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님, 광현입니다. 감독님을 처음 뵌게 벌써 6년전 2006년 겨울 제주도 동계훈련장이었지요. 감독님은 모르시겠지만 선수들이 모여서 새로 부임하신 감독님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선배들이 저한테 그랬습니다.
"야 너는 신인이니까 더 죽었다."
하지만 전 특별히 걱정은 안 했습니다. 저도 나름대로 고등학교 때 운동을 많이했으니까 선배들이 너무 괜한 겁을 준다고 생각했거든요. 제가 새로 오실 감독님을 잘 몰랐던 거였죠. 감독님은 오시자마자 내년목표,'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적어서 내라고 하셨죠, A4용지에는 그밖에도 많은 질문들이 적혀 있었는데, 저는 내년 목표 말고는 적을 수 있는게 없는 거예요. 그전까지는 고등학생이었으니까요.
신인이니까 1군에 계속 있고 싶다는 목표가 전부였습니다.'신인왕 하고싶다. 첫계단을 잘밟고 싶다' 그런식으로 썼지요. 아무리 고등학교 때 잘했다고 하더라도 프로는 완전히 다른 곳이라는 걸 잘알고 있었습니다.
바로 훈련에 들어갔습니다. 다시 생각해봐도, 지금까지 프로 생활 중에 2006년 겨울부터 2007년 봄까지가 제일 힘들었어요. 제주도 갔다가 난고에 갔다가 다시 고치, 또 오키나와 이게 김성근식 훈련이구나 확실하게 느꼈죠. 고등학교 때에 비하면 러닝도, 피칭도 모두 세배였습니다.
그래도 신기했던 것은 있었어요. 코치님이 한번은 "너 캐치볼 언제 시작할래?"라고 물으셨지요, 원래 캐치볼은 특별히 어깨가 아프지 않은 이상 매일 하는 거잖습니까. 그런데 저는 고등학교 때까지 한 두달 던지다가 한두 달은 계속 쉬는 방식으로 훈련했거든요. 또 경기가 없는 가을에는 두달 동안은 먹기만 했고요. 한창 키가 끌때였고 살도 찌우려고요. 그렇게 몸을 만들어서 1월에 다시 훈련하고 시즌 들어가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코치님이 물으실 때 저도 모르게 말했죠.
"캐치볼 1월에 시작하겠습니다. 한두달 쉬면서 몸만들고 러닝하고 그 다음에 캐치볼 하겠습니다."
그말을 전해 들으신 감독님께서는 너무 쉽게 그러라고 하셨지요.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거잖아요? 새파란 신인이 짜주는 대로가 아니라 자기가 훈련 일정을 짠다는게요. 감독님께서 그걸 받아주신다는게 감사했습니다. 제주도에 1.2군선수 60~70명이 가고, 다시 일본 고치로 넘어갈 때는 20명 제외하고
40명만 가는 식이었는데 감독님은 저를 끝까지 데려가주셨지요.
훈련내내 캐치볼도 빠지고 러닝만 했고요 2007년 1월이 되어서야 피칭을 했는데 그때도 감독님은 선글라스를 낀채로 저 던지는 걸 바라보기만 하셨어요. 아무 말도 없이. 처음에는 저한테 별 관심이 없으신 줄 알았어요.
그렇게 들어간 전반기. 감독님께서 제게 기회를 주셨지만 제 성적은 부진했죠. 그 무렵 한 인터뷰에서 감독님이 말씀하셨어요.
"기회를 많이 줬다. 이제 광현이가 느낄 때다"
그리고 바로 저는 2군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때부터 감독님이 저한테 말을 걸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해봐라, 저렇게 해봐라 저는 그말씀을 듣는 게 좋았습니다.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6연전을 하고 일주일에 한번 쉬는 월요일에도 감독님은 2군훈련장에 찾아오셨죠. 그리고 저를 비롯한 2군선수들을 봐주셨어요.
'아 쉬는날에도 감독님은 우리를 봐주러 이렇게 나오시는구나'
더힘을 냈습니다 투구폼을 교정하고 바로 1군으로 올라왔고 후반기에는 전반기보다 나아졌습니다. 전반기 4.69의 평균자책점이 후반기에는 2.67로 떨어졌지요.
그리고 대망의 2007년 한국시리즈, 사실 시리즈 들어가기 전에 운동하면서 저도 느낌이 있었어요. 엔트리가 26명인데 34~35명이 운동을 하니까 거기서 9명은 제외하고 나머지가 들어갈텐데 얼추 선배를 명수를 세어보니까 제가 못들어갈거 같은거에요. 그래서 그 전날 코치님한테 인사드리러 갔지요
"코치님 저 이제 내려가겠습니다."
-"응? 니가 가긴 어딜가? "
"예?"
-"너 임마 엔트리 들었어."
"정말요?"
놀랐죠. 진짜 과분하다고 생각했어요. 첫 시즌 성적이 3승 7패에 불과했는데 감독님이 저 같은 신인에게 기회를 주셨으니까 말이죠.
그렇게 나간 두산과의 4차전 12차전을 내주고 3차전을 잡았으니 4차전이 엄청 중요한 게임이었지요. 그런데 코치님이 오셔서 4차전 선발로 정해졌는데 할 수 있겠냐고 물으셨어요. 그때부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지요. 그날 밤에는 침대에 누워있으면서도 잠이 제대로 안왔어요.
