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정확히는 중편에 가깝지만) 영화로 개봉은 힘들 수 있지만 시간되면 한번 찾아 보세요
중간중간 이미지 삽입을 할 수 없어서 좀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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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같다.
다 거지같어. 문이 자꾸 잠기는 이 화장실도 거지같고,
만년 조수인 나도, 너도 거지같아. 이제 더 이상은.. 너랑 못 살겠다."
토킹바의 진한 화장을 지우러 들어갔다 갇힌 화장실에 희수는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노력하고 있는데, 노오력하고 있는데 이 사회는 자꾸만 문을 잠근다.
매일 매일 달리고 또 달렸는데도 그 자리다. 제 자리다. 이게 내 자리다.
뭐가 좋은지 나지도 않는 텃밭에 매일 씨앗을 심는 남자친구도 원망스럽다.
먹먹한 오늘의 일기도 치욕으로 끝이난다.
이윽고 엔딩 크레딧에 치욕일기가 올라왔다.
상영은 끝났다.
영화관내 불이 켜지고 GV세션이 시작되자 한 질문자가 손을 들었다.
"감독님, 3포 5포.. 이제는 N포세대라고 불리는 이 시대상황에서
젊은세대가 어떻게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이은정 감독의 눈썹에 힘이 들어갔다.
잠시 생각에 잠겼지만 적절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사실 저도 그 3포 세대에 속한 사람입니다.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어떻게 해야할지..
영화라고 억지설정으로 연결 된 해피엔딩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어요.
영화를 처음 구상할 때부터 고민해보긴 했지만 과연 그런 솔루션이 있을까요?"
희수는 눈을 떴다.
알바 때문에 잠을 몇시간 못자 피곤했지만 웃음이 났다.
검은 가방.
800만원짜리 카메라.
카메라를 안는 것만으로 다시 희망이 샘솟았다.
작은 기회지만 한발자국 나가는 것 같다.
"그래, 다시 시작이다"
희수는 난간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게임을 끝내고 일베에 들어가니 오늘도 위안이 되는 글들이 있다.
'어차피 이 사회는 썩었어.
우린 약자야. 아직 살아야 되. 그러니 더 약자를 공격하는 것은 어쩔 수 없어
생존방식으로 강자에 편에 서서
약자를, 일부지역을, 소수자를, 여성을 혐오 이지매해야 해!'
열심히 댓글을 달다 어느덧 밤이 셌다.
PC방비를 내니 지갑이 텅텅 비었다.
친구가 알바나 구해자곤 했지만 다 귀찮았다.
맨날 그자리가 그자린가 아닌가.
우린 난간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린 한 여자를 마추쳤다.
여자다.
큰 가방을 보물이라는 듯이 안고 있었다.
힘들어 보이지만 씩씩해 보였다.
화가 났다.
나는, 우리는, 그리고 너도
돌고 돌아봐야 그자리인데
머가 그리 신나게 돌고 있는거야?
몸 속에 불이 났다. 우린 그리고 이성을 잃었다.
여자에게 달려들어 가방을 빼았으려했다.
가냘퍼보이는 여자였는데 여자는 질질 끌리면서도 필사적이었다.
우린 놀랬지만 더 힘을 줘 여자를 밀어졌다.
두개 중 하나의 가방을 빼앗아 우린 난간 아래로 도망쳤다.
'우린 어쩔 수 없었다고. 시발'
희수는 남은 가방을 가지고 난간에 올랐다.
제 자리다. 역시 이게 내 내 자리인가?
결국 지하로 내려갔다.
"응암순환, 응암순환행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응암순환? 응가순환?
하하하.. 똥이나 치우며 이 끝나지 않는 자리를 돌라는건가?
치욕이다. 이 세상은 치욕이다.'
"그러니까 왜 그런 사고를 친거야."
전혀 도움도 위로도 되지 않는다.
모든 탓은 내 탓으로 돌아왔다.
"매달 80만원씩.. 갚아 나가면 안될까요?"
