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사진도 잘 못찍고 여행 가면 사진기를 통해 바라보는 것보다 그냥 눈에 담는 걸 좋아하는 주의라(그리고 집에 와서 후회하고) 양질의 사진이 많이 없읍니다. 양해바랍니다.
1) 눈 쌓인 이르쿠츠크의 한 집
2,3) 바이칼 호수
4) 앙가라 강변에서 찍은 이르쿠츠크
5) 횡단열차 객차 창 밖을 통해 찍은 풍경
- 이르쿠츠크 Иркутск
이르쿠츠크는 바이칼 호수 근처에 위치한 인구 60만이 넘는 도시입니다.
바이칼 호수 근처의 대도시이자 모스크바-블라디보스톡 구간의 중간 쯤 위치해있어 근성의 무정차 여행을 막아주는 고마운 곳이죠.
대한민국 영사관도 있고 여름에는 인천 직항 노선도 생깁니다.(겨울엔 그런거 업ㅋ엉ㅋ)
이르쿠츠크 역에 도착한 건 2018년 1월 1일 새벽 3시 반 경이었읍니다.
제가 이 때 여행 중 가장 큰 실수를 저지르게 되는데 그것은 역 앞의 딱시 딱시를 탄 것이었읍니다.
장기간의 객차생활과 새벽녘의 그 고즈넉함, 새해의 알 수 없는 설렘 등 모든 것이 조화롭게 합쳐져 저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든 것일 지도 모르겠읍니다.
내가 목적지를 말하며 얼마냐고 하니까 자기네는 거리 요금으로 잰다고 미터기 같은 어플을 보여주는 것이었읍니다.
그 사탕발림에 속아넘어가 딱시를 타고 미끄러지듯이(정말 빙판길에 미끄러지듯이 가더라구요 시벌거) 얼마 지나지 않아 숙소 앞에 도착했읍니다.
그러곤 어플에 계산된 금액을 보여주는데 숫자가 4900이 적혀있더라고요.
순간 제 눈을 의심했읍니다. 4900루블? 이라고 물으니 깎아줘서 4500에 해준다더군요.
4500루블이면 한화로 9만원 가량 합니다. 미친놈아 가격이 제정신이냐고 물으니까 너흰 4명이고, 짐도 많고, 새벽이고, 새해부터 요금이 바꼈고(미친놈아 그게 뭔 상관이야) 등등 핑계를 대더군요.
어르신들은 밖에서 왜 안내리냐고 재촉하시고 나는 타국에서 실랑이 하는게 힘들어서 그럼 3000으로 하자 하니까 3500에 해준다길래 알겠다고 했읍니다.
아니 시벌 요금도 요금이지만 택시비가 그 자리에서 2만원이나 깎이는게 정상적이냐 개객끼야 ㅠㅠ
암튼 새해 새벽부터 눈물 콧물 흘렸읍니다. 절대로 딲시 딲시 타지 맙시다.(정보)
참고로 딱시 얘기 좀 더 하자면(분노) 전 모스크바에 살아서 택시 탈 일이 거의 없었고(대중교통 짱짱맨야), 차 쓸 일 있으면 회사차 있으니 무지했읍니다. 그리고 러시아 사람부터 택시 안탑니다. 비싸다고...
그리고 얘네들이 미터기가 없는 이유는 지금은 안되지만 예전엔 모든 차량에서 택시 영업이 가능했읍니다. 정해진 택시가 아니라 개인 차들이 그런 영업이 되니까 미터기가 있을리가 없죠. 무조건 흥정이었는데 지금까지 남아있는 겁니다.
암튼 그런 ㅈ같은 마음은 숙소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풀렸읍니다.
첫째는 너무 따뜻했고, 둘째는 리셉션 언니가 너무 이쁘고 차켔습니다.
물론 기대했던대로 영어는 전혀 안됐읍니다.
그 새벽에도 짙은 화장의 리셉션 언니는 이른 체크인 추가요금도 받지 않고 1박임에도 불구하고 첫날 조식까지 무료로 제공해줬읍니다. 천사니뮤ㅠ
'일부' 개객끼들 때문에 러시아랑 연 끊을 마음까지 먹었는데 눈 녹듯 사라졌답니다.(어차피 인생은 단짠단짠의 연속이얏)
그렇게 오전에 꿀잠을 자고 이르쿠츠크에서 차로 1시간 거리인 바이칼 호수옆에 있는 동네 리스트뱐카(Листвянка)로 떠났읍니다.
