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오성의 힘 빼기
2006.08.24 / 김혜선 기자
<도마 안중근> 이후 3년 만에 만난 영화 <각설탕>은 유오성에게 많은 것을 줬다. 잔뜩 굳은 어깨와 눈에 여유를 불어넣는 방법, 사회인, 배우, 가장으로 살아가는 방법까지. 유오성은 그래서 지금 많이 웃는다.
김혜선 기자 의자가 낮고 테이블이 너무 넓어서 어쩔 수 없이 정자세가 안 나온다. 기대어 앉아서 해도 되겠다.
유오성 인터뷰를 그리 싸가지 없게 하는 사람도 있나?
김혜선 기자 피곤하면 그럴 수도 있지.
유오성 아니. 그럴 거면 안 하는 게 낫다. 나 힘들어도 하고 있어요, 라고 티 낼 필요 있나.
김혜선 기자 그럼 자세 잡고 하자.(웃음)
유오성 (테이블 위에 놓인 보이스레코더를 보며)한때 정말 조심했다. 녹취에 노이로제 걸려가지고. 뭐 지금은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
김혜선 기자 근 3년 만인가? 이렇게 인터뷰하는 게?
유오성 그런 것 같다. 영화는 배우 개인의 힘으로만 되는 게 아니잖나. 제작 시스템이 돼 있고, 거기에 좋은 시나리오와 구성원, 작품성이 합쳐져야 한다. <별> <도마 안중근> 두 영화는 문제가 있었던 경우다. 두 영화 끝나고 나서 인간이 아주 싫어졌다. 내가 인간에 대해 존중할 수 없고 존중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나 싶어 아무래도 남의 탓을 하게 됐다.
김혜선 기자 그 와중에 연극으로 돌아갔다. 작년 <테이프>, 올해 <오이디푸스>를 했다. 연극이 얼마나 도움이 됐나?
유오성 작년에 <테이프>를 하면서 사실 영화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게 참 운명 같은 일이었다. 연극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인데 시나리오로 각색이 안 돼 결국 해를 넘겼고 올해 초에 <오이디푸스>라는 연극을 했다. 조급하게 생각했다면, 그때 어떻게든 영화를 했을 거다. 하지만 또 한 번 나를 눌렀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또다시 벌어지면 평가의 문제를 떠나서 내 스스로 너무 큰 자책감 때문에 결국 배우를 다시는 못할 상황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김혜선 기자 그 순간에 <각설탕>을 얻었다는 건가?
유오성 고민하는 와중에 <각설탕>의 이정학 프로듀서를 만났다. 정학이 형이 나와 거의 20년 지기다. 가족 이외에 나한테 그렇게 적나라하게 얘기해준 사람은 그 형이 처음이었다.
김혜선 기자 뭐라고 하던가?
유오성 지금 배우로서의 내 위치, 충무로에서의 내 상태를 너무나 직설적으로 얘기해서 주먹질 가기 전까지 싸우고 술 퍼먹고 집에 왔다. 어떤 놈들은 말도 안 되는 영화 엄청 찍고도 아무 소리 없는데 나는 왜 들쑤시고 지랄들인가, 그런 기분 드는 거다. 연극으로 돌아가서 새 출발하자 생각했지만 막상 나를 예전의 나로 대우해주지 않으니까 거기에 안티를 걸게 되더라.
김혜선 기자 한참 어린 스타 여배우와 말이 주인공인 영화에 말을 관리하는 ‘윤 조교사’라는 조연으로 캐스팅됐으니 스스로가 초라하고 작게 느껴졌을 수도 있었겠다.
유오성 그래서 엄청 싸운 거다. 정학이 형이 그랬다. “<각설탕>을 좋은 영화로 만들 자신 있다. 너 이번 영화 통해서 다시 충무로 들어오는 건데, 큰 거 가지고 들어왔다가 안 됐을 때는 너한테 정말 큰 타격이 있을 것 같다. 이 역할 통해서 3년 만에 다시 가마솥처럼 안에서부터 우려내보자.” 나중에 영화 찍고 보니 타이틀을 우정출연으로 걸어줬더라.
