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3-05-24 13:58 |최종수정 2013-05-24 14:56
한화 김응룡 감독(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한화팬 같은 분들은 난생 처음. 무거운 책임감 느낀다.”
“수비에서 엉뚱한 플레이 나오면 죽을 맛”
“뒷문이 약해 6, 7점 차로 리드하고 있어도 불안”
“류현진 ‘딱’ 1년만 남길 원했다.”
“박찬호 현역 지속했으면 선발 시켰을 것”
“성적 나쁘니까 ‘옛날 야구한다’는 소릴 듣는 것”
“스카우트에서 지면 야구에서도 지는 것이다.”
“지금도 지면 죽을 맛, 이기면 짜릿”
“선수 파악 끝났다. 한화, 새로운 팀으로 만들겠다.”
“다시 태어나셔도 야구를 하실 겁니까?”
2011년 8월이었다. 당시 기자는 제주도 서귀포에 있었다. 밀크커피처럼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카페 테라스에서 장시간의 인터뷰를 마칠 즈음. 기자가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상대는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고개를 끄덕였다.
“암, 해야지. 야구는 또 할거야.” 그리고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감독은 안 해. 감독 빼곤 다 할 수 있어.”
김응룡(72). 그는 ‘야신’, ‘야왕’, ‘야통’ 같은 별명이 없이도 한국시리즈 우승 10회와 통산 1천476승을 거둔 대감독이었다. 현직 감독에서 물러난 뒤로는 삼성 사장을 맡으며 지금의 ‘최강 삼성’의 기틀을 닦았다. 제주에서 야구인생 60년을 회고하던 그의 눈빛엔 현장 복귀에 대한 욕심보단 야인(野人)으로 유유자적 살겠다는 의지가 더 강해 보였다.
그리고 정확히 14개월 후. 그를 다시 만났다. 이번엔 제주도가 아니었다. 대전이었다. 그는 반팔 티셔츠를 벗어 던지고, 한화 점퍼를 입고 있었다. 그에게 물었다.
“지난해 제주 서귀포에서 뵙을 때만 해도 ‘감독은 죽었다 깨도 맡지 않으시겠다’고 하셨는데요. 그로부터 1년 만에 현장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그는 입가에 지문만큼 작은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하고 싶던 차에 (한화에서) 찾아와서 좀 해달라고 하니까 한다고 그런 거지. 2년 정도 쉬니까 몸이 근질근질하더라고(웃음).”
기자가 깜박한 게 있었다. 제주도에서 그는 “다시는 감독을 맡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도 나지막한 목소리로 “누가 불러줘야 가지…”하며 묘한 여운을 남겼었다.
그랬다. 그는 천상 야인(野人)으로 살 수 없는 야구인(野球人)이었다. 아마도 그는 제주도에서 때를 기다렸는지 모른다. 그리고 시대가 그를 불렀다.
하지만, 10년 만의 컴백은 달콤하지 않았다. 올 시즌 그가 이끄는 한화는 3월 30일부터 4월 15일까지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채 13연패를 기록했다. 그래서일까. 야구계는 감히 평가조차 하기 어려웠던 대감독에 대해 이런저런 아쉬움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쩌랴. ‘연승은 졸장을 명장으로, 연패는 명장을 졸장’으로 만드는 게 야구계의 엄연한 현실인 것을.
1983년 해태 감독을 맡고서 2004년 삼성 감독에서 물러날 때까지 ‘승장’으로만 살아왔던 김 감독의 지금 심정은 어떨까. 자신을 향한 날카로운 세간의 시선에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가 김 감독과 장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는 5월 18일 대전에서 진행됐다.
“요즘엔 밤에 잠이 안와.”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명장에서 현재 9위 팀 감독을 맡고 있는 김 감독(사진=도현석 작가)
한화가 두산을 상대로 2연승을 거뒀습니다. NC를 제외하고 한화가 다른 팀을 상대로 연승을 거둔 게 올 시즌 처음입니다.
그래? 두산이 자꾸 꼬이더라. 언제야, 4월 21일인가. 그때 잠실에서 우리랑 붙었을 때도 두산이 엄청 꼬이더라고. 덕분에 우리가 1대 0으로 이겼잖아.
오늘(이하 5월 18일 기준) 송창현이 4회까지 3피안타 5볼넷으로 2실점하며 분투했습니다. 송창현은 장성호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롯데로부터 받은 선수인데요. 감독님께서 관여하신 트레이드이기에 감회가 남다르실 듯합니다.
송창현이 그거, 잘하긴 뭘 잘해. 제주도에서 던지는 거 보고 내가 (송창현이한테) 완전히 속았지. 아, 그때는 잘 던지더라고.
그래도 데뷔 첫 투구치곤 매우 좋았다는 반응입니다. 기대는 하셨나요.
기대는 뭘. 2, 3회만 던지고 나면 곧바로 계투작전 쓰려고 했지. (싫지 않다는 표정으로) 생각한 것보다 조금 낫더라고. (피식 웃으며) 경험 쌓으면 더 좋아질 거야. 아직 젊으니까.
감독님 계신 데가 이 커피숍 부근이라고 들었습니다.
여기 뒤 ‘한화 빌라’에 있어. 거기에 코치들, 선수들 다 살잖아. 혼자 있는데 좋은 데서 살면 뭐해(웃음).
제주도에서 뵙을 때나 시즌 초보다 요즘 얼굴이 훨씬 좋아 보이십니다.
실물 보는 사람들은 다 (얼굴이) 좋아졌다는데, TV로 본 사람들은 다 “건강 조심하라”고 하더라고. 다 내 얼굴이 안 좋아 보인다는 거야.
