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변하고 사람들의 취향이 변해서일까? 아니면 단순히 기존 TV판 26부작의 내용 + α를 4부작 극장판으로 압축하기 위해서였을까? 과거의 TV판과 두번의 극장판이 완벽히 균형잡힌 몸매에 감히 범접하기 힘든 신비한 매력을 지닌 여성과 같은 느낌이었다면 이번에 나온 에반게리온:서(序)는 그 꽉 짜여진 몸매에서 어거지로 살을 빼서 빼빼마른, 하지만 현실감이 느껴져 조금 더 친숙하게 느껴지는 모습으로 다시 돌아왔다. 기존의 시리즈물에서 철학적이고 어려운 부분은 많이 줄여냈지만 90년대에는 엄두도 낼 수 없었던 기술력으로 다시 입혀진 사운드와 그래픽은 좀 더 현실적이고 멋드러지게 에반게리온을 포장해낸다. 특히 생생함이 느껴지는 각종 사운드와 많이 부드러워진 작화와 움직임, 3D 그래픽은 에반게리온:서(序)의 내용이 기존의 TV판과 내용이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하더라도 극장에 가서 다시 한번 에반게리온의 모습을 보는데 돈이 아깝지 않은 상품으로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또한 거기에 시대를 앞서간 텍스트와 간결해진 철학은 지금에 와서야 더욱 빛이 날 수 있는 것이란 생각에 고개가 끄덕거리게 만든다. 에반게리온을 처음 접하는 사람도 너무 어렵지 않게 친근해질 수 있고, 기존에 에반게리온을 접했던 사람도 새로운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에반게리온을 감상할 수 있었기에 혹시나 기존 시리즈물을 접하지 못했거나, 기존 시리즈물을 식상할 정도로 많이 접했던 사람이라도 보고 나서 후회할만한 작품은 아니라 말하고 싶다.
하지만 앞서서 말했듯이 꽉잡힌 몸매에서 어거지로 군살을 빼다보니 다이어트 후유증이 남은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기존 시리즈물에서 너무 어렵거나 지루한 부분은 간결히 하고, 시리즈물의 기존 내용을 고스란히 살리기 위해 중요한 부분들을 이어붙인채로 달려가는 이야기는 다섯번째 사도 라미엘과의 이야기가 나오기 전까진 마치 덕지덕지 어거지로 붙여진 하이라이트 플롯들의 나열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하고 싶었다. 기존의 내용중 살릴 것은 살리고 버릴 것은 확실히 버리는 방법으로 만들었더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지만 뭐 어찌되었건 이런 방식으로 나왔건 저런 방식으로 나왔건 리메이크가 결정된 그 순간부터 아쉬움이 남을 여지가 다분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기존의 시리즈물을 접하지 못하셨던 분들이라면 초반에는 정신없이 휙휙 지나가는 이야기들로 인해 내용을 파악하기가 조금 어려우실 수도 있을 듯 싶다. 하기야 따지고보면 본래부터 에반게리온의 컨셉은 '불친절함' 아니었던가?
이번 에반게리온:서(序)에는 TV판의 6화까지의 내용이 담겨있다고 하지만 점점 이야기가 기존 시리즈물과는 다른식으로 흘러갈 것임을 예고하는 몇몇 추가씬과 의미심장한 마지막 장면이 벌써부터 에반게리온:파(破)에 대한 기대감을 마구마구 샘솟게 만든다. 2008년도 여름에 개봉한다는 에반게리온:파(破)에서는 과연 제목대로 무엇을? 얼마나? 깨뜨릴지 사뭇 기대된다. 아무쪼록 이번 4부작이 기존 에반게리온의 팬들과 에반게리온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 모두를 만족 시킬 수 있는 수작이 되길 바라는 바이다.
P.S 엔딩 크레딧 다 올라가고 마지막에 에반게리온:파(破)의 예고편이 나온다는데 그걸 못보고 그냥 나왔네요 ㅠ,.ㅠ 한번 더 보러 가야 될 이유가 생겼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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