자기 앞가림만 하려고 했다.
: 하지만 어쨌든 지금은 가요계 전부가 몰락해가는 상황이다. 여기서 뮤지션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이승환 : 글쎄, 사실 지금 제일 걱정되는 게 가장 안타까운 건 음악 하는 사람에 대한 경외스러운 눈길이 사라졌다는 거다. 음악 잘하는 사람에 대한 친근감과 호감도 같은 거. 과거 우리를 딴따라로만 바라본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 것 같다. 부모님이 “너희 어떻게 먹고 살려고 그러니” 했던 딴따라. 지금은 돈 많이 버는 사람들만 훌륭한 사람처럼 인정받고 있는 세태라 돈 못 버는 뮤지션들은 더 해결이 안 나는 거 같다. 음악을 잘해도 인정받지 못하니, 나처럼 잘 못하는 사람 말고 진짜 잘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 그런데 오히려 요즘 행보를 보면 음악에 더 집중하는 느낌도 드는데. 지난 번 도 쇼적인 걸 배제한 공연 아니었나.
이승환 : 그건 계기가 있었다. 스팅 내한 공연을 했을 때 내가 표를 사서 우리 밴드를 데려갔었는데, 그 공연 보고 소주 마시면서 망연자실했다. 저들에 비하면 우린 발톱의 때다. 심지어 드럼을 어린 친구로 데려왔는데 걔까지 너무 잘하고. 그래서 음악만 하는 공연을 하자고 해서 를 했는데 너무 즐겁게 연주를 했다. 밴드의 결속력도 좋아지고. 관객들도 너무 좋아했고, 다른 것 없이 소리에만 감동을 했다는 게 너무 좋았다. 그래서 앞으로도 상반기에는 음악회, 하반기에는 쇼적인 공연을 할 예정이다. 그리고 클럽 공연하고. 사실 는 쇼가 아니라서 잘 안 된다. 음반도 7천장 나가더라. 난 그래도 2만장은 나갈 줄 알고 그만큼 찍었는데. (웃음)
17년 동안, 음악은 명예였다
: 공연 타이틀이 이다.
이승환 : 은 나에게 매우 의미가 깊은 공연이었다. 이번에는 그 때만큼의 에너지가 생긴 것 같다. 열정이나 체력, 스텝, 아이디어까지 전부. 4집 이 전환점이었듯이 이번 앨범도 나에겐 하나의 전환점이 될 것이고. 그래서 다시 을 통해 업그레이드를 하고 싶었다. 비처럼 외국 스탭들과 거대 자본을 투입할 수는 없으니 우리가 가진 한계 내에서 최고를 해보고 싶었다.
: 여러모로 이번 앨범이 인생의 전환기인 것 같다. 30대에 접어들었을 때 발표한 앨범 에서는 ‘붉은 낙타’를 통해 불안과 혼돈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40대에 접어드는 지금은 어떤가?
이승환 : 사는 것에 대해 고민을 많이 안한다. 요즘 내 좌우명이 “내일이 없다”다. 미래가 없는 거다. 그래서 오늘밖에 없으니 남은 돈을 다 써서 후회 없는 음악을 만드는 거다. 그래서 초조하지도 않고.
: 17년 동안 아홉 장의 정규 앨범을 내면서 이승환의 음악은 결국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는가.
이승환 : 음.. 명예였던 것 같다. 나라는 사람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기대하게끔 했던 기대치를 충족시켜주는 것. 그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 ‘조금 더, 조금 더’ 하게 됐던 것 같다. 뭐, 말이 명예지, 사실 ‘가오’다. (웃음)
(글) 강명석 (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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