야간경기 때 더그아웃에 계시면 TV 화면엔 다소 어둡게 나올 수도 있습니다.
모르겠어. 전화 와서 받으면 전부 “안색이 안 좋다.”, “건강 조심해라.”, “스트레스 받지 마라” 그런 소리만 하고 있고.
요즘도 산은 계속 타십니까.
그렇지. (물 한 모금을 마시고서) 요즘은 신경이 쓰이니까 밤에 잠이 안 와. 그럼 자정에 나가서 2시간 정도 뒷산을 타고 다시 숙소로 돌아온다고. 돌아오면 새벽 2시에 다시 자는 거야.
그 야밤에 말입니까.
그렇다니까. 경기 끝나고 숙소 돌아오면 잠이 안 온다고. 자다가도 깨면 새벽에 또 산에 올라가. (산에서) 내려와서 2시간 정도 자고 또 일어나는 거야. 산을 자주 타니까 혈색은 좋아진 것 같아.
“한화팬처럼 고마운 팬들은 처음이다.”
김 감독은 "한화팬 같은 분들은 처음"이라며 "어떻게든 이분들께 보답하는 게 자신의 임무"라고 말했다(사진=한화)
김 감독은 개막전 시리즈를 중시하는 사령탑이다. 특히나 처음 감독을 맡은 팀에선 꼭 이기려고 노력했다. 출발이 좋아야 그 흐름이 시즌 끝까지 유지된다고 믿은 까닭이다. 1983년 해태 감독으로 부임했을 땐 그해 4월 3일 광주구장에서 치러진 삼성과의 개막전에서 5대 5 무승부를 기록했다. 하지만, 다음날 경기에선 4대 1로 삼성을 꺾었다. 그해 해태는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2001년 삼성 사령탑에 올랐을 때도 김 감독은 개막전 승리에 총력을 기울였다. 덕분에 4월 5, 6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한화와의 개막 2연전에서 모두 승리를 거뒀다. 이해 삼성은 정규 시즌 1위에 올랐고, 한국시리즈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2013년 한화 감독을 맡은 김 감독은 역시 개막전에 초점을 맞췄다. 3월 30일 롯데와의 사직 개막전에서 한화는 8회까지 5대 4로 앞서나갔다. 많은 야구인은 ‘개막전의 행운’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김 감독의 품에 안길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한화는 과거의 해태와 삼성이 아니었다.
3월 30일 사직 롯데전부터 4월 14일 대전 LG전까지 한화는 내리 13연패했습니다. 2003년 롯데가 작성했던 개막전 최다 연패 기록인 ‘12연패’를 깨는 새로운 기록이었는데요. 한화 선수단뿐만 아니라 연패를 지켜보는 야구계와 팬들의 마음도 상당히 아팠던 게 사실입니다.
(한숨을 내쉬며), 참, 13연패하는데 죽겠더라, 죽겠어. 이거 내색은 못하지, 속은 타들어 가지. 휴우-.
개인적으론 ‘롯데와의 개막전을 잡았다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당시 한화가 8회까지 5대 4로 앞서다 9회 말 롯데에 2점을 내주며 5대 6으로 역전패를 당했는데요. 다음날 경기에서도 롯데에 또다시 5대 6으로 지면서 2연패합니다. 이 두 경기가 13연패의 단초를 제공했지 않았나 싶은데요. 감독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그랬지. 개막전은 충분히 잡을 수 있겠다 싶었거든. 아, 그런데 (불펜진이) 9회에 나자빠졌다는 거 아니야. 꼬이긴 그때부터 꼬였지. 허허.
4월 16일 대전 NC전에서 드디어 13연패의 사슬을 끊었습니다. 당시 경기가 끝나고 감독님께서 승장 인터뷰를 하시면서 눈물을 흘리셨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요.
(기자를 쳐다보며) 울긴 누가 울어. 기자들이 그렇게 쓴 거지. (인상을 풀며) 울었다고 하니까 울었다고 해줘야지(웃음).
그날 경기에서 정작 눈물을 흘린 건 팬들이었습니다.
내가 팬들 실망 많이 시켜드렸지. 미안하고, 엄청 죄송했지. 우리가 13연패해도 그분들은 끝까지 응원하시더라고. (눈을 크게 뜨며) 나도 정말 놀랐어.
오랫동안 감독 생활을 하셨는데요. 한화팬 같은 분들은 처음이지 않으셨을까 싶습니다.
나도 처음 느꼈어. 13연패하다 1승했는데 팬들이 ‘막’ 우시는 거야. 속으로 ‘이렇게 우는 건 한국시리즈 우승했을 때나 하는 건데…’ 생각했지. 한편으론 겁이 나더라고. 이 양반들이 언제 돌변할까 ‘덜컥’ 두려운 생각도 들고(웃음).
한화가 13연패할 때 감독님께서도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셨을 듯합니다.
감독 자리란 게 말이야. 정말 힘든 자리라고. 모든 책임이 감독한테 있잖아. 스트레스를 얼마나 많이 받는지 몰라.
그래도 연패 동안 무척 의연하게 팀을 이끄시던데요.
감독이라면 의연해야지. 연패할 때 만날 코치들한테 그랬다고. “선수들 보면 ‘잘한다, 잘한다’ 해라.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절대 나쁜 건 지적하지 마라”고 말이지.
연패 이후 한화는 줄곧 5할 승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선수들이 열심히 뛴 덕분이지. 박 기자도 우리 경기 보겠지만, 아직 갈 길이 멀어. 단점이 수두룩하다고.
