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런 제가 봤음에도 영화의 내러티브를 완벽히 따라가기가 어려웠습니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짧은 시간(2시간)에 집어넣었고 시나리오 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들이 매우 많이 등장하죠. (대사 하나 없는 엑스트라중에 헬스크림과 카르가스도 보였습니다.) 인명과 지명, 외모의 특징 등을 전부 원래 알던 저도 약간 힘겨웠는데 이 영화로 처음 세계관을 접한 사람이 개연성을 느끼고 스토리에 몰입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스토리텔링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은 공감(sympathy)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관객이 등장인물에게 공감할 수 있는 장치들이 너무 많이 축소되어있습니다. 오크는 원래 어떻게 살았고 어떤 가치관을 지닌 종족이었는지, 그들이 왜 타락할 수밖에 없었는지, 또 인간은 왜 저렇게 갈등하고 있었으며 안두인 로서와 레인 린, 메디브의 관계는 어땠는지, 이런 내러티브가 관객에게 전달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들의 헌신과 희생 등을 보여줘봤자 충분한 감동을 이끌어내지 못하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차라리 평화롭던 드레노어가 굴단과 불군에 의해 망하고 오크가 아제로스로 향하는 부분 까지를 호드편으로 만들고, 오크 등장 이전 아제로스의 갈등관계를 묘사하고 어둠의 문이 열린 뒤 레인 린의 죽음까지를 얼라이언스편으로 만드는 쪽이 어땠을까 싶습니다. 지나치게 워크래프트1의 내용을 한 영화에 담으려고 한 건 어리석은 집착이 아니었나 싶네요.
게임 서사의 특성상 주요 인물이 많고 중요 사건이 매우 많이 일어나는데, 차라리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그러했듯 각 시나리오를 따로따로 영화화한 다음 커다란 이벤트를 어벤져스처럼 올스타 영화로 만드는 것도 좋았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럼에도 기존 워크래프트 팬이라면 재미있을만 한 소소한 디테일들(스톰윈드 그리핀 탑승장이라든가, BGM이라든가, 멀록이라든가...)은 살아있어 그런 재미는 충분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줄 평을 하자면, 마니아에게는 충분히 어필할 수 있으나 대중성은 취하지 못한 영화인 것 같습니다. 기존 와우 스토리를 아시는 분이라면 보는 재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으신 분들은 돈이 아까울 수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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