김혜선 기자 우정출연이라고 하기엔 굉장히 많은 신에 나오던데.
유오성 당연히 말이 안 되는 거지. 우정출연이면 보통 2~3신인데. 알고 보니 “이건 형이 널 생각하는 마음이다. 이 영화 전체에 네가 해준 걸 생각하면 형으로서, 모양새를 갖춰주고 싶었다”고 하더라.
김혜선 기자 완성도 떨어지는 영화의 주연을 맡아 완전히 비호감으로 돌아서기보다는 작은 역할로 다시 한 발 디디는 것이 맞는 선택이었던 것 같다. <각설탕>에선 결국 상당히 큰 비중으로 등장하지만.
유오성 지금 내가 강성 이미지가 있는 게 사실이다. 역할을 떠나서도 일반인들이 생각할 때 유오성이라는 배우는 까칠하고 날 서 있고 시한폭탄 같으니까. <각설탕>을 통하면 유오성에게도 저런 면이 있었나 생각할 것 같다는 얘기를 하긴 했다.
김혜선 기자 영화 속 윤 조교사 연기는 어깨에 힘이 빠졌으면서도 건강한 무게감이 있었다. 주변과 잘 섞이기도 하고. 착한 역으로 대충 돌아오나, 라는 생각도 안 들게끔 균형감 있는 연기였다.
유오성 같이 작업하는 사람들을 무지 존중하면서 작업하려 노력했다. 김성수 감독이 시사회 와서 문자를 보냈다. 욕 섞인 문자였는데(웃음) 다시 돌아와서 축하한다고. 압구정 CGV에서 시사회를 할 때 이현승 감독, 김성수 감독, 나비픽쳐스 조민환 대표가 왔더라. 이들이 다 <비트> 멤버다. 그 형들을 현장에서 보는 순간, 나도 아, 다시 돌아왔구나 싶었다. 그리고 난 어떻게든 다시 돌아가서 영화가 만들어지는 현장을 꼭 보고 싶었다. 그래서 <각설탕> 촬영현장에 매일같이 나갔다. 거의 제작부 수준이었다. 그 외에도 이 시간 되면 라면을 먹어야 하고, 저 시간에는 뭘 먹어야 하고, 마사회 안에 있는 사우나에서 반신욕을 해야 하고.(웃음) 제작부 코스를 빠삭하게 안다. 그러면서 사람과 사람이 모여서 작업하고 있구나 느꼈다.
김혜선 기자 감동이 존재하는 영화이면서도 특히 경마 장면 촬영이 인상적이었다.
유오성 그게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이정학 프로듀서가 경마장 촬영을 뚫기까지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마사회 양반들이 영화에 대해 믿음을 갖게 되니까 전폭적인 지원을 하더라. 거의 넉 달 동안 경마장을 풀로 다 썼다. 우리처럼 세트장 큰 영화는 없을 거다.(웃음) 대한민국 최고의 기수들 12~13명이 순번제로 일주일에 두 번씩 촬영장에 와서 경주를 해줬다. 우리나라 최고라 할 김효섭 기수는 부상을 당해서 병원에 있다가 깁스 한 채로 현장에 와서 자문을 해주고. 한번은 촬영 중 천둥이 말이 너무 힘들어하니까 임수정 대역을 해준 여자 기수가 울고 갔다. 말 관련 영화를 찍으면서 어떻게 말을 혹사시키느냐고. 그래서 결국 일주일 촬영을 접었다. 그 일주일 동안 기수에게 사과하고 마음가짐도 재정비했다. 그런 모습들 옆에서 보고 있으면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예상치 못한 비용도 많이 들었다. 보통 말은 쇠 편자를 다는데, 경주마는 가벼운 알루미늄 편자를 단다. 이 편자 값이 딱 나이키 운동화 값이다. 편자 하나당 8만 원씩이니까 말 한 마리당 신발값이 32만 원이다. 편자 한 번 달면 한 달 이상 못 쓴다. 근데 말이 34마리다. 그걸 8개월을 끌었으니 상당한 비용이지.