리스트뱐카로 가기 위해선 마르쉬루트카(Маршрутка)로 부르는 마을버스를 타고 가야합니다.
마르쉬루트카를 타니 어떤 중늙은이가 우리 옆에 앉아서 새해 복 많이 받으라며 주섬주섬 보드카를 꺼내더군요.
한 잔 할거냐 - 주면 마신다 - 컵 있냐 - 없다 - 그럼 그냥 마시자
대충 이런 식의 대화가 오갔는데 어르신들이야 로스케들 재미있네 하며 좋아하셨지만 예쁜 아가씨도 아니고 통역해야하는 나는 피곤해서 대충대충 하기 시작하고 점점 대꾸도 안했읍니다.
그러다 어르신들이 얘 몇살이냐고 물어보라길래 물어보니 38인가 아홉인가 그러더군요. 생긴건 아버지 연배였는데...
나이를 들은 어르신들은 코웃음을 치면서 손가락을 6번 쥐었다펴서 이 친구가 60살이냐고 묻길래 ㅇㅇ60도 더 넘음 하니까 바로 고개 숙이고 그 뒤로 별 말이 없었읍니다.
러시아엔 나이 문화가 없지만 노인공경만큼은 옛날 우리나라 수준입니다. 지하철에 할머니 탔는데 자리 안비켜주면 바로 주먹 날라옴.
러시아 남자 평균 수명이 지금은 늘어서(!) 65세 정도니 어르신들의 나이를 들은 이 친구의 반응도 뭐 이해가 안가는건 아니었읍니다.
얼마 안있어 이 친구는 내리고 편안하게 쉬려는데 이제는 앞에 앉아있던 중국인 커플 중 남자가 님 한국사람? 아뇽하...러시아어 왤케 잘함 부럽다 리스트뱐카 상점들 오늘 장사함? 영어로 말을 붙이는데 시벌거 내가 현지인이냐 장사하는지 안하는지 어케앎 새해 연휴 시작이니까 머가리 좀 굴려봐라 꼴에 옆에 아가씨 끼고 오는걸 보니 ...부럽다
올해 러시아 새해 연휴는 1월 1일부터 1월 8일(일요일)까지(7일이 정교회 크리스마스) 였는데 1월 1일부터 3일정도 까진 웬만한 상점들은 문 닫는다고 보시면 됩니다. 걍 우리나라 구정 느낌
바이칼 호수에 도착하니 크 짱짱맨! 이라기보단 개추웠읍니다.
전 예전에 여름에 갔던 적이 있어서 참 예쁘고 좋은 추억이 가득했는데 겨울은 호숫바람 시벌거
그 때 이르쿠츠크 기온이 -28~32 정도 였는데 바이칼 호숫가는 댓바람이 미친듯이 불으니 숨쉬기가 어렵더라고요.
어르신 왈, 얼굴에 수지침 수백방 맞는 것 같네
코 내놓고 숨쉬면 콧물이 얼어서 코에서 얼음 나옵니다.(미침)
바이칼 호수는 2월에 업니다. 사진으로 보면 참 예쁜데 아직 얼지도 않았고 그냥 춥기까지 하니 대충 오물(омуль, 바이칼 호수에만 서식하는 물고기. 맛은 호불호가 갈리지만 저한텐 개존맛탱)로 끼니를 때우고 지옥같은 그 곳을 벗어났읍니다.
역시 세계 어디든 여행은 여름에 해야....
저녁에 이르쿠츠크의 핫플레이스 130지구에서 밥먹고 산책을 하는데 어르신 한 분이 어 한국인이네 하면서 어디서 왔어요? 라고 지나가면서 물어봤읍니다.
그랬더니 그 여자가 노노 하면서 가더라고요.
어르신은 그 여자 둘이 한국어로 말하는 걸 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노노 라고 하면서 지나가니
황당... 어디서 왔냐는 한국어를 알아들었으니 노노 한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한국인이면서 아닌 척하는건가 싶기도 하고 별 병신같은 일이 있었읍니다.