말씀하신 데로 단점이 몇 개 보이긴 합니다. 5월 들어 타선이 살아났습니다만, ‘주포’ 김태균의 5월 타율이 1할9푼4리에 그치고 있습니다. 김태균이 타선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할 때 좋지 않은 증후인데요.
(김)태균이가 요새 안 맞아. 보라고. 어느 팀 투수가 태균이랑 제대로 승부하는지. (고갤 돌리며) 없어. 죄다 유인구지. 초반엔 잘 참더니 요즘엔 마음이 급한지 자꾸 안 좋은 공에 배트가 나가. 앞뒤 타자가 잘해줘야 투수들이 태균이랑도 정면승부할텐데 말이지.
지난해 한화 감독 취임식 당시 기자회견에 임하는 김 감독(사진=한화)
해태, 삼성 감독하실 때를 돌아보면 ‘기동력 야구’에 중점을 많이 두셨는데요. 5월 19일 현재 팀 도루가 19개로 리그 최하위입니다.
지금 우리 팀에 뛸 선수가 누가 있노? 이학준 하나지. 한 팀에 3명 정도는 뛸 수 있어야 하거든. 벤치 사인 없이 마음대로 말이지. (나지막한 목소리로) 딴 팀이 토끼면 우리는 거북이야, 거북이.
한화 야수진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입니다. 특히나 한화 야수진은 엉뚱한 실책을 많이 하는 걸로 유명한데요. 아쉽게도 그 실책들이 빌미가 돼 경기가 뒤집어지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고갤 흔들며) 이야, 야수들 엉뚱한 플레이 하는데 죽겠어, 죽겠어. 예전 같으면 수비 마치고 들어올 때 한 방 날렸을 텐데, 요즘은 야수들 들어오면 그냥 고갤 돌려버려(웃음). ‘정’ 화나면 화장실 가서 욕이나 하고 들어오지.
한화 수비 불안은 오랜 세월 동안 지속하는 듯합니다.
투수가 약해서 만날 깨지는 것도 있지만, 사실 우리 수비가 약하다고. 밖에서 한화 엉뚱한 수비 볼 땐 ‘저거 못 바꾸면 영원히 하위권’이라고 했다고. 상대 팀이 2루에서 홈까지 제집 안방 오가듯이 드나드는 걸 막지 못하면 절대 못 이긴다고 했거든. (한숨을 내쉬며) 그런데 막상 내가 감독이 됐는데도 그걸 못 바꾸고 있잖아. 우리 코치들이 시즌 중에 사복을 입은 적이 거의 없어. 나도 지금껏 이런 적이 없다고. 매일 유니폼 신세야. 어떻게든 전력 좀 높이려고 노력하는데…. 이야, 시즌 초엔 그렇게 노력해도 매일 지더라고.
그래도 5월 들어선 조금씩 한화 수비가 안정되고 있다는 게 야구전문가들의 중평입니다.
요즘은 경기 전 배팅 훈련 한 시간 하면, 수비 훈련도 한 시간씩 해. 연습하니까 조금씩 좋아지지. 도루 저지는 좋아졌어. 외야 발 느린 것도 고쳐야 하는데…. 빨리 발 빠른 야수들로 바꿔야지. (입맛을 다시며) 사실 그래서 김주찬이를 데려오려고 한 거라고. 아쉽게 KIA로 갔지만 말이야. 강동우도 선수생명 끝나려는 거 잡은 거라고. 그걸 아는지 강동우도 겨우내 열심히 했어. 하루도 안 빠지고 훈련장에 나왔다고. (강)동우라도 있으면 외야에 발 빠른 야수 한 명은 있겠다 싶었지. (한숨을 내쉬며) 아, 그런데 개막전 코앞에 두고 강동우 왼쪽 발가락이 ‘뚝’ 부러졌지 뭐야. 운이 없어도 이런 게 없나 싶더라고. 허허, 참.
김응룡 감독이 작전을 걸지 못하는 이유
김 감독은 한화 수비를 바로 잡을 생각이다. 내년 시즌까지 수비의 팀으로 만든다는 게 목표다(사진=신주영 작가)
5월 16일 목동 넥센전에서 한화는 선발 대니 바티스타의 호투로 6회까지 5대 1로 앞서고 있었다. 하지만, 불펜진의 난조로 7회 말 4실점하고, 8회 말 강정호에게 결승 홈런을 맞으며 5대 6으로 역전패했다. 경기가 끝나고 김 감독은 더그아웃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그의 허망한 눈빛을 보며 야구 관계자들은 ‘과연 김 감독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했다.
넥센전이 끝나고 한참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시던데요.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궁금합니다.
아깝더라고. 그걸 못 막으니.
여러 문제가 있겠지만, 말씀하신 데로 한화 투수진의 부진은 타선 침묵과 수비 불안보다 더 중대한 문제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팀 평균자책이 5.85로 9개 구단 가운데 최악입니다.
(잠시 허공을 바라봤다가) 지금까지 감독하면서 말이지. 이렇게 마운드가 약했던 적은 처음이야. 외국인 투수들이라도 똘똘하면 4할 승률은 유지하겠는데…. 그게 쉽지가 않네.
한화 감독직을 수락하셨을 때부터 마운드 약화는 어느 정도 예상하지 않으셨을까 싶은데요.
아니지. 내가 한화 감독을 맡을 때만 해도 토종 1, 2, 3선발이 다 있었다고. 류현진, 박찬호, 양훈. 그런데 지금 없잖아. (류)현진이는 미국 갔지, (박)찬호는 은퇴했지, (양)훈이는 입대했지. 여기다 불펜에서 박정진이도 부상으로 빠졌지. 계산이 다 어긋나 버린 거야. 유창식이, 걔를 믿었는데 5월이 돼도 안 좋더라고.