김혜선 기자 별 걸 다 아는 걸 보니 제작부스럽긴 하다.(웃음)
유오성 이런 일도 있었다. 시사회 날 어떤 분이 이정학 프로듀서 앞에서 막 괴로워하고 있더라. ‘퓨리나’라는 사료를 만든 회사 직원인데 이 영화에서 말들을 위해 8천만 원 상당의 사료를 PPL 한 거다. 근데 영화를 보니 화면에 아무것도 안 나온 거다.(웃음) 그분 입장에선 얼마나 속상했겠나. 이분이 프로듀서를 붙잡고 그러더라. 나더러 어떡하라는 거냐, 나도 영화 보고 울긴 했지만, 어쩌라는 거냐…. (웃음)
김혜선 기자 이제 경마 배팅에 대해서 좀 알겠다.
유오성 전혀 모른다. 한번 돈을 걸어서 맞춘 적 있다. 말도 안 되는 말을 선택했는데, 그 말이 1등으로 들어온 거다. 1만 원 걸고 삼십 몇 배가 터져서 회식했다.(웃음)
김혜선 기자 우와! 삼십 몇 배라니까 내 입이 다 찢어진다.
유오성 시합 끝나고 창구에 가면 돈을 현금으로 준다. 갑자기 현금이 생기니까 참 신기하다. 그걸 손맛이라고 그러는데 그 맛에 하나보더라. 어쨌든 돈 문제를 떠나 <각설탕>이 인생의 의미를 재고시킬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난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나한테 많은 것을 준 영화다.
김혜선 기자 과거 폭력 사태 등 흉흉한 소문 때문에 현장에서 스탭들과 불편하진 않았나?
유오성 이 얘긴 할 수 있다. 정말 프로페셔널과 만나면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각설탕> 스탭들한테 난 검증 받았다. 처음에 이환경 감독이 그랬다더라. "유오성 씨 다른 현장에서 불미스런 일도 있었다던데, 좀 그런데…."라고. 어느 날 이 감독과 이정학 프로듀서, 백동현 촬영감독이 찾아와서 같이 소주를 마셨다. 날 탐색하러 온 건 줄은 몰랐지. 나중에 이환경 감독이 그랬다더라. "사람은 직접 겪어봐야 되는 것 같다. 오성이 형이랑 하자"고. 그 얘기 들으니까…기분 참…(웃음)현장에선 즐거웠다.
김혜선 기자 당신을 둘러싼 모든 소문에 대한 전모를 왜 여태껏 밝히지 않았나?
유오성 밝힐 가치를 못 느낀다. 내가 위해를 가했든 당했든 그런 일이 발생하기 전 단계의 일이 무지 많다. <도마 안중근> 시나리오는 그 회사 경리부 여직원이 썼다. 그걸 나중에 안 다음에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더 할 말이 많다. 애초에 그 영화에 나를 끌어들인 인간이 <친구>할 때 투자사에 있던 아무개다. 영화를 하자 그래서 시나리오 좀 보자 그랬더니 쓰고 있다, 고치고 있다, 계속 그러다가 도망가버렸다.
김혜선 기자 중간에 그만두지 그랬나?