아 이건 이번에 제가 러시아에서 처음 겪은 건데 러시아 사람들이 저희 일행만 보면 니하오 니하오 라고 하더군요.
전 그때마다 기분 나뻐서 노어로 중국인 아냐 한국사람이다 - 엌 그러냐 미안 이라고 했는데 제가 러시아에서 살 땐 이런 일 없었거든요.
생각해보니 그땐 혼자 다니거나 러시아 애들이랑 다니니 이런 일이 없었던 것 같아요.
첨엔 얘네들이 동양인 비하하는건가 싶었는데 하도 많이 들으니 외국인 신기해서 말거는 건가 싶기도 하고 아 러시아 애들한테 물어볼걸 안물어봤네요.
제가 여행을 이렇게 그룹으로 다닌게 처음이라 몰라서 그런가 다른 나라도 그런가요? 흠
아 맞다 한번은 어떤 학생들이 지나가면서 안녕 이라고 한적도 있어요. 항상 니하오 니하오만 듣다가 안녕 들으니까 개반갑
그렇게 안정된 땅 위에서 하룻밤 꿀잠을 자고 다시 역으로 택시를 타고 갔는데 우버 타니까 160루블....ㅂㄷㅂㄷ
우버 타세요 두 번 타세요.
- 이르쿠츠크 - 모스크바 횡단열차 (76시간)
이번에 탄 객차 차장 언니들 한명은 여리여리 러시아 미인 스타일이었고 한명은 그 통나무 들게 생긴 그런 분이셨읍니다.(극존칭)
어르신들은 한 번 경험해봤다고 이제 능수능란하게 짐을 풀고 공간을 만든 후 여유롭게 가시더군요.
열차 타기 전 역사 내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다급하게 매표소 쪽으로 뛰어가더니 여권을 내밀면서 코리아 코리아 하더라구요.
뭐가 잘못됐나 근데 왜 여권을 내밀면서 한국이라고 얘기를 하지 그리고 애초에 코리아라고 하면 얘네들 못알아듣는데 혼잣말 하니까 어르신들이 네가 가서 좀 도와줘라 했지만 제가 여자면말씀하기 전에 이미 도와줬읍니다. 하고 제 볼일 봤었거든요.
이르쿠츠크를 출발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역에 정차해서 저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플랫폼에 내렸는데 갑자기 어디서 고함 소리가 크게 들리는 겁니다.
꼭 군대서 악!!!! 거리는 것처럼요. 함성 소린지 비명인지 헷갈리는 그런.
뭔가 해서 봤더니 아까 그 매표소 앞에서 난리 쳤던 그 한국인이 객차에서 내리면서 고함을 지른 것이었읍니다.
그러더니 시원하다 좋다 추임새 넣는데 러시아 사람들 다 쳐다보고 전 부끄러워서 어디 숨고 싶었읍니다.
보니까 가족 몇몇이 연합해서 놀러 온 느낌으로 우리 옆 객차에 자리 잡은 것 같았읍니다.
우리 객차 옆옆 방에도 같은 일행이 있었고요. 근데 표를 잘못 끊었는지 그 방만 떨어져있어서 그 방엔 학생 셋이랑 아주머니 한 분이 있었읍니다.
아무튼 담배 태우던 어르신이랑 저랑 뻥쪄서 그냥 보고 있는데 우리 옆옆 방에 자기 아들이 한 명 타고 있었나 봅니다. 걔가 우리 근처에 서있었는데 지나가면서 아들!!!! - 아버지 또 술 드셨어요 - 딱 한 잔만 했다 - 아닌데 보드카 한 병이 비어있던데
그러고 그 아저씨가 지나가서 객차에 타자마자 바로 담배 하나 꺼내 물더라고요.
어르신 왈, 그 애비에 그 자식이네
곧 열차가 다시 출발하고 전 이 사람들이 혹시 같은 한국인이라고 엉겨붙을까 귀찮아질것 같은 생각에 그 사람들이 우리 방 앞을 지나갈때마다 이북말을 쓰며 북한사람인 척 했읍니다.
