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맨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워너에서 내놓은 배트맨 영화들도 연례행사처럼 되풀이해 보곤합니다. 남들이 다들 똥망이라고 욕하던 DC필름스의 괴작들도 흔쾌히 개봉 첫날 떨리는 마음으로 은막 앞에 앉았던 저 입니다. 하물며 배트맨의 대극인 조커의 솔로 무비라니요. 안 볼수가 없지요. 예고편만으로도 기대가 컸는데 무려 영화제에서 큰 상까지 받았다는군요. 아, 정말 가슴이 뜁니다. 게다가 호아킨 피닉스라면 연기력에서만큼은 이견이 없는 명배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데자뷰랄까 기시감이 듭니다. TV속에서 비웃음을 흘리는 로버트 드 니로 의 얼굴이 낯익습니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 아이고 제가 드 니로의 필모그래피를 전부 다 꿰고 있는 것도 아닌데 그저 기우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로버트 드 니로를 캐스팅하지 않을 수 없는 영화였더군요. 아뿔싸.
마틴 스코시즈(혹은 스콜세지)의 초기작에 해당하는 를 보신 분들이 많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도 어릴 적 비디오 대여점에서 늘어진 VHS로 가볍게 본 것이 고작입니다. 인기리에 빌려가서 늘어진 것이 아니라 대여점 보관 환경이 엉망이라 그런 것이죠.
이 조커라는 영화는 에 바치는 기나긴 헌사와도 같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마틴 스코시즈는 위대한 걸작과 을 흥행에서 대차게 말아먹고 스필버그에 대한 시기와 질투로 오그라지던 시절에 을 찍었습니다. 로버트 드 니로가 분한 루퍼트는 감독의 내면을 드러낸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감독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뿐입니다. 루퍼트가 미친 이유라던지, 망상의 인과관계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관객들은 루퍼트의 망상과 현실에 대해 스스로 결론을 내려야합니다. 하지만 조커는 결론을 정해놓고 출발합니다. 우리는 가해자가 된 피해자가 지옥으로 떨어져가는 과정을 즐겨야합니다. 그래서 감독은 끊임없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얘가요 원래는 이런 애가 아니었어요. 이래서 얘가 미치는 거에요. 불쌍하죠? 근데 이걸로 끝이 아니구요, 요런 짓도 당했어요. 빡치죠?
결정적으로, 에서 감독은 루퍼트를 시궁창에 처박을 수도 있었을지 모릅니다만 차마 그러지 못합니다. 왜냐고요? 스스로를 투영하는 캐릭터를,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나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기는 싫은거 아니겠어요? 그런데 토드 필립스는 아서를 똥통에 빠뜨려 죽이는데 거리낌이 없습니다. 남이니까. 원래 이렇게 될 운명인거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오케이?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덕분에 집중할 수 있던 부분이 없지 않습니다만, 남우주연상이면 족했을 작품을 이렇게까지 띄워주는 걸 보면 크리에이터들도 기근은 기근인가봅니다. 마틴 스코시즈가 30년전에 깔아둔 전철을 여전히 뛰어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캐릭터의 외피만 빌려다가 이런 식으로 소모시키는데도 대중들은 열광하기 때문일까요? 대체 워너브라더스 높으신 분들은 안 뒤지고 뭐하는걸까요...
이 영화는 조커를 다루고 있지만 조커에 대한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아, 이것 또한 하나의 농담인 걸까요?
시발 좆까.
외화 | 3614명이 읽었어요. 3.133.160.15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