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김낙원 작성일 2004-06-14 조회 169
'조광래씨', 당신이 나온 베스트 일레븐 6월호를 보았습니다. 사실 하고 많은 그쪽의 이야기는 이미 달관해 버린지 오래이지만, 유독 그 기사에만은 반응하고 싶은 것은 왜일까요. 2월 6일 KFA 앞의 시위, 그 뒤로도 구리를 찾은 안양의 축구팬들을 통해 듣고서도, 4월 3일의 'Goodbye 조광래', 지금까지 이어지는 안양시민구단 진영의 침묵시위를 통해 보고서도 아직도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을 보면 분명히 나는 당신을 대학까지 나온 주제에 'Goodbye'라는 단어도 모르는 문맹자로 치부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당신을 완전히 버리고 싶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주)GS스포츠 소속 조광래씨. 나는 당신을 그리 부릅니다. 마음같아서야 나이로 치면 아버지뻘쯤 되는 당신을 도륙내 버리고 싶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그리 하지 않는 이유는 옛 정일까요, 아니면 적에 대한 예우일까요. 하지만 확실한 점은, 나는 당신의 동료, 이를테면 한웅수, 이재하나 정윤성 같은 자들은 차마 내 입을 더 이상 추하게 하기 싫어 언급하지 않은 지도 꽤 되었다는 점입니다. 나는 당신이, 그래도 팬 우습게 보는 허창수라는 졸부나 다른 K리그의 구단주, 직원같은 자들과는 약간은 다른 사람이라고 보고 싶은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서울에 사는 前 안양 팬이고, 또한 이전에 김정현 레드 회장 같은 사람들과는 달리 '우리팀' 감독이건 말건 할 비판은 해야 한다는 신조로 당신에 대한 악평도 서슴치 않았던 자이기도 하기에, 아마도 당신의 언사를 비판할 자격 따위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이전에 내게 이리 묻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당신도 지역연고를 저버린 사람이 어떻게 이전을 비난할 수 있는가?" 이건 차차 말하도록 하지요.
한가지 운을 띄워볼까 싶습니다. 당신 밑의 선수 중에 이정수라는 선수가 있지요. 개인적으로 이 선수를 수비수로 돌린 것에 대해서는 상당히 유감이 있습니다만 이건 넘어가도록 하고, 이 선수는 경상남도 출신이었지요? 그리고 고등학교는 이천실고를 나왔고, 대학은 경희대더군요. 조광래씨 당신도 스스로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고등학교때까지는 진주에서 나오고, 그 뒤 연세대에 다녔지요. 그 뒤 컴퓨터 링커로 명성을 날리며 대표팀에 오랫동안 머무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군대와 축구판에 지역의식이 없는 것도 이해가 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이런 군가가 있더군요. '팔도 사나이'라고...
딱히 축구인들이 지역연고 의식이 없다고 비난하거나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팬들의 생각은 다르다는 것만은 아시기 바라고, 또 프로축구의 기반이 팬이라는 것을 깨달으시면 이름없는 한 팬이 시간을 들여 쓰는 가치는 충분히 될 것으로 믿습니다. 이해를 못하신다면 올 초 역시 이전 파동이 있던 부산 출신의 수비수가 있죠? 그 친구에게 물어보시거나, 아니면 평생 포항에서 자라온 이동국에게 "만약 포항 스틸러스가 -축구발전(?)을 위해- 타 지방으로 옮긴다면 어떻겠느냐" 하고 떠보시면 이해가 쉬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친구들은 프로축구를 보며 자라왔기 때문에 팬의 마음은 당신들보다 잘 압니다.
그것으로 부족하다면 다른 식으로 비유를 해 볼까요. 나는 당신의 연세인으로서의 자부심을 잘 알고 있습니다. 재미있게도 -딱히 일부러 차별하지는 않는 것 같지만- 당신이 부임한 이후 그 팀에는 고려대 출신이 거의 없더군요. 가령 연세대 축구팀을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 고려대로 이관해 합병한다면 어떨까요? 아니면 아예 대한민국 대학으로 연세대와는 비교도 안되는 힘을 가진 서울대로 보내면 어떨까요? (여담이지만 이 글을 쓰는 나도 서울대 출신으로서 느낍니다만, 서울대 출신들은 서울대 야구부의 신화 탓에 야구에 상당히 친밀함을 느끼는 편입니다. 꼭 경기고나 서울고가 그렇듯, 혹은 작년까지의 서울이 그렇듯.) 옮겨온다고 해도 내가 그 'FC서울대'를 응원해 줄 마음은 없지만, 아마 연세축구부 OB의 대표격인 조광래씨가 가만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주어라'. 혹시 일이 안되어 실패하더라도, 조광래씨같이 지위도, 열성도 있는 동문이라면 연세대 축구부의 재건에 앞장서지 그 옮겨간 팀을 응원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봅니다.