스프링캠프까지만 해도 유창식의 공이 매우 좋았습니다.
일본 오키나와에서 연습경기하고, 한국 와서 시범경기까지 할 때까지 우리 투수들 중에서 창식이 공이 제일 좋았다고. 그래 창식이한테 기대를 걸었지. (속이 상한 표정으로) 아, 그런데 마운드만 올라가면 애가 포인트를 못 잡는 거라. 훈련 더 열심히 하라고 3일 전에 2군 내려보냈잖아. 아직 어리니까 조급해하지 말고, 훈련 많이 하면 좋아질 거야.
김혁민은 조금씩 구위가 좋아지는 느낌입니다.
내가 봐도 괜찮아지고 있어. 그런데 아직 제구가 불안해. (한숨을 내쉬며) 요즘은 말이야. 우리가 6, 7점 차로 이겨도 불안해. 뒤가 약하니까 언제 역전될지 모르거든.
그래서일까요. 큰 점수 차에서도 감독님께서 투수 타이밍을 다소 빨리 잡는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투수 타이밍뿐만이 아니야. 여기 와선 작전을 거의 안 낸다고. 서너 경기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해. ‘히트 앤드 런’, ‘런 앤드 히트’ 이런 작전이 다 뭐야. 병살 방지해서 한 점이라도 더 내겠다는 거 아니야. 하지만, 지금 한화는 한 점만 내선 안 된다고. 대량득점을 해야지. 선동열이나 류현진 같은 기둥이 있으면 ‘오늘은 2, 3점만 내도 이기겠다’ 계산이 나오니까 작전을 걸 수 있거든. 그런데 요즘처럼 ‘오늘은 6, 7점을 내야 이긴다’ 싶으면 도저히 작전을 낼 수가 없어.
음.
사실 야구가 말이지. 경기 시작하면 긴장은 되지만, 막상 경기 들어가면 재밌거든. 시즌 치르다 보면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도 몰라. 아, 그런데 요즘은 아침만 되면 겁이 나. 이길 확률이 30% 이하니 죽겠어, 죽겠어.
제가 감독님이라도 같은 심정일 것 같습니다.
투수 그러지 야수 그러지 타선 그러지. 이거 계산이 안 서. 한창 연패할 때 코칭스태프 미팅하면 투수코치한테 묻는다고. “오늘 몇 점으로 막을 수 있나?” 그럼 투수코치가 “4점으로 막겠습니다” 그래. 그럼 이번엔 타격코치 돌아보면서 “오늘 몇 점 낼래?” 묻는다고. “3점은 내겠습니다” 그래. 그럼 내가 뭐라고 하겠어? “이야, 그럼 오늘은 졌네”하지(웃음). 분위기 뻘쭘하니까 타격코치한테 “어이 코치, 말이라도 5점 낸다고 해라”한다고(웃음).
한화 좌완 송창현(사진=한화)
우문(愚問)입니다만, 한화 투수진이 2008년부터 계속 부진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한화 투수들은 공을 많이 안 던지는 것 같더라고. 스프링캠프에서 한 2천 개는 던져야 하는데, 이번에도 1천 개 이상 던진 투수가 없어.
대개 팀들은 투수들이 스프링캠프에서 적게는 1천500개, 많게는 3천개를 던지도록 하던데요.
스프링캠프 가서 보니까 불펜투구할 때 100개 이상은 던져야 하는데 그보다 훨씬 적게 던지더라고. 그리고 한번 던지면 3, 4일 쉬고 다시 던지더라고. 아마 우리 팀에서 제일 많이 던진 투수가 황재규일 거야. 한 1천500개 던졌나. 캠프 두달 동안 투수들이 죄다 그 이하로 던지더라고.
네.
올해는 뒤에서 지켜만 봤어. 선수들 상태를 모르니까. ‘어느 선수가 어디가 아프고, 이 선수는 어떻게 관리를 해야 한다’는 걸 잘 몰랐잖아. 아니나다를까 역시 젊은 투수들이 마운드에 오르면 포인트를 못 잡더라고.
일부에선 “박찬호의 영향으로 스프링캠프에서 한화 투수들의 불펜투구수가 줄었다”는 이야기도 합니다.
나도 처음엔 박찬호 영향인 줄 알았어. 그런데 아니야. 찬호가 제일 많이 던졌대. 코치들이랑 다른 사람들이 다 그러더라고. 알고 보니까 그렇게 조금 던지는 게 한화 전통이라고 하더라고. 미국 메이저리그 선수들 보라고. 우리보다 더 많이 던진다고. 일본 투수코치들도 우리 팀 투수들 보고 그래. “이렇게 적게 던져서 되겠느냐”고 말이지. 시즌 흐르면서 선수들 몸 상태 다 파악했으니까 내년엔 그렇게 안 할 생각이야. 변화를 줘야지.
“류현진, 메이저리그에 가려면 빨리 가는 게 나았다.”
지난해까지 한화에서 뛰다 올 시즌부터 미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류현진(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
요즘 메이저리그에서 류현진이 맹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류현진의 활약을 보며 감독님께서 느끼는 소회가 남다르실 듯합니다.
류현진이 그거 하나 보고 왔더니만 이게 ‘횡’ 하니 날라버리고 말이야(웃음).
하하.
진짜야. 한화 감독 ‘딱’ 맡은 것도 현진이 영향이 컸어. 똘똘한 외국인 투수 2명에 현진이, 찬호, 양훈이 있으면 마운드가 괜찮겠다 싶더라고. 타선에서도 태균이, (최)진행이, (김)태완이 있지. 전력만 잘 꾸리면 4강엔 도전해도 되겠다 싶더라고. 결국엔 그 계산이 다 어긋났지만.