유오성 계약서에 사인을 한 내 책임도 있는 거고. 감독도 서 씨로 돼 있지만 실제론 다른 사람이 했다. 제대로 걸린 거지. 배우가 그런 생각 들 때는 정말 괴롭다. 작품이 개떡이 돼도 나만은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 어쨌든 그 사건보다는 <친구> <챔피언> 때 일이 더 컸다. <별> 찍을 때 완전히 아노미 상태였다. 우리 가족 이외에는 전부 다 파렴치한으로 보였다. <이것이 법이다> 때도 괴로웠다. 가장으로서 돈이 급해 한 작품이었는데 중간에 아니다 싶어서 죄송하다고 하고 은행에서 대출받아서 받은 돈 다 메워놓았다. 제작사에서 의상비 1천만 원을 청구하기에 그것도 다 돌려줬다. 근데 그 사이에 그 제작자가 한 짓거리가 뭐냐면 영화제작가협회에 가서 유오성 제명하자고 연판장 돌리고 있었다. 아니, 왜 날 죽이려 들지? 더 웃긴 건 어떤 제작자가 찾아와서 너 우리 영화에 출연하면 내가 다 막아줄게, 라고 하더라. 나중에 연판장 돌려서 서명한 제작사 35개 가운데 30개 영화사에서 시나리오가 왔다. ‘야 이거 개양아치 집단 아니야? 앞에선 지르고 밑구멍으론 시나리오 돌리고’라는 생각이 안 들겠나. 그 후 또 한 번 영화인회의에 누구누구가 낸 유오성에 관한 제명 안건이 올라왔다가 파기됐다. 이런 파렴치한 사람들이 어떻게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영화를 만든다는 건지. 한편 나 스스로도 반성을 했다. 내가 왜 이 상황까지 왔을까 하고.
김혜선 기자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왜 자꾸 제명이니, 연판장이니, 폭력이니 이런 데 휘말리나?
유오성 비즈니스를 못해서 그렇다. 배우니까 슬픈 척하려면 액팅을 할 수는 있다. 근데 정말 슬퍼하는 건 차이가 있다. 나의 액팅은 사회인 유오성, 인간 유오성, 배우 유오성의 과정을 거친다. 근데 이 중에 하나가 삐걱거리면, 특히 인간 유오성이 삐걱거리면 문제가 생기는 거다. 즉, <별>이나 <도마 안중근>을 하기 전부터 내 상태가 문제 있었다. 그리고 한편으론 상당히 솔직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 신념 중에 하나가 배우는 솔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좀 과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도 타협보다는 내 신념을 더 지켜나가는 방법을 찾고 싶다.
김혜선 기자 앞서 말한 30개 영화사들과 다시 작업해야만 할 텐데. 치사함, 실망감, 자괴감 등을 극복할 수 있겠나?
유오성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내가 떠나기엔 내가 부족하다. 배우로서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이젠 그냥 감사하게 생각하려 한다. 제명 안건이 두 번이나 올라가고, 사람들 입에 오르고, 여러 사기에 일종의 '돌림빵'도 당하고 그랬는데, 나도 참 질겨.(웃음) 지금 출연한 영화가 좋게 나왔고, 드라마 <투명인간 최장수>도 잘 되고 있지만 지난 3년간의 과정을 겪었기 때문에 영화가 혹시 흥행이 안 될지라도, 드라마가 사랑받지 못했어도 좋은 작품을 했구나, 이랬을 것이다. 그 정도 상태에는 도달해 있는 것 같다.
김혜선 기자 실제로 힘들 때는 어떻게 하나? 우나?
유오성 울지. 정말 못 견디겠다고 하면서. 지금 하는 드라마 <투명인간 최장수>처럼 컥컥대고 우는 정도는 아니고. 눈물이 나온다. 나하고 주인공 장수가 비슷한 데가 많다. 장수가 자기 가족에게 병을 안 알린다. 어려서 우리 부모님이 힘든 장사 하셨을 때 겨울에 몰래 손에 반창고 붙이신 걸 본 적 있다. 나도 지금 팔꿈치를 심하게 다쳐서 잘 안 움직이는데 집사람한테 얘기하지 않는다. 대물림해주는 게 싫어서다. 아버지, 어머니가 치료하며 사시는 걸 봤는데 나도 아프고, 내가 치료하는 걸 내 아이에게 보여주거나 하면 나중에 그 녀석이 또 그렇게 다치고 아프면 어떡하나 싶어서 절대 안 보여준다.
김혜선 기자 부모님은 무슨 일을 하셨나?
유오성 쌀장사를 하셨다.