나는 서울에서 나서 서울에 살지만 안양을 응원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차라리 없어진 채 언제 재생할 지 모를 안양의 팬이지, 차마 그리 부르고 싶지도 않은 'FC서울'인가 뭔가 하는 뜨내기 집단을 응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를 저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나의 축구주소는 안양이다'
가령 연세대 학생 중에도 흔하지는 않겠지만, 고려대나 한양대, 경희대 축구부의 팬인 학생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혹은 고려대에서 연세대 축구부를 응원하는 학생도 없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스스로 인식하지는 못하지만, 축구팬에게 있어 자신이 응원할 팀을 정하는 것은 일생일대의 치열한 고민의 산물입니다. 단순히 어느 선수가 마음에 들어서, 우리 집에서 가까워서, 혹은 플레이 스타일이 좋아서 하는 것은 쉽게 말하는 것일 뿐 제대로 된 설명이 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사람들의 결론은 지역연고로 가게 되어 있지요. 연세대 학생이 아무래도 연세대 축구부를 응원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지역연고이고, 그리 하여 나와 같은 사람들은, 아예 몸은 서울에 있어도 축구의 주소는 안양으로 이전시킨 지 오래입니다.
그렇기에, 안양을 대표하지 않는 축구팀을 응원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것이 가능할 것 같으면 서울에 축구팀이 있을 필요도 없지요. 멀지도 않고 전력도 강하니 수원이나 성남 같은 팀 중 마음에 드는 곳을 골라 다니면 되지 않겠습니까. 안양을 내던지고 나간 구단의 사람들이 자신들이 내버린 사람들, 이를테면 피해자들에게 '사랑'을 위장하여 백기투항을 종용하는 것은 치졸합니다. 뭐랄까, 일제시대 변절한 전 독립운동가들이 '내선일체' 운운한 게 연상된달까요. 비록 안양 사람들이 힘이 재벌에 비할 만큼 크지는 않아 보복은 하지 못하고 있는 중이지만 그 배신감과 분노는 납득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일전에 조광래씨인지 박병주씨인지는 모르겠다만 '당신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다'라는 말을 했다고 들은 적이 있는데, 조광래씨 당신에게 팬의 사고를 평가할 자격은 없다고 봅니다.
재미있게도, 근래 나는 안양팬들과 함께 해야 할 다른 이유를 얻었습니다. 조광래씨야 훈련에 바쁘기에 아마 게시판을 읽거나 할 일은 없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당신네 팬이라고 자처하는 자들이 안양시민과 안양팬을 촌놈이네. 축구팀을 가질 자격이 없네 해가며 비난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는 점입니다. 시간 나면 당신의 회사 홈페이지 게시판이라도 한 번 읽어보실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안양의 스탠드에서 환희와 좌절을 7년간 함께 했던 그들을 외면할 수 없게 된 것이지요. 이전 날치기가 확정되면 다른 구단의 팬이 되고자 생각한 적이 있었으나, 그 구단조차 이전 날치기에 적극 가담한 점 때문에 정나미가 뚝 떨어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같은 서울 시민이라고도 생각하기 싫은 부류가 단지 자신들의 머릿수만 믿고 폭언과 폭행을 일삼는 것에 아랑곳 없이, 안양의 동료들이 자신의 팀을 구하는 것에 일조하고자 합니다.
조광래씨. 그간 안양팬들은, 조광래씨나 다른 선수들에 대해서 상당히 감정을 억누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조광래씨 당신도 일가의 생계를 책임진 가장일 것이고, 그 때문에 그 사랑한다는 안양팬들이 경기장에서 쫓겨나 축구의 진공지대로 밀려나는 것을 보고서도 행동하지 않은 데 대해 악감정을 가지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흔히 하는 말로 가만히 있으면 평균은 간다지 않습니까. 이번 일로 해서 당신은, 그간 조용히 있던 안양팬들조차 분노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일을 두고 이렇게 표현합니다. '적반하장 (賊反荷杖)' 그들을 내버리고 축구에서 소외시킨 자들이 오히려 피해자인 양 행동하니 그들이 꼭지가 돌지 않을 재간이 있겠습니까. 당신이 6월 13일 성남에서 아무 탈 없이 구리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안양팬들이 정도를 지키고, 또 그간 수많은 안양팬들이 축구에 염증을 느껴 떠났기 때문일 뿐입니다. 다시 한번 말하거니와, 안양팬들을 축구의 밖으로 내몬 것은 당신이며 당신의 동료들입니다.
개인적으로 진지한 충언 한마디 드릴까 합니다. 이미 다섯 달 전에 버린 안양 사람들 신경쓸 시간이 있다면 팀에 충실하기 바랍니다. 조광래씨 당신의 목은 여섯 달밖에 남아 있지 않고, 당신의 회사는 최근 5년 중 세 해를 K리그에서 가장 많은 예산을 썼습니다. 올해 우승하지 못한다면 아마 졸부 허창수가 축구 발전이라는 미명을 대고 당신의 목을 치겠지요. 필요 없다고 내버린 것을 아쉬워할 틈이 있거든 자기 목이나 먼저 보전하는 편이 어떻겠는지요.
K-league i 자유게시판에서 허락도 안받고 퍼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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