만약 류현진이 올 시즌에도 한화에서 뛰었다면 지금보단 팀 성적이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지금쯤 팀이 4, 5승 이상은 더 챙겼을 수도 있었겠지. (진지한 표정으로) 야구는 기둥이 중요한 거야. 든든한 기둥이 있어야 한다고. 확실한 기둥 투수가 한 명은 있어야 연패도 끊어주고 연승을 이어간다고. 올 시즌 봐. 확실한 강팀은 삼성, 넥센밖에 없잖아. 나머지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감독님께서 양해해 주신 덕분에 류현진이 LA 다저스에 진출할 수 있었던 건데요.
솔직히 1년 후 미국으로 보냈으면 좋겠다 싶었어. 그런데 구단이 대승적 차원에서 현진이를 보내주자고 하고, 팬들도 그렇게 바라는데 내 욕심만 챙길 순 없잖아. (혼잣말을 하듯) 잘 된 거지 뭐. 메이저리그에 가려면 하루라도 빨리 가는 게 낫지.
류현진 등판 경기는 보십니까.
(고개를 끄덕이며) 잘 던지데(웃음). 어젠가 보니까 4대 1에서 내려왔는데 다저스 불펜진이 만루홈런을 두들겨 맞더라고. 에이, 그놈들 제대로 좀 막지…(웃음).
지난해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박찬호(사진=한화)
류현진도 류현진이지만, 박찬호의 공백도 아쉬울 듯싶습니다.
아쉽지. 지난해 보면 찬호가 5회까진 잘 던졌잖아. 6회부터 무너져서 그렇지. 그래도 올 시즌 우리 팀에서 그렇게 5회까지라도 잘 막는 선발투수가 누가 있느냐고? 없어.
박찬호가 현역 은퇴와 지속을 두고 장고를 거듭할 때 야구계에선 “한화 코칭스태프가 박찬호의 보직을 선발에서 불펜으로 전환하고 싶어한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일각에선 그 때문에 선발로 뛰고 싶어한 박찬호가 결국 은퇴를 결심했다는 분석도 제기했는데요. 만약 박찬호가 현역 지속을 선언했다면 어떤 보직을 맡기셨을지 궁금합니다.
선발로 썼겠지. 앞에서도 말했지만, 우리 팀에서 찬호처럼 5회까지라도 버티는 선발투수가 몇 명이나 있어. 이런저런 이야기가 들린 건 찬호가 고민을 오래하면서 나온 소리들 아니야. 지난해 시즌 끝나고 찬호가 감독실로 찾아와서 그러더라고. “11월까지 고민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그래 내가 그랬지. “너처럼 대투수가 고민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NC에 선수 1명을 내주려면 보호선수 명단도 짜야 하니까 구단에 조금만 빨리 이야기해줘라.”
시간이 지나면서 보직이 어떻고 저떻고 이야기가 나왔지, 찬호가 현역 지속 결정했으면 난 선발을 맡겼을 거야. (창밖을 쳐다보며) 어떻게 보면 실적있는 대투수가 그저 그렇게 현역생활 지속하는 것보다 제때에 잘 그만둔 건지도 몰라. 찬호는 우리 야구계의 영웅 아니야, 영웅.
"성적이 나쁘니까 옛날 야구한다는 소릴 듣는 것"
한화는 13연패 이후 승률 5할에 가까운 성적을 내고 있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2004년 현장 감독에서 물러나셨으니 10년 만의 감독 컴백이었습니다. 일부에선 감독님의 현장 감각이 무뎌졌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하던데요. 하지만, 삼성 사장을 하실 때나 야인으로 계실 때도 늘 야구장을 찾으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계속 이 야구장, 저 야구장 돌아다녔지. 송충이가 솔잎을 먹어야지, 뭘 먹겠어.
10년 전 프로야구와 지금의 프로야구, 스타일이 바뀐 게 있습니까.
뭐가 바뀌었어? 다 똑같지. 선수들만 보면 투수들은 오히려 퇴보했어. 각 팀에 외국인 투수 제외하고 토종 에이스가 누가 있어? 좋은 투수들이 거의 없잖아. 그건 참 아쉽지.
그럼에도 야구인 가운덴 감독님이 요즘 프로야구의 흐름을 따라올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야구는 선수가 하는 건데 뭐가 바뀌고, 뭘 따라와. (어깨가 처지며) 그런데 내가 할 말이 없는 거지. 성적이 나쁘니까. 그러니까 옛날 야구 한다는 소리나 듣는 거지. (혼잣말로) 삼성 사장을 6년이나 하는 게 아니었어.
6년간의 감독 공백기가 긍정적인 영향을 준 부분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 면도 있지. 야구를 뒤에서 보니까 시야가 넓어지더라고. 다른 팀 경기를 보면서 ‘아, 내가 감독 때 이런 실수를 했구나’ 깨닫기도 하고. 한화 감독으로 올 때도 야구 보는 시야가 넓어졌으니까 새로운 야구를 펼칠 수 있겠구나 싶었어.
감독님뿐만 아니라 한화 코치진을 보면 ‘슈퍼스타 출신의 지도자’가 정말 많습니다. 하지만, ‘코치 대부분이 현장을 떠나 있던 기간이 길어 현장 감각이 다소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현장 떠나있던 사람이 누가 있어? 다 코치하고, 감독하고, 해설하면서 야구판에 계속 있던 사람들이라고. (이)종범이나 (이)대진이는 작년까지 선수로 뛰었잖아.
이대진 코치의 경우는 정말 열정적으로 선수들을 지도하더군요.
