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명예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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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손님 … 2018-02-21 02:4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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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도 되는 불곰국 겨울여행 이야기 -5


첨부 이미지 : 4개
[짤 정보]
직접 찍은 사진들이라 개판입니다.
1,2) 마린스키 극장 내부와 발레 공연. 공연할 때 절대 사진 찍으면 안됩니다. 이건 아버지가 몰래 찍음....죄송합니다.
3) 무르만스크 공항. 영웅도시 무르만스크라는 글귀가 아주 크게 보인다. 그냥 저것만 보인다.
4) 주먹?




- 상트 페테르부르크

발레는 운 좋게도 시간이 맞아서 백조의 호수를 볼 수 있었읍니다.

아무래도 연말연시에는 흥겨운 호두까기 인형이 인기가 많은데 그래도 뭐니뭐니해도 발레의 대표작은 백조의 호수이니까 어르신들 평생에 한 번 볼까한 기회에 잘됐다고 위안을 삼았읍니다.

마린스키 극장은 신관과 구관으로 나뉘어져 있읍니다. 저녁 7시 공연이라 어둑어둑해진 밤거리를 초행길로 가니까 많이 헤맸더랬죠.

그런 모습을 본 어떤 관리 잘 된 중년의 아주머니께서 길가다가 외국인 무리들이 딱해보였는지 리비지노예 오제라(Лебединое озеро)? 라고 했는데 제가 순간 못알아들으니까 스완 레이크(Swan lake)? 라고 하길래 그건 알아듣고 고개를 존나게 흔들었더니 친절하게(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노어로) 길을 가르쳐주더라고요.

그 분 아니었으면 아마 제 시간에 못찾아들어갔을 듯....감사를 표합니다.

확실히 극장 가까이 가니 사람들의 드레스 코드가 확연히 달라지더군요.

전 정장 롱 코트를 입고 가서 큰 위화감은 없었는데 패딩 점퍼를 입고 가신 어르신들은 제가 따가운 눈총을 보냈읍니다.

우리 자리는 1st floor 가운데 좌석이었는데 앞 옆으로 러시아 아가씨들이 앉아서 햄벆했읍니다.

근데 문제는 어르신 두분 앞 좌석에 진짜 덩치가 이대호급인 영어를 사용하는 중국인 남성이 앉은 것이었읍니다.

이 양반이 또 가만히 앉아서 보면 그 사이로 볼텐데 자꾸 몸을 들썩이는 바람에 뒤에 앉은 어르신은 1막을 거의 구경 못했다고 했읍니다.

재밌는건 그 잉글리쉬 중국인의 덩치에 기겁을 한건 어르신만이 아니었읍니다. 1막 끝나고 쉬는 시간에 그 주변 사람들이 전부 다 영향을 받았는지 다들 한마디씩 하더라고요.

전 그냥 들으면서 속으로 웃고만 있었는데 붙임성 좋은 어르신 한 분이 결국엔 그 아가씨들이랑 바디랭귀지로 앞에 덩치 큰 놈 좆같다고 대화를 열심히 하셨읍니다.(우슴)

그거 말고는 아주 좋았읍니다. 저도 한국에 있을 땐 발레는 관심도, 본 적도 없는 전혀 문외한이었는데 러시아에 살면서 계속 보다보니 정말 뭐라그랄까....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 발레가 좋은 것이 음악은 말이 없는 언어라 이해하기도 쉽습니다. 한국에도 유명한 차이코프스키의 명곡들을 그야말로 쌩음악으로 감상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참 행복하지요.

살면서 한 번 쯤은 필견할만합니다. 강하게 추천드려요.

한 가지 또 놀라웠던 점은 백조의 호수 지그프리트 왕자 역에 한국인 발레리노 김기민씨가 나오더군요. 마린스키 발레단에 한국인이 수석 무용수로 있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이렇게 직접 보니 정말 국뽕 오졌읍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렸을 때 태권도를 배우듯이, 러시아 사람들은 어렸을 때 발레를 배웁니다.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검은머리 한국인이 그것도 수석 무용수로 무대에 서는 걸 보니 참 뭉클했읍니다.

사실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헬싱키를 갔다 올까 계획을 엄청 세웠었읍니다.

제가 삐쪠르에서 헬싱키로 넘어가는 열차를 많이 탄다고 하니까 어르신들께서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핀란드도 한번 갔다 오는게 어떻냐고 하셔서요.

