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사진찍는걸 업으로 하는 사람도 아니고 취미도 없어서 퀄이 개판인거 양해바랍니다.
글이 개판이면 사진으로라도 때워야하는데...한숨
1) 오랜만에 하늘이 갠 모스크바의 한 기차역 앞
2,3) 크리스마스의 붉은 광장
4) 볼쇼이 극장
5) 겨울 아침의 성 바실리 성당
6) 뽀나스 사진 헹
- 모스크바 (Москва, 마스끄바)
한국을 떠난지 9일만에, 열차 안에서 148시간만에 제 2 세계의 심장 모스크바에 도착했읍니다.
인구 1400만의 모스크바는 아시아 지역에 대부분 걸쳐있는 이스탄불을 제외하면 유럽에서 제일 인구가 많은 도시입니다.
문득 든 생각이 러시아 인구가 1억 4천만 정도인데 1400만이 모스크바에 몰려있어 굉장히 인구가 편중되어 러시아 내에서도 많은 문제제기를 하는데요. 우리나라는 5천만 중 천만이 서울에, 전국민의 절반이 수도권에 몰려있으니 허허 물론 영토 크기 차이가 넘사벽이긴 하지만서도
아무튼 모스크바 도착하자마자 아 여기가 수도구나 싶었던게 차도 인도 가릴 것 없이 온 길이 염화칼슘으로 범벅되어 있었읍니다.
이르쿠츠크 같은 경우에는 도로에도 염화칼슘따윈 없고 그냥 빙판길을 슉슉 달렸는데 역시 수도는 달라도 달랐읍니다.
그리고 날씨가 정말 따뜻하더군요. 당연히 상대적인 차이겠지만 -30도를 육박하던 이르쿠츠크에서 -1도니 모자를 벗어도 살 수 있을 것 같았읍니다.
저도 여러해 모스크바의 겨울을 겪었지만 이번처럼 따뜻하다 라고 느낀 적은 없어서 친구들한테 물어보니 자기들도 올해는 정말 이상하다고 하더군요.
지구가 어떻게 돌아가는건지 걱정이 큽니다.(그리고 이 추위는 질량보존의 법칙(!)에 따라 한국으로 온 것을 나중에 알게 되는데)
모스크바에 도착한 날이 6일, 크리스마스 이브라 성탄절의 느낌을 한껏 느낄 수 있었읍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성탄절이 앞이고 새해가 뒤라 보통 메리 크리스마스 앤 해피 뉴이어 라고 하는데 여긴 순서가 바뀝니다.
모스크바의 주요 관광지만 찍으면 3일 안에, 좀 자세히 들어가면 1주일 안이면 다 볼 수 있읍니다.(물론 붉은광장만 찍고 야 다봤다 하면 반나절만으로도 가능하지만)
개인적으로 모스크바의 진짜 모습을 보려면 여름의 공원에서 종일 돗자리 깔고 있는걸 추천드립니다.
아침엔 전날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조차 힘든 널부러져 있는 술병들과 핏자국들, 낮엔 귀요미 꼬꼬마들이 색색깔 크레파스로 땅바닥에 그림을 그리고, 오후엔 아주머니들이 빵조각으로 비둘기떼를 소환하고 다니며, 저녁엔 늘씬한 처자들의 조깅과 목줄 없이 대형견들을 산책하러 나온 형님들의 환상적인 조합, 밤엔 으슥한 곳에서의 응응과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늑대무리들까지....
전 러시아의 다른 건 안그리운데 공원의 하루만큼은 한국에서도 그리워요. 한국에선 느낄 수 없는 그 여유로움은 러시아만의 장점이 아닐까 합니다.
모스크바의 관광지들은 다른 매체를 통해서도 충분히 많이 접할 수 있으니까 전 이런 소소한걸 말씀드리고 싶네요.
어르신들이라 최대한 시간의 여유를 두고 넉넉하게 다녔는지라 많은 곳을 갈 수 없어 주요 관광지들만 찍었읍니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볼쇼이 극장(Большой театр, 발쇼이 찌아뜨르)은 그 유명세가 지나친나머지 일반인이 좋은 좌석에 표 끊기란 하늘의 별따기이며 암표값은 시벌 욕이 절로 나올 정돕니다.