김혜선 기자 농사를 지으신 게 아니라 쌀가게를 하셨다고?
유오성 아버지는 소매, 어머니는 도매를 하셨다. 어머니가 더 부자셨지.(웃음)당신들의 힘든 직업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어 하지 않으셨고 나 또한 내 아이에게 고생하는 모습을 잔상으로 남겨주고 싶지 않다. 자식을 낳아보니까, 이 아이를 정말 제대로 키울 책임이 부모에게 있다. 그래서 아이한테 많은 걸 쏟아야 한다. 난 사실 내 아들이 사진작가가 됐으면 좋겠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잡지를 자주 아이한테 보여준다. 인간이 전 세계를 못 돌아다니지만 사진 한 장을 통해서 같은 시간대에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볼 수 있지 않나. 사진으로 우리가 혼자 사는 게 아니라 같이 살고 있다는 걸 인식시켜주면 어떨까. 혼자 상상해보는 거다.
김혜선 기자 아들이 사진작가가 되기 싫다고 하면 어쩔 건가?(웃음)
유오성 일단 아이가 선택을 하기 전까지 선택의 폭을, 조건을 넓게 해줘야 한다는 거다.
김혜선 기자 내년에 둘째를 낳지 않나?
유오성 맞다. 지금 집사람 뱃속에 둘째가 있고 올해 말이나 내년쯤 보게 된다. 이제 아이가 둘이나 된다니. 우리 부모들은 어떻게 그렇게 많이 낳아서 키웠을까. 이제 인간 유오성의 인생은 없다. 가정, 아니면 일이다. 정신없이 연기만 할 것 같다.
김혜선 기자 아이들 때문에라도 이젠 직설적일 수만은 없겠다.
유오성 내가 이렇게 살다 보니 정말 피곤하고 열 받는데, 애들이 내가 당한 것 같은 일 당하면 안 되는데. 조마조마하다. 이제 가정을 건사하겠다는 생각, 배우라는 생각만 한다. 그 전에는 사람에 대한 애정이나 관심이 너무 세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다. 이제 놓아버릴 부분은 놓아버리고 살자 싶다. 배우로 완성되기에도, 살아가기에도 시간이 촉박하니까.
김혜선 기자 <각설탕> 이후 실제로 영화 출연 제의를 많이 받고 있는 상황인가?
유오성 드라마 끝나고 심하게는 “쟤 미쳤나?” 라는 얘기가 나올 만큼 한 달에 네 편의 영화를 찍을 가능성이 있다. 11월 정도 시작할 영화가 하나 있다. 누군가에게 내가 헌정하는 마음으로 찍는 영화다. 하나는 실화를 다룬 영화고. 나머지 두 편은 슬픈 멜로와 연극을 각색한 영화다. 네 편이 다 허접하다면 정말 사기꾼이 되겠지만 그러지 않을 자신이 있다.
김혜선 기자 어떤 기준으로 그 영화들을 선택한 건가?
유오성 인간적인 것과 리얼리티다. 증거해보고 싶고 증명해보고 싶은 게 많다. 내가 손에 꼽는 영화 중 하나가 <밀리언 달러 베이비>다. 보면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정말 내공이 센 사람이라고 느꼈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 정도는 아니더라도 대한민국 사회에서 살면서 그렇게 굵직하게 삶을 반추하는 영화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과연 앞으로 몇 편의 영화를 찍겠나. 우리 아들이 나중에 아버지를 회고하면 무슨 영화 주인공이었다가 아니라 이러이러한 작품에 출연한 배우였다고 회고하길 바란다.
김혜선 기자 그런 출연 목록을 만들려면 선택을 정말 잘 해야 한다.
유오성 일단 사람이 기본이고, 제작팀의 능력도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옛날에는 그런 것까지 파악한다는 게 너무 싫었다. 작품을 한다면 최선을 다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가 않더라고. 이젠 아니까 오히려 편하다. 편하게 부드럽게 갈 수 있을 것 같다
잡담 | 1762명이 읽었어요. 3.15.25.18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