몇 번 그랬는데 그냥 말투도 재밌고 입에 붙게 되어 어르신들도 재밌다고 침대마다 번호를 붙여 서로를 1번 동무, 2번 동무 이런 식으로 불렀고 저보고는 자기들을 인솔해서 간다고 군관 동무라고 불렀읍니다.
그거 말고는 아주 평온하였읍니다. 모스크바 쪽으로 가면 갈 수록 도시들도 커지고 바깥 풍경도
타이가 지대가 펼쳐지면서 단조로움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었으니까요.
둘째날 밤이었나 복도에 서있는데 옆옆방 여학생 하나가 옆 객차에 가서 어른들이 술 한잔을 멕였는지 취해서 오더군요.
제가 또 여자엔 약한지라 아주 부-드러운 서울말로 괜찮냐고 얼른 들어가 자라고 챙겨줬읍니다.
방에 들어가서 얼마 안있어 또 비틀거리며 나오더니 지나가던 통나무 군인 차장 언니한테 겁도 없이 한국말로 여기 어디냐고 지금 여기 무슨 역이냐고 묻더라고요. 전 그냥 멀찍이 서서 보고 있었고.
통나무 형님...아 아니 언니는 그냥 서서 들어주고 있더군요. 크 역시 겉은 무서워도 속은 부드러운 로스케들
근데 이 여자애가 말이 안통하니까 조금 짜증이 났던지 영어로 왓 왓 라잇 나우 라잇 나우 하니까 바로 목소리 깔면서 노 잉글리쉬 하고 갑디다.
그리고 객차와 객차 사이 지나가는 통로를 잠그더군요. 보통은 열어둬서 자유롭게 지나다니는데 얼마나 이 사람들이 왔다갔다했는지.....펄-럭
참고로 장거리 열차를 탈 때 차장 언니가 무조건 갑입니다. 친하게 지내서 나쁠거 하나도 없어요. 한국에서 싸온 맥심 커피 조공은 기본이고 간단한 선물도 좋습니다. 그런거 없다하면 객차 안에서 파는 물품 좀 비싸지만 많이 사세요. 과자든 음료수든. 좋아합니다 다 자기 주머니로 들어가는거라
3일째 낮이었나 드디어 이 무리들이 우리 방에 들어와 말을 걸었읍니다.
옆옆 방에 사는 아주머니와 학생들이 왔읍니다.
나는 순간 얼음이 되서 하시바 올게 왔구나 하며 무표정하게 응시하고 있었는데 아주머니의 첫 마디
"조선에서 오셨지요? 저흰 서울에서 왔읍니다."
......? 이 사람들 정말 그 서툰 이북말 몇 번 듣고 정말 우리를 북한에서 온 사람으로 생각했던 것이었읍니다. 그리고 이어서 한 말이 더 가관이었는데
"모스크바에는 일하러 가세요?"
속으론 빵 터졌지만 내색하진 않았는데 이미 옆에 어르신들도 속으로 터진 느낌이었읍니다. 한 분이 아주 굵고 짧게 네 라고 대답하니까 러시아 초콜릿을 주면서 이거 좀 드시라고 하더군요.
그리곤 우리 아저씨들이 식당칸에서 술 한 잔 대접하고 싶으시다던데 어떠시냐고 하길래 아버지가 술 안마십니다. 라고 하니까 네 하고 가더군요.
간 뒤에 문 닫고 얼마나 깔깔 댔는지....그 와중에 아버지는 저한테 저 사람들이 어디서 왔냐고 물었으면 한국에서 왔다고 했을텐데 저렇게 자기 마음대로 판단을 하고 말하니 가만히 있었다. 어떤 일이든지 자기 마음대로 예단하는게 얼마나 좋지 않은 것인지 열심히 설교하셨읍니다.
그 뒤에도 한번 더 왔었는데 이번엔 서울에서 가져온 거라고 콩자반이랑 러시아 닭튀김을 갖다주더라고요. 걍 받긴 했는데 거 참....
어르신 왈, 모스크바 가서 또 만났으면 좋겠다 불쌍하다고 맛있는거 줄 거 아냐-
근데 대한민국도, 한국도, 남한도, 남조선도 아닌 왜 서울에서 왔다고 하는지...
아무튼 평화나라처럼 아주 평-화롭게 4일째 새벽, 드디어 모스크바에 도착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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