나 볼쇼이 극장에서 발레 봤어 라고 어디가서 자랑할거 아니면 다른 극장에서 공연을 봐도 충분합니다.
특히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마린스키 극장(Мариинский театр, 마린스키 찌아뜨르)은 볼쇼이 발레단과 세계 4대 발레단에 꼽힐 정도로(개인적으로 3대, 4대 이렇게 줄세우는건 정말 싫어합니다만) 양대산맥인데 볼쇼이 극장보다 합리적인 가격에 어렵지 않게 표를 구할 수 있으니 그곳을 추천드립니다.
모스크바 사람들도 볼쇼이 극장에서 발레 보는 사람들은 굉장한 부자 아니면 외국인이라고 생각하며 그 수준의 차이는 모스크바의 여타 극장들과 별 차이 없다고 하니까요.
다만 한국 사람들이 자주 가는 블라디보스톡에도 동명의 마린스키 극장이 있는데 이곳의 발레단의 퀄리티까진 제가 보장은 못드립니다.
모스크바 사람들은 블라디보스톡이 완전 깡시골이라고 생각하며(예전 JTBC 비정상회담에 러시아 대표로 블라디보스톡 출신인 일리야가 있었는데 모스크바 애들한테 보여주니까 뭔 시골 촌놈이 러시아를 대표하냐고 어이가 없다고 하더군요) 실제로 작년 겨울에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발레단이 내한해서 공연을 했는데 사실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발레단에선 9명만 오고 나머지는 블라디보스톡 마린스키 발레단 애들이 와서 퀄리티가 제대로 되진 않았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읍니다.
아 한가지 발레에 대한 팁을 드리자면 여름철엔 공연도 별로 없고 메인 발레단은 해외 공연을 나가는 일이 잦아 정작 볼쇼이 극장이나 여타 유명 극장에선 다른 발레단이 극장만 대관해서 공연하는게 보통입니다.
뭐 그 사람들도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같은 가격이면 메인 발레단의 공연을 보는 것이 좋겠지요. 여름의 발레는 살짝 비추 드립니다.(그 전에 공연이 별로 없어요)
또 내가 볼쇼이 극장의 발레를 어떻게든 봐야겠다! 하시는 분들은 보통 2달 전에 예매가 열리니
눈에 불을 켜고 광클하시거나 비싼 가격을 주고 2차 판매 업체를 통해 편히 사시면 됩니다. 아니면 구석 자리나 가끔씩 나오는 취소표를 줍는 방법도 있고요. 물론 운이 좋아서 좋은 자리를 정가에 사는 경우가 없지는 않아요.
유명한 발레로는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잠자는 숲속의 미녀, 지젤 등이 있고 연말에는 밝은 분위기의 호두까기 인형이 최고 인기랍니다.
러시아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화관에서 영화보는 것처럼 극장에서 발레나 오페라를 봐요. 영화관 찾는 것보다 극장 찾는게 훨씬 쉬울 정도로 말이죠.
드레스 코드는 보통 정장을 입어야 한다고 많이들 아시는데 거지처럼만 안입고 가면 다 들어갈
수 있읍니다. 물론 다른 사람들과 비교되는 나 자신을 보는건 각자 감당해야할 몫이고요.(우슴)
뭔 여행 이야기를 하는데 쓸데 없는 발레 이야기로 새버렸네요. 뭐 그만큼 저에게 모스크바는 쓸 이야기가 없다는 거겠죠.(미침)
그런데 몇 년을 이곳에서 치고박고 살았으니 별다른 감흥이 없을 줄 알았는데 2년 사이에 정말 많은 것이 달라져있긴 했어요.
그 중에서도 제일 놀랐던 것은 모스크바 지하철에 무려 "영어" 방송이 나온다는 것이었읍니다.
다음 역은 xx역입니다. 라고 노어로 나온 뒤에 갑자기 완전 하이톤으로 "더 넥스트 스테숀 이~즈" 라고 나오길래 완전 깜짝 놀랐네요.
제가 2년 전에 마지막으로 봤을 때가 막 지하철 노선도 역 이름에 조그많게 영어병기가 간간히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이젠 영어 방송까지 나오다니....