희수는 희망을 놓고 싶지 않았다.
"안되!"
선생님은 800만원 카메라를 다음달 까지 갚으라고 한다.
제 자리다.
지쳐서 집앞에 기대다 밤이 깊었다.
"똥 싼 것 치우다가 늦었어"
남자친구는 늦어서 미안하다며 쭈쭈바를 꺼냈다.
"또? 도대체 누가 그렇게 싸는거야?"
희수는 왜 우리가 누가 싼지 모르는 똥을 치우며
다 녹아버린 쭈쭈바를 빨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초복이라 분위기를 내려했지만 똥치우다 치킨은 다 팔렸다.
날은 더워가는데 우리에겐 고장나 시끄러운 선풍기 한 대뿐이다.
거울 앞에 섰다.
화장품을 꺼냈다.
립스틱을 발랐다.
아이섀도를 진하게 두번 발랐지만 눈두덩이의 멍이 거슬린다.
"거지같다.
다 거지같어. 문이 자꾸 잠기는 이 화장실도 거지같고,
만년 조수인 나도, 너도 거지같아. 이제 더 이상은.. 너랑 못 살겠다."
제 자리다. 내 자리다.
짜증으로 울컥한 희수는 베란다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바라봤다.
남자친구가 매일 씨앗을 심던 텃밭에
싹을 틔어 올라온 토마토를.
아무리 뛰어도 제자리 인것 같았다, 매일 그대로인 것 같았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같았다.
그런데 토마토는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우리는 나선형의 난간을, 계단을 걸어올라가고 있다고.
조금만 더 올라가면 꼭대기에 올라가 멋진 전경을 바라볼 수 있을 거라고 말을 걸고 있었다.
남자친구는 조용히 걸어와 희수 뒤에 섰다.
"우리 고장난 선풍기 고치자. 그리고 저 잠기는 문도.."
'내 모습은 아직 사랑스럽지 않다.
이 사회는 사랑스럽지 않다.
하지만 이 사회를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내 모습은 사랑스럽다.
나는 그렇게 사랑하며 살아왔고,
그렇게 영화를 찍었고, 이 자리에 섰다'
이은정 감독은 이런 생각에 이르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 순간 GV세션을 진행하던 박희본 배우가 다음 질문으로 넘기려고 했다.
"잠깐만요"
이은정 감독은 박희본 배우를 제지하며 대답을 이어갔다.
"지금 이 자리도 서있는 것도 한국단편경쟁에 참여한 것이니까요,
저도 잘은 모르겠습니다.
누가 똥을 쌌는지, 왜 우리가 이 똥을 치워야하는지 언제까지 치워야할지.
다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제가 생각한 답과 같지 않을까요.
우리는 나아가고 있다고, 그 자리가 제 자리가 아니라고 말이죠.
그래도 우린 사랑해야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난간에 서 있다.
아무리 뛰어도 제 자리인, 그래서 내 자리 같은
계단엔 누가 쌌는지 냄새나는 똥이 있는 난간에 서있다.
우리는 희수가 될 수 있었다.
희수는 우리가 될 뻔했다.
하지만 희수의 남자친구는 씨앗을 심었다.
희수는 다시 용기내어 촬영 어시스턴트 일을 시작했다.
치욕일기를 쓰는 희수와 치욕일기를 덮은 우린 그렇게 멀어졌다.
한 걸음, 그리고 한 걸음씩.
"미리 축하드립니다"
선재상을 수상 할 작품을 발표하겠습니다
이은정 감독의 '치욕일기'.
"아 저..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기회만으로 너무 행복했는데,
좋은 상까지 받게되어 너무 행복합니다
영화를 찍는데 큰 도움을 준 박주희 배우, 이학주 배우, 그리고 우리 영화 스태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성실하게 영화를 작업하는 감독이 되겠습니다."
동료들과 5천명의 관객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오늘도 먹먹했다.
하지만 치욕일기는 끝났다.
오늘부터는 희망일기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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