그래서 예정에도 없이 즉석으로 머가리를 엄청 굴렸는데 결론은 그냥 러시아 여행에만 집중하자고 내려서 가지는 않았읍니다.

제목만 여행 이야기고 실상은 쓸데 없는 잡스런 이야기들로 가득 찬 똥글이었으니 잠깐 이 루트에 대해서 설명을 드려도 별 위화감이 없을 것 같아 잠깐 옆으로 새겠읍니다.

지도를 보시면 알겠지만 삐쪠르와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 그리고 에스토니아의 수도 딸린은 지척에 있고 선으로 그으면 삼각형을 이루고 있지요.

그래서 많은 여행객들이 이 세 도시를 도는 코스를 짭니다. 혹시나 이 쪽에 여행을 가실 일이 있으면 좀 넉넉하게 시간 여유를 더 잡아서 한번 도는 것도 나쁘진 않지요.

삐쪠르와 헬싱키는 철도로, 헬싱키와 딸린은 여객선으로, 딸린과 삐쪠르는 버스로 이동하면 딱 좋습니다. 시간도 다 한나절 안으로 도착해요.

삐쪠르와 헬싱키는 서로 당일치기 여행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제가 과감하게 포기했던 이유는 헬싱키에는 볼 게 없어요. 물가만 드럽게 비쌉니다.

반면 딸린은 헬싱키에 비해 볼 게 많습니다. 북유럽 특유의 정취는 개인적으로 핀란드보다 발트 3국이 더 짙어요. 그 발트 3국 중에서도 러시아와 가장 밀접하게 오갈 수 있는 곳이 에스토니아의 딸린입니다.

리투아니아의 빌뉴스나 라트비아 리가는 보통 벨라루스 민스크를 거쳐서 들어가게 되는데 아시다시피 벨라루스는 유럽에서 유일하게 비자가 필요한 나라라....(애도)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러시아 아가씨들 보다 여기 발트 3국 아가씨들이 더 이쁜 것 같아요.(사실 그 민족이 그 민족이고 얘네들 나라에도 20% 넘는 인구가 러시아인이라는건 비밀) 러시아 애들은 익숙해져서 그런가 난 예쁜지 잘모르겠던데(코팜)

암튼 이 세 나라를 각각 다른 교통수단으로 쉽게 방문할 수 있다는 거는 정말 큰 장점이지 아닐 수 없읍니다. 이 쪽에 오면 한번 쭉 돌아보는걸 추천해요. 물론, 여름에요.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삐쪠르로 관광을 오면 성 이삭 성당이나 에르미타쉬 박물관, 페테르고프 여름궁전 정도를 많이 가시는데요. 개인적으로 삐쪠르에 오면 항상 가는 곳이 있읍니다.

바로 빅토르 최의 묘지입니다. 물론 삐쪠르에도 러시아 위인들의 묘가 따로 모여져 있는 곳이 있읍니다. 러시아어의 아버지 로마노프라든지, 차이코프스키, 고골, 글린카 등 많은 위인들이 한 곳에 있지요.(입장료 내고 봐야해요)

그런데 빅토르 최의 묘지가 삐쪠르의 시민 묘지에 묻혀있는걸 아는 한국인들은 잘 없읍니다. 모스크바 아르바트 거리에 있는 빅토르 최 추모벽엔 한글로 꼬박꼬박 낙서를 잘 하면서요.

빅토르 최 묘지는 시내에는 좀 멀리 떨어진 삐쪠르 북부의 외곽에 있읍니다. 허나 그의 묘지에는 늘 누군가 가져다 놓은 생화가 항상 끊이질 않으며 그 묘지의 구글에는 그 하나만 묻혀있는 곳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를 추모하는 글들이 끊임없이 올라오죠.

빅토르 최 그 고려인놈 한국사람도 아닌데 뭐 그렇게 빨아제끼냐 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겠지만 우리 민족의 후손이 한 나라 국민들이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전 충분히 빨아제낄랍니다. 타국에 살다보면 그런 것들이 사소한 것이라도 소중히 다가오죠. 물론 그의 노래만으로도 좋아할만 하지만요.

아무튼 삐쪠르에 가면 빅토르 최 묘지에 가서 꽃 한송이 올리는 것도 해볼만한 일이며 운 좋으면 같은 목적으로 온 러시아 사람이 까레이? 라는 말과 함께 보드카를 까며 같이 노래부르고 추모하자는 일이 생길 확률이 큽니다.(경험)

아쉽게도 이번 여행엔 가지 못했네요. 어르신들과 함께 그런 곳까지 갈 여유따윈 없었읍니다 껄껄

아 어르신들 모시고 또 한식당 간 이야기를 빼놓을 수는 없겠네요.