난 시즌 중에 선수들이랑 말을 안 해. ‘감독이 누구 예뻐한다’는 소리 나오면 안되거든. 뭐 지시할 게 있으면 수석코치나 종범이, 대진이 많이 시키지. 열심히들 하잖아. 소통도 잘하고.
여담입니다만, 올드 야구팬 가운덴 감독님의 화려한 항의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감독님께서 한화 사령탑으로 오시면서 내심 과거처럼 화끈한 항의를 기대한 분들도 많으실 텐데요. 그런데 올 시즌엔 거의 항의하러 나오지 않으시더군요.
(양손을 흔들며) 못하겠더라고. 다 어린 감독들이고. 심판들도 전부 제자뻘이잖아. 내가 나가서 험한 말이라도 해서 퇴장당해봐. 그거이 얼마나 망신이야. 어필이 필요한 땐 수석코치를 부르지(웃음).
“스카우트에서 지면 야구에서도 진다.”
한화가 강팀이 되려면 유창식처럼 유망주가 성장해야 한다. 김 감독은 유망주 발굴에 온힘을 기울이고 있다(사진=신주영 작가)
김 감독의 지인들은 김 감독을 “복선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김 감독의 표현법은 직설 그 자체다. 하지만, 직설 안엔 따뜻함과 배려가 숨어 있다. 야구계에선 “류현진을 떠나보낸 뒤 한화 구단이 전력 보강에 미온적이었다. 지금 성적도 전력 보강에 실패한 탓”이라며 구단에 아쉬움을 나타낸다. 하지만, 김 감독은 “구단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모든 성적 부진의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고 있다. 김 감독은 “현장과 프런트가 서로 같은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믿는 지도자다. 김 감독은 누군가에게 화살을 돌리기보다 한화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 중이다.
시즌 초 젊은 선수들을 의욕적으로 기용하시던데요. 고졸 프로 1년 차 포수 한승택이 대표적이었습니다.
작년 목동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서부터 유심히 봤지. 애가 곧잘 하더라고. 그래 올해 1군에서 썼잖아. (한)승택이 있을 땐 상대 팀에서도 마음 놓고 못 뛰었다고. 어깨 부상당하는 바람에 2군으로 내려보냈지.
돌아보면 감독님은 젊은 유망주에게 많은 기회를 주는 지도자였습니다. 유망주 육성에도 일가견이 있으셨고요.
옛날 이야기하면 뭐해. 그래도 그런 건 있었지. 난 고교 졸업하고 프로 올라온 놈들한테 기회를 많이 줬어. 홍현우, 장성호(롯데), 정성훈(LG) 다 고졸 신인들이었는데, 해태 와서 다 4번 쳤잖아. 내 덕분에 FA(자유계약선수) 몇 번씩하고. 그런데 이 자식들이 맥주 한 병을 안 사내(웃음). 조동찬(삼성)도 고교 졸업해서 삼성 들어왔을 때 자체 홍백전, 연습경기, 시범경기에 전부 내보냈다고. 그래서 지금까지 온 거 아니야.
‘이 선수는 되겠다’하는 감(感)이 있으셨던 모양입니다.
그런 게 있지. 내가 예전에 이야기했잖아. 첫째 유연해야 해. 그런 애들이 연습시키면 시킬수록 금방금방 실력이 늘지. 그리고 폼이야. 폼 나쁜 선수 억지로 훈련시켜보라고. 몸만 고장 난다고. 그리고 중요한 게 감독이 책임지는 거야. ‘이거 되겠다’하는 선수들은 계속 경기에 내보내야 해.
한화에서도 ‘되겠다’ 싶은 유망주가 있으신가요?
‘이거 되겠다’ 싶은 젊은 선수 데리고 야구하면 재밌거든. 키우는 맛도 있고 말이야. (눈을 감으며) 휴우-. 그런데 한화엔 아직 그런 선수가 많지 않아. 특히나 투수쪽에선 없어. 빨리 키워야지.
유망주 이야기가 나와서 여쭤보겠습니다. 야구계에선 한화와 넥센을 비교하며 “같은 하위팀이었는데도 지금 팀 성적이 이렇게 차이 나는 건 한화가 스카우트에서 실패했기 때문”이란 지적이 있습니다. 현장에서 한화 스카우트들을 보면 무척 열심히 뛴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결과적으로 유망주가 배출되지 못하다 보니 스카우트 문제가 불거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도 열심히 뛰었을 거야. 그래도 프로니까 성과가 없으면 반성도 하고, 이것저것 손도 봐야겠지. 뭐 넥센은 미국 구단이랑 비슷하잖아. 사장, 단장, 감독, 스카우트 팀장이 머릴 모아 결정하잖아. 그리고 넥센은 현대 때부터 선수들을 잘 뽑았어. 우리도 그런 문화를 만들어야지. 구단에서도 노력을 많이 하니까 잘 될 거야.
삼성 사장이실 때 스카우트와 관련해 많은 투자를 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삼성이 강해진 게 스카우트 잘해서 그런 거라고. 스카우트도 3명이던 걸 8명으로 늘렸었잖아. 외국인 선수 못 뽑는다고 해서, 다른 팀에서 잘 뽑는다는 프런트들 말이지. 대리하던 친구 과장시켜 준다고 해서 데리고 오고 그랬잖아. (강한 어조로) 스카우트에서 지면 야구에서도 지는 거야.
7월 1일 신인지명회의 1차 지명이 열립니다. 향후 농사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실 듯한데요.
