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경기의 패인은
1. 중앙 미드필드의 완벽한 패배
2. 좌측사이드의 완벽한 붕괴
단 두가지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
쿠웨이트戰과 비교해서 본프레레 감독은 다음과 같이 생각했던 것 같네요.
일단, 지난 경기에서 박지성-김남일 라인은 쿠웨이트의 미드필드를 완벽히
장악하면서 엄청난 경기력을 선보였습니다. 단 2명이서 쿠웨이트의 3-4명
되는 미드필드진을 완벽히 틀어막았고 마음껏 헤집고 다닌 거였죠. 이에
따라서 본프레레 감독은 對이란戰에서도 똑같이 중앙은 이 두선수에게만
맡기고, 이란의 우측 마다비키아-카에비 라인은 이동국과 설기현의 스위칭,
그리고 이영표의 공격가담으로 아예 이 두 선수 자체를 공격에 가담하지
못하도록 만든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란은 쿠웨이트와 레벨이 다른 팀이었다는 겁니다. 모두들
알고 있겠지만, 이란은 국제적인 팀입니다. 한국팀과 마찬가지로 팀 스쿼드
자체에 월드클래스 급의 선수는 다수 보유하고 있었고 그들은 이미 게임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는 겁니다.
본프레레 감독의 공격지향적인 전술이 바로 이점에서 어긋나기 시작합니다.
이란의 중앙은 박지성-김남일 둘이서 장악할 수준이 아니었고, 가뜩이나
수비력이 부족한 설기현-이영표 라인을 마다비키아-카에비 라인이 마음껏
파고들 수 있다는 거죠. 정상적이라면 언제나 매치업이 됐어야 할 설기현
과 마다비키아의 매치업을 우리는 단한번도 볼 수 없었습니다. 이날 설기
현은 이동국과의 스위칭에만 전념하는 모습이었으니까요. 또한, 1차적으로
마다비키아 혹은 카에비를 맡아야할 이영표 역시 이 둘이 매치업되는 모습
을 자주 볼 수 없었죠. 이란이 중앙에서 공을 홀딩하는 시점에 이란의 두
선수는 이란진영에 남은 설기현과 이영표를 피해서 공격 최전방까지 손쉽게
나아갈 수 있었으니까요.
한국이 이란의 좌측사이드에는 그다지 애를 먹지 않았던 이유는 차두리가
최전방부터 최후방까지 부지런히 뛰면서 - 하긴 박지성과 더불어 마라톤
선수로 불리는 애니까 - 1차적으로 이란의 사이드를 막아줬기 때문입니다.
그에 따라서 한국의 좌측수비는 최종수비수인 김진규 혼자서 책임질 수
밖에 없었고 이제 19살의 선수에게는 너무나 벅찬 일이었을겁니다. 또한
행여나 김진규가 뚫린다고 하더라도 나머지 최종수비수 2명인 최진철과
이민성이 알리 다에이에게 지나치게 끌려다니지만 않았더라도 결과는 다
소 달라질 수도 있었겠지만, 3번째 실점장면에서 보듯이 이들은 이미 무너
진 한국의 미드필드가 막아내지 못한 이란의 선수들을 막느라고 정신이
없어서 다에이를 박진섭이 마크하는 장면까지 연출하게 됩니다.
본프레레에 대해서 회의적인 생각은 이러한 점입니다. 그의 공격지향적인
전술과 기본적인 운용은 괜찮지만, 상황에 따른 대처가 너무나 미흡합니다.
최소한 오늘 경기 전반전의 모습을 보고나서는 어떻게든 중앙미드필드에
추가적인 인원을 배분해서 어느쪽으로건 볼이 투입되는 것 자체를 막아냈
어야 합니다. 후반에 이영표를 내려서 4백으로 만든 것은 물론, 이란의
우측라인을 막기위하기도 했었겠지만, 그보다는 좌우 사이드에 보다 공격
적인 선수를 두어서 보다 공격지향적인 모습을 보이겠다는 모습이 더 크
다고 봅니다. 결과는 보시다시피, 사이드의 붕괴를 가속화하고 말았죠.
장기적으로 저는 본프레레의 이러한 팀운영 방식이 한국팀에게 좋지 않다
고 봅니다. 물론, 감독교체는 너무 이른 요구기는 하지만요. 히딩크 이전
의 한국팀은 개인기량보다도 1. 전술부족 2. 임기응변 미흡 이었거든요.
화끈한 경기를 보여줘서 재미는 있으나, 팀자체로서는 그다지 좋은 것 같
지 않아요. 돌이켜보면 나이지리아의 문제도 그거 아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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