영어와는 전혀 담을 쌓고 지낼 줄 알았던 모스크바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다니 격세지감이 이럴 때 두고 하는 말이구나 절로 느꼈읍니다.
또 지하철 14호선이 생겼는데 큰 원으로 외곽 지역을 이어놨더군요. 모스크바 지하철 노선도를 보면 아시겠지만 중간에 서울 2호선 순환라인 같이(물론 비교할 수도 없이 역이 적음) 원이 있어 환승하기 매우 좋게 되어있는데 이젠 더 큰 원을 그려 더욱 호선 간 환승하기 좋게 되었읍니다.
게다가 새로생긴 14호선은 지상철인데 한국처럼 신식으로 되어있더군요. 역사도 삐까뻔쩍 객차도 삐까뻔쩍...소련시절 객차가 아직도 굴러다니는 기존 라인과는 완전 다릅니다. 뭐 한국 사람들이 보면 당연하겠지만 러시아에선 완전 새로운 것이죠.
지하철 간판에 무려 영어병기까지! 친구한테 너무 놀랐다고 하니까 월드컵 때문에 그런다고 합디다.
월드컵이 사람 여럿 잡는구나 싶었던게 검문검색이 강해져서 조금이라도 거동이 수상하다싶으면 바로 소지품 여권 다 꺼내야합니다. 물론 뭣도 모르는 여행객은 아주 좋은 타겟이고 그걸 악용하는 쓰레기 경찰도 늘어나겠죠.
저도 한 번 당했읍니다. 수 년간 모스크바에서 살면서 이런 경우 거의 없었는데 역시 동양인들이 떼지어 다니며 여행객 티 팍팍 내면 얄쨜없나 봅니다.
지하철 개찰구를 통과하여 가는데 경찰이 오더니 여행객이냐고 묻길래 그렇다 했읍니다.
근데 개찰구를 통과하면서 줄이 길어져 어르신 둘과 거리가 좀 멀어졌는데 그 분들은 당연히 경찰이 여행객이냐는 러시아어를 못알아들으셨고 한국어로 시벌 뭐라는거야 라고 했는데 바로 데려가더군요.
얘네들 진짜 태도가 고압적이에요. 우리나라 경찰들관 분위기부터 완전 다릅니다.
제가 우린 그냥 여행중이고 저 분들은 내 가족인데 러시아어 모른다고 암만 설명해도 일단 소지품 다 꺼내고 여권가지고 콤퓨타로 계속 보더라구요. 당시엔 좀 짜증났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제가 너무 테러리스트같이 생겼나봅니다. 씁쓸
콤퓨타로 실컷 보다가
너 옛날에 비자 받았었네? - 예 제발 보내주십시오 경찰양반 - 어디 살았냐? - 모스크바 어디 살았읍니다 제발 보내주십시오 경찰양반 - 진짜 여행온거 맞음? 폰에 숫자로 된 워드파일 사진찍은거 뭐냐?(내 폰 갤러리 다 뒤졌는데(야짤 다 걸림 뉴뉴) 여행계획 세우면서 예산 짠거 사진찍은거 가지고 트집 잡더라고요.) - 아 그거 그냥 이번 여행때 쓸 돈이에요. 테러 자금 아닙니다. 제발 보내주십시오 경찰양반
얼마나 실랑이를 했는지...결국 양 엄지 손가락 지문 스캔하고 나올 수 있었읍니다. 이제 나 러시아에서 범죄 저지르면 지문 걸리는 각? 망함
암튼 경찰들한테 걸리면 아주 곤란하니 제 생각엔 월드컵 끝날때까진 러시아 안가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미침)
낮엔 어르신들 모시고 돌아다니고 저녁엔 모스크바 친구들 오랜만에 만나 접대하느라 넘나 피곤해 아주 죽을 맛이었읍니다.
모스크바 시내는 신년 연휴와 성탄절을 맞아 아주 전등장식으로 도배가 되어있었읍니다.
어르신들은 이걸 보며 전기 낭비도 이런 낭비가 없다면서도 볼거리가 되니까 좋아하셨죠.