스카우트들한테 그랬어. “투수들 구속이 몇 km 나왔다. 애 타율이 얼마다. 이런 기록만 적힌 페이퍼 가져오지 마라. 그런 건 고교생 시켜도 한다. 삼성처럼 지명대상 선수 영상을 죄다 찍어오고, 애들 가정환경도 빠짐없이 기록하고, 유연성은 얼마나 좋은지 꼭 확인해라.”
올해 일본 모 구단으로 연수를 갔더니 그곳 스카우트들은 감독님 말씀대로 동영상, 가정환경, 유연성, 현재 시점보다 장래성에 더 큰 비중을 두더군요.
한 경기에서 100개 던지다 시속 145km 한번 나온 걸로 “애 공은 이렇게 빠릅니다”하면 되겠어? 안되지. 김성한 수석코치가 주기적으로 스카우트팀이랑 회의하고, 스카우트들도 열심히 뛰고 있으니까 이번엔 잘 뽑지 않을까 싶어.
과연 한화는 언제쯤 땀의 대가를 받을 수 있을까(사진=한화)
삼성 사장 하시면서 좋은 선수들을 많이 발굴해내셨는데요.
사장하면서 2군 경기 무지하게 많이 봤다고. 그때 삼성은 2군에서 두들기면 1군으로 올라가는 애들이 나왔다고. (과거 생각에 잠긴 듯 눈을 감으며) 삼성이 지금 이렇게 강해진 건 장효조 공이 컸어. 장효조 이전 삼성 2군 감독들은 선수들한테 싫은 소리 한 마디 못했다고. 딴 팀이 그때 삼성 2군 보면 “무슨 레슬링팀이냐”고 했다고. 그걸 장효조가 2군 감독 돼서 다 바꾼 거야. (장)효조는 주인의식이 있었어. 선수들 똥배 다 들어가게 하고, 1군 선수들이 2군 내려와서 퍼져 있으면 “네가 2군이야? 1군이야? 빨리 야구장으로 안나와!”하면서 죄다 훈련시켰다고. (길게 한숨을 내쉬며) 정말 아까운 친구가 먼저 갔어.
저도 고 장효조 감독님 생각을 하면 참 마음이 아픕니다. 열정적인 지도자셨는데요. ‘주인의식’, 좋은 말씀 같습니다.
삼성에서 주인의식이 또 있던 코치가 류중일 지금 삼성 감독이었어. 내가 삼성 감독으로 가보니까 류 감독이 만날 2군에만 있었던 모양이야. 내가 그걸 보고 류 감독을 1군 코치로 올렸다고. 그 많은 코치 중에서 주인의식 갖고 제일 지도 잘했던 친구가 류 감독이야. 류 감독 혼자 선수들 패고 그랬다고(웃음). 진짜 주인의식을 갖고 선수한테 싫은 소리했던 코치는 류중일뿐이었어. 속으로 그랬지. ‘삼성 코치 중에서 너 같은 코치도 있구나’. 선동열 감독이 수석코치로 오기 전까지 삼성 코치 중에선 류 감독이랑만 이야기했다고.
저도 삼성에서 최고의 적임자를 뽑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선 감독이 삼성 감독에서 물러났을 때 ‘누굴 감독으로 시킬까’ 지켜봤다고. 삼성이 대뜸 류 감독을 선임하기에 ‘선 감독 그만둔 건 아쉽지만, 류중일을 새 감독으로 선임한 거 보면 삼성에도 야구 아는 친구가 있구나’ 했다고. 지금도 류 감독 잘 하잖아(웃음).
사실 스카우트들을 아무리 잘해도 2군에서 잘 육성하지 못하면 시쳇말로 ‘말짱 도루묵’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감독님께서 어떻게 2군을 강화할지 많은 이들이 관심 있게 보고 있는데요.
강팀이 되려면 2군이 강해져야 해. 그래서 내가 한화가 상위권 팀이 되려면 5년으론 안 된다고 말하는 거야. 잘 보라고. NC가 생기면서 좋은 선수 쓸어가고, 이제 KT가 생기면서 또 좋은 선수들을 데려갈 거 아니야. 좋은 유망주 받고, 그 선수들 키워서 한화가 강팀이 되려면 10년은 걸린다고 봐. 그런데 지금은 보다시피 우리 팀은 2군에도 특출난 유망주가 없어. (양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어디 가서 말도 못해. 선수 없다고 하면 “김응룡이 말이지. 선수 키우는데 자신이 없으니까 죽는 소리 한다”고 하지 않겠어?
듣기론 이정훈 2군 감독과 1군 코칭스태프가 유기적인 협력관계를 통해 유망주 육성에 올인하고 있다고 하던데요. 이 감독에겐 어떤 주문을 하셨을까 궁금합니다.
선수들 계속 ‘돌리라’고 했지(웃음). 이 감독은 구단에서 추천하기에 내가 “좋다”고 했지. 현역 때부터 ‘악바리’였잖아. 2군은 말이야. ‘난 2군에 내려가면 죽는다’ 이런 의식을 심어줘야 하거든. 2군 내려가면 쉰다? 그런 의식으로 가면 절대 성공 못해. 다행히 한화도 다른 구단처럼 2군 연습장이 생겼잖아. 번듯한 연습장도 생겼겠다, 2군 감독도 ‘악바리’겠다, 이제 제대로 돌아가지 않겠어(웃음).
“역전승하거나 1점 차 승부에서 이기면 지금도 짜릿하다.”
팀은 9위지만, 야구열정을 따지자면 한화팬들은 단연 1위다. 프로야구 최고의 팬, 한화 이글스팬들(사진=한화)
아직 시즌이 끝나려면 많은 경기가 남아 있습니다. 감독님께서 올 시즌 한화 전력 강화를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예를 들어 트레이드 계획은 있으신지 묻고 싶습니다.