삐쪠르의 한식당은 몇 군데가 있는데 전 고려인이 운영하는 '코리아나'와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서울' 레스토랑을 선호합니다. 전 분위기보단 가성비가 좋은 곳을 선호하거든요.

코리아나는 고려인이 운영하는 식당 답게 현지화된 한국음식을 맛볼 수 있는데요. 여기는 짬뽕이 최곱니다. 한국의 다른 짬뽕가게와 비교해도 절대 꿀리지 않는데 이걸 러시아에서 맛 볼 수 있다는 거 자체가 큰 감동을 선사하죠.

물론 주문 할 때 종업원들이 이거 맵다고 신신당부를 하는데 우리 입맛엔 콧방귀 뀌면서 먹는 수준입니다.

반면 서울 레스토랑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답게 한국식처럼 나오는데요. 이게 무엇을 의미하냐면 무려 '물'과 '기본 반찬'이 기본으로 나온다는 겁니다. 완전 문화충격이죠.

제가 어르신들 모시고 다니면서 불편 아닌 불편 중에 하나가 항상 식당에 갈 때마다 여긴 물 안주냐? 라는 질문이었읍니다. 어르신 몇번을 말씀드려요 여긴 물 다 사먹어야 해요 ㅠㅠ

그런데 물을 그냥 주니까 너무 감사했읍니다.

거기에 가격도 착한 편이니 안 갈 이유가 없읍니다. 강추! 물론 맛도 있고요.

종업원은 러시아 아가씨였는데 어디서 한국말을 어설프게 배워왔는지 구사를 하더군요.

애초에 직원을 뽑을 때 한국어 가능자를 뽑았는지 어쨌는진 몰라도 그 모습이 참 귀여웠읍니다.

어르신들도 그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 열심히 한국어로 주문하셨는데요.

한 어르신이 식사하시다가 고춧가루 좀 가져다 달라고 말씀하셨는데 아가씨가 응..응? 하고 알아들었다는 사인을 보내더니 이내 가져온 것은 숟가락이었읍니다.

결국 제가 웃으면서 노어로 아 이거 아니고 고춧가루라고 말하니까 얼굴을 붉히면서 헤헿 시벌놈아 처음부터 노어로 말하지 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가져다주더군요.

아무튼 어르신들만 아니면 여행하면서 존나 하렘분위기 팍팍 냈을텐데...다음엔 혼자 가든지 남자친구랑 같이 가서 후리든지 해야겠읍니다.(다짐)

그렇게 5일간의 즐거운 삐쪠르 여행을 마치고 무르만스크로 오로라를 보러 떠났읍니다.

이때까지는 줄곧 열차로 달려왔는데 이젠 시간 관계상 항공편으로 갔지요. 철도로 삐쪠르에서 무르만스크로 갈 수는 있는데 24시간 걸리고 더이상은 열차타기가 싫어서....개지겹. 철덕이라면 무조건 열차로 가는걸 추천드립니다. 무르만스크는 철도로 갈 수 있는 가장 위도가 높은 역이거든요.

그렇게 상트 페테르부르크 풀코보 공항에서 2시간만에 무르만스크에 도착했읍니다.

무르만스크는 저도 처음이었기 때문에 무척이나 설렜는데 항공기에서 내리자마자 반겨주는건 매서운 눈보라와 눈에 보이는건 공항 위에 커다란 간판으로 쓰여진 "영웅도시(Город-герой)
무르만스크" 라는 글씨였읍니다. 크 영웅도시 위엄쩌는거 보소


10964명이 읽었어요. 216.73.216.245

30
1 비공개 손님 … 2018-02-21 02:54:45
노어 잘알면 관계할수있을꺼 같다...
2 비공개 손님 … 2018-02-21 02:55:52
일단 ㅊㅊ
3 비공개 손님 … 2018-02-21 02:56:31
믹짤의 오른쪽 처자들이 나이들면 왼쪽 분들 처럼 되나 보네요
4 비공개 손님 … 2018-02-21 03:27:23
선생님 글보며 러시아어도 배우고 싶고 러시아에 꼭 가보고 싶은 꿈이생겼습니다. 제 인생에 꿈을 심어주셔서 감사합니다.
5 비공개 손님 … 2018-02-21 03:36:57
선추천 후 정독
6 비공개 손님 … 2018-02-21 04:39:29
4/ 빨갱이 끝판왕이라는 색안경만 벗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우리에게 신비로운 나라는 또 없을 거예요.
7 비공개 손님 … 2018-02-21 04:49:08
ㅊㅊ
8 비공개 손님 … 2018-02-21 05:17:40
추천
9 비공개 손님 … 2018-02-21 07:29:06
러시아어 느무 어려워양
10 비공개 손님 … 2018-02-21 07:50:26
이거 장편 연재가 필요 해 보입니다!!!
11 비공개 손님 … 2018-02-21 07:59:32
ㅊㅊ
12 비공개 손님 … 2018-02-21 08:49:33
모아서 책 만들어보시는 것도...
13 비공개 손님 … 2018-02-21 08:59:26
6// 빨갱이끝판왕 ㅁㄴㅇㄹㅁㅇ
15 비공개 손님 … 2018-02-21 09:44:15
러시아 센세~

저 진심 이거 읽으면서...와이프랑 매년 해외여행 1번씩 다니기로 약속하고 다니고 있는데

올해는 어디갈까 고민 중인데...진짜 여름에 러시아 한번 가고싶네요
16 비공개 손님 … 2018-02-21 09:51:06
로씨야 센세 글은 선추천 후정독이얏
17 비공개 손님 … 2018-02-21 10:26:01
국뽕에서 ㅊㅊ
18 비공개 손님 … 2018-02-21 11:02:57
무르만스크 두근두근
19 비공개 손님 … 2018-02-21 11:05:47
ㅊㅊ
20 비공개 손님 … 2018-02-21 11:09:34
츄츤..
21 비공개 손님 … 2018-02-21 11:09:36
츄츤..
22 비공개 손님 … 2018-02-21 11:09:40
츄츤..
23 비공개 손님 … 2018-02-21 11:35:54
선추후감
24 비공개 손님 … 2018-02-21 12:14:43
ㅊㅊ
25 비공개 손님 … 2018-02-21 12:43:39
선생님. 러시아어는 많이 어려울까요?
유ㅌ브등으로 입문해도될까요??
26 비공개 손님 … 2018-02-21 12:52:28
막짤 의미심장하다...
우측같은 미녀들이 나이좀 먹으면 좌측으로 진화한다 이거죠?
27 비공개 손님 … 2018-02-21 13:23:12
센세글은 일단 추천부터 박아야지 !
28 비공개 손님 … 2018-02-21 14:57:45
오늘도 유익한 정보에 불알을 탁 치고 갑니다 센세!!
29 비공개 손님 … 2018-02-21 15:40:17
크 일단 추천하고 보자
30 비공개 손님 … 2018-02-21 15:51:49
쎈세글은 닥추야!
31 비공개 손님 … 2018-02-21 16:29:53
잘봤어요. 무르만스크 이야기가 젤 궁금했습니다.

혹시 키지 야외박물관은 가보신적 있나요? 담에 꼭 가볼까 생각중인데..
32 비공개 손님 … 2018-02-21 16:56:11
선추천 후관계
33 비공개 손님 … 2018-02-21 17:59:11
15/ 블라디보스톡만 아니면 ㅎㅎ 뻐꾺 주시면 언제든지 도와드릴게요

25/ 어렵다 어렵다 해도 다 이세상 언어입니다. 하고자 하면 못할게 어딨나요 화이팅

31/ 키지 포고스트 말씀하시는 거죠? 거기 러시아 사람들도 거의 안가봤을걸요(우슴) 저도 카렐리야쪽은 이번이 처음이라 가본 적 없읍니다. 나중에 갔다오시면 여행기 기대할게요!
34 비공개 손님 … 2018-02-21 18:28:29

https://youtu.be/PSNxSCTW5b0
센세 빅토르 최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센세 글이 올라왔네? 키노노래 들으면서 읽어야지~
하는데 딱 언급하시는군욬ㅋㅋㅋㅋ
이번에는 다 읽고 춫천했읍니다! 정말 재밌게 술술 잘 읽히는 필력에 또 감탄합니당
35 비공개 손님 … 2018-02-21 19:24:38
일단 가 계실애여? 나중에 읽게요
36 비공개 손님 … 2018-02-21 19:32:03
얼른 명전으로 가버리세요
37 비공개 손님 … 2018-02-21 20:27:53
ㅊㅊㅊㅊㅊㅊ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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