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워를 보다가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아, 난 영화에서 영화를 본게 아니라 그 뒤에 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투사해 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 프루스트가 동성애자였다고 호모섹슈얼포비아인 사람이 잃어버린시간들을찾아서를 때려치는 것도 아니고 아마데우스씨의 정신상태가 불안정하다고 그의 교향곡을 안들을 것도 아니며 살리에리가 아무리 힘겨운 감성의 질곡에서 작곡을 계속 해나갔다고 하더라도 그의 음악이 지금 내 귀에 들려 내려오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면 조금 이상한 게지요. 영화를 예술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뒤의 사람보다는 우선은 그 작품 자체를 보아야 하는데, 나는 영화를 보기보다는 심형래와 충무로의 이야기를 보고 있었던 듯한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짓쳐 들었지요. 사실 생각해 보면 난 영화를 그렇게 즐겨 찾아보는 타입은 아닙니다. 지인을 만날 때, 혹은 간혹 생각나서 끌릴 때 극장에 