트레이드라, 참. (입맛을 다시며) 구단에서도 노력을 많이 했지. 그런데 카드가 안 맞아. 트레이드, 그거 쉽지 않더라고. 만약 트레이드를 한다면 획기적으로 해야지.
구단 이야기가 나왔으니 여쭤보겠습니다. 구단과의 호흡, 잘 맞으십니까. 일각에선 “류현진까지 떠나 보낸 마당에 구단의 전력 강화 노력이 다소 미진하지 않느냐”는 지적도 합니다.
내가 말이야. 부산상고(현 개성고) 졸업하고, 은행에 18년 동안 근무했다고. 난 계속 조직생활을 한 사람이야. 내 욕심만 내세우진 않는다고. 한화 구단에서도 FA 잡으려고 노력 많이 했어. 사장, 단장도 열심히 뛰어다니시고.
과거 해태, 삼성 때도 감독님은 프런트와 각을 세우신 적이 없습니다.
해태 감독 때도 ‘선수는 연봉 투쟁해도, 감독은 그런 거 없다’고 외친 사람이 나야. 왜 그렇잖아. 선수는 구단이 제시한 연봉이 싫어도 FA가 될 때까지 참아야 하지만, 감독은 계약기간 끝나면 어디든 가면 그만이거든. 해태에서 그렇게 많이 우승해도 계약금 못 받은 적이 여러번 이라고. 그걸 왜 참았느냐?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해태가 좋았거든. 딴 팀에서 몇 배나 연봉 더 주겠다고 해도 안 갔어. 그렇게 오래 한 팀에 있던 것도 프런트랑 싸우지 않고, 프런트에 우는 소리하지 않고, 그쪽 입장도 배려하면서 협조적이었기 때문이야. 난 한화에서도 안 싸워. 구단에서 “우리의 비전은 이것이고, 방식은 이렇습니다”하면 그 비전, 그 방식대로 따르는 거야. 난 감독이지 구단주가 아니야. 쥐어짠다고 되는 일도 아니고.
삼성에서 구단 사장을 하신 경험이 프런트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되지 않으셨을까 싶기도 한데요.
그런 것도 있지. 감독 몇십 년 하고 삼성에서 6년 동안 사장한 사람이 프런트 누구랑 싸운다고 하면 말이 돼? 그리고 왜 싸워? 서로 이해하고, 존중해야지. 우리 사장님 보니까 점잖은 분이야. 단장님도 열심히 뛰시고. 그리고 지금 구단에 대고 죽는소리 해봤자, “김응룡이 저거 자신이 없으니까 구단 핑계 댄다”는 소리밖에 못 들어. 팀을 잘 만든 다음에 그때 가서 “이렇게 해주십시오” 요청해도 늦지 않는다고.
아, 대전구장 외야 펜스 뒤로 민 건 후회하지 않으시지요?
무슨 후회를 해? 투수들 좋아하잖아. 한번은 투수코치한테 “이봐 코치, 펜스 다시 줄일까?” 했더니 “아닙니다. 투수들이 지금 펜스를 좋아합니다”하더라고(웃음). 외야 펜스 뒤로 민 거 후회한다고 한 건 만날 우리가 지니까 기자들한테 기삿거리 주려고 한 말이었지. 기자들도 내 말이 농담이란 거 다 알고 있잖아(웃음).
한화의 어린이 야구팬들. 이 아이가 던지는 공은 단순한 공이 아니라 미래의 희망이다. 한화도 그 희망을 던지려 노력 중이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감독이란 자리가 질 때는 안타깝지만, 이길 땐 또 짜릿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감독님처럼 대감독도 이길 때면 그런 감정을 느끼실지 궁금합니다.
암, 이기면 짜릿하지. 요즘도 역전하거나 1점 차 지키면 짜릿하던데(웃음).
올 시즌과 내년 그 짜릿한 감정, 많은 한화팬과 공유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야지. 꼭 한화팬들께 전해드리라고. 여러분께 실망을 안겨드리지 않도록 우리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최선을 다할 테니까 많은 응원 부탁드린다고 말이지. 모든 책임은 감독이 지는 거니까 잘할 땐 선수들 보고 손뼉 쳐 주시고, 못할 땐 감독 보고 욕하시라고 꼭 전해드려.
한편에선 감독님께서 약팀에 오시는 바람에 과거의 업적이 퇴색할까 걱정하기도 합니다.
옛날 생각하면 뭐해. 한화 감독이 됐으니까 난 이제 한화 감독이야. 그리고 신임 감독일뿐이지. 난 말이야. 과거 업적보다 중요한 게 지금 업적이라고 봐. 우리 연패할 때 그렇게 열성적으로 응원해주신 팬들 봐서라도 팀을 꼭 잘 만들 거라고. 이제 선수 파악도 다 끝났으니까 그림을 제대로 그려야지. 구단에서도 적극 지원하고 협조해주고 있으니까 내년까지 팀을 잘 만들어볼 계획이야.
가끔 제주도 생각 안 나십니까.
왜 안나겠어, 나지. 그립지. 힘들 땐 몇 월에 시즌이 끝나나 싶어. 제주도 공기 좀 쐬어야 하는데(웃음). 그래도 대전에 있을 땐 오직 야구만 생각할 참이야. 대전 내려오니까 제주도만큼이나 참 좋아. (활짝 웃으며) 열심히 할 테니까 박 기자도 우리 팀 많이 응원해주라고. 꼭 좋은 팀 만들 테니까 말이야(웃음).
멋있는분이시네요
출처-네이버 박기자
KBO | 649명이 읽었어요. 18.119.119.1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