'아 빨리 자야해. 그래야 좋은 컨디션으로 던질 수 있다!' 하는 생각뿐이었죠
다음날 제가 운동장을 향해 걸어 나가는데 관중들의 함성이 들려왔습니다. 나가면서도 반신반의 했어요. '정말 내가 선발로 나가는건가?'
처음으로 그런 큰 무대에 섰고 마운드에 올라갔는데도 믿어지지가 않았어요. 정말 잘하고 싶었습니다. 저를 믿어주신 감독님을 위해서요. 다행히 결과는 좋았어요. 7과 1/3이닝 1안타를 무실점 9탈삼진으로 잘던졌고 우리가 이겼죠. 그런데 감독님, 사람들이 모르는게 있어요 모두들 그때 4차전 선발만 기억하지만 실은 저 1차전에도 잠깐 나갔었잖아요. 그게 정말 도움이 됐어요.
지금도 가끔 그때 일을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아무도 그걸 기억하는 사람은 없더라구요. 그 1차전은 분명 우리가 진 게임인데도 저한테는 중요했습니다. 아마 감독님이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실거예요.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큰 무대에서 처음 1이닝을 던지는데 정말 떨렸어요. 긴장감 때문에 가슴이 막 터질 것 같았죠. 모두들 저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관중들의 함성소리, 상대팀 선수들의 날카로운 눈빛, 우리팀 선수들의 환호성, 덕아웃 감독님까지. 모든게 영화 속 한장면처럼 생생하게 느껴졌습니다. 다행히 타자를 플라이볼 아웃시키고 내려왔습니다. 그 짧은 경험은 정말 중요했습니다. 그 경험때문에 4차전에 나가서는 덜 떨렸으니까요.
만약 1차전의 경험이 없었다면! 와, 그러면 알수 없었겠지요. 정말 그때는 감독님의 준비가 딱 맞아 떨어졌던 거 같아요. 그해 SK가 우승을 하고 2008년부터 팀과 함께 저도 계속 승승장구했습니다.
선수단 코칭스테프와 함께 세번째 우승을 일구어냈으니까요.
여기까지만 해도 제 고마운 마음을 다 표현할 수 없을 거 같은데, 실은 감독님께 더 고마웠던 순간은 따로있어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제 기억에서 두번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지만 이번만은 어쩔 수가 없네요.
2010년 겨울 한국시리즈를 승리로 끝낸 이후에 제가 아팠던적이 있었잖아요. 입원해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정말 절망스러운 마음이었어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불안하고 막막했어요. 야구를 그만두어야 하나 싶은 마음까지 들때였으니까요.
제일 먼저 병원으로 달려오신 분이 바로 감독님이셨죠. 그때 솔직히 감독님 원망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왜 사람들은 내가 아프다는데 나만 욕할까. 왜 감독님은 내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감춰서 사람들의 원성을 들으실까 그만큼 팬들의 원성이 대단했습니다.
'감성근 감독이 다음해 성적을 위해 김광현을 광저우에 출전못하게 했다.'
그런 터무니 없는 말이 떠돌때 였으니까요 말이라는게 무서워서 한번 시작되면 눈덩이가 굴러가듯이 커지더라구요. 감독님은 심지어'매국노'라는 말까지 들으셨잖아요. 그러니 제 마음은 오죽했겠습니까.
차라리 제 병명을 밝히면 감독님이 원성을 들을 이유도 없고 저도 나쁜 사람이 될 이유가 없는데.....
마음이 너무 괴로워서 기자한테 말을 해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감독님이 절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셨죠 결국은 저를 위해서 철저하게 비밀로 지킬 필요가 있다는 말씀이셨어요.
"너는 걱정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내가 다 책임질거야."
감독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저는 어느쪽으로도 길이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정도로 감당할 수 없는 막막한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감독님 그때 병실에오셔서 저한테 하신 말씀 생각나세요? 그 병실은 병원의 제일 꼭대기 층에 있었고 창밖으로는 강남 방향의 풍경이 다 내다보이는 방이었죠.
감독님이 저를 물끄러미 보시더니 잠깐 숨을 고르셨다가 창밖을 내다보셨잖아요. 그리고 말씀하셨죠. 아직도 그때 그 말씀이 제 기억속에 선명합니다.
"저걸 다 네땅으로 만들어라."
아, 단지 그 한마디 였는데 저는 뒤통수를 한대 맞은것처럼 번쩍했습니다. 순간 가슴이 북받치면서 눈이 온통뜨거워졌지요. 제가 세상에서 가장 절망적이었던 순간에 감독님은 저에게 희망을 말해주신거였어요. 창밖으로 보이는 세상을 다 제것으로 만들라는 말씀. 그만큼 저를 믿으신다는 말씀이셨고, 그만큼 저를 걱정하고 계신다는 말씀이셨어요. 감독님을 향한 비난은 아랑곳하지 않으시고요. 어떻게 그러실수가 있는지 지금생각해도 대단하신 것 같아요.
그 마음이 느껴지니까 비로소 복잡했던 제 마음이 안정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더 단단해져야하는구나 그렇게 느꼇지요. 감독님 그때 해주셨던 말씀은 아마 제 평생토록 잊지 못할 거 같아요. 그때 감독님과 같이 내다봤던 창밖의 풍경도 그렇고요. 가장 추운 겨울의 풍경이었지만 가장 따뜻한 풍경으로 저에게는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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