크리스마스 이브와 당일에 붉은광장과 크렘린에 얼마나 사람이 많던지 사람도 많고 경찰도 많아 너무 무서웠읍니다.(병신)
확실히 야경이 이쁘긴 이뻤읍니다. 사진따위 보는 것보다 언제 한 번 구경해보는 걸 추천해요(무책임)
친구 말로는 지하철 14호선 말고 또 더 크게 원을 한번 더 그릴거고, 5층 이하 아파트들은 다 없앨거라고 하더군요.
점점 변하는 모스크바가 기대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옛 모습을 점점 잃어가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모스크바에서는 좀 좋은 호텔에 묵었는데 리셉션에서 영어가 통하니 너무 행복했읍니다.
확실히 모스크바와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영어가 되는 곳이 많긴 합니다.
한국에서 싸온 음식들도 거의 다 떨어지고해서 어르신들 모시고 한식당을 안갈래야 안갈 수 없었읍니다.
모스크바에는 한식당이 여러 곳이 있는데 대부분 매우 고급지지만 그만큼 가격이 상당합니다.
그래서 전 예전에 살때도 한식이 먹고 싶으면 북한 식당에 갔읍니다. 거긴 값도 저렴하고 양도 많았거든요.(밑반찬 없이 메인 음식만 먹을 때)
이번에도 어르신들 모시고 북한 식당에 갔읍니다. 거기서 밥먹으면 김씨네 통치자금으로 들어간다고 싫어하시는 분들께는 매우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시벌 그럼 대사관에서 직접 운영해서 가격경쟁력이나 맞추던지 아 죄송 속마음이 본의와는 다르게 나왔네요.
이번 정권에서 추진하고 있는 대북정책과 발맞춰 남북 우호 차원에서 간 거라 해둡시다.
모스크바의 북한 식당 이름은 고려입니다. 조선도 아니고 고려라니 고려인들을 타겟으로 한 것일까요? 물론 고려인들은 집에서 밥해먹지 식당가서 한식 안먹습니다.(팩폭)
역시 종업원 동무들은 참 곱습디다. 홀에 나와 있는 친구들은 다 녀성 동무들입네다.
아버지는 토장국을 드셨는데 한국의 된장국과는 달리 고기가 들어있어 고깃국 비스무리한 느낌이었읍니다.(동무래 이밥에 고깃국을 이역만리에서 먹는기야)
평양김치가 진짜 맛있더라구요. 매번 통조림 김치를 먹다가 제대로 된 김치를 먹어서 그런진 몰라도 굉장히 시원하다고나 할까 아무튼 존맛이었읍니다.
어르신들은 다 맛있게 드시고 흰 밥을 포장해가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러시아에도 쌀이 있긴 있는데 주식도 아니고 음식으로 나오더라도 안남미로 하기 때문에 한국인 입맛엔 영 별로죠.
전 여기서 포장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잘 몰라서 물어봐야하는데 뭐라고 해야하나 고민이었읍니다.
북한 식당에선 한국말로 주문해서 참 편했는데 막상 포장되냐고 물어보려니 이 말을 알아들을까 생각했거든요. 아무래도 어휘에선 많은 차이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일단 아버지께 여기서 포장이 될까요? 라고 물어보니 우리 같은 놈들 분명 있다고 될 거라고 하셨읍니다. 뉴뉴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물어봐야했죠.
결국 입 밖으로 나온 것이 "여기 싸보이 됩니까?" 였읍니다. 싸보이는 с собой, with myself 뭐 그런 뜻입니다. 보통 패스트푸드점에서 포장해달라고 할 때 하는 말이에요.
그런데 아니나다를까 잘 못알아듣고 당황하더군요. 어여쁜 아가씨가 당황해하는 모습이 매우 귀여웠읍니다.(미침)
그러고 있자 옆에 이를 지켜보고 있던 대장 녀성 동무가 오더니 "예 싸보이 됩네다." 라고 말하더군요.(노어로 하나되는 한민족)
그래서 "밥 4개 싸보이 해주세요." 라고 말했읍니다. 아 지금 생각해보니 싸보이가 문화어로 뭔지 물어볼 걸 그랬네요. 새터민이나 정통 주사파 있으면 댓글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호텔 와서 보니 밥 진짜 많이 퍼줬더라고요. 완전 짱짱맨 역시 통일은 되야 합니다.
그렇게 6일간의 모스크바 여행이 쏜살같이 지나가고 또다시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떠나는 열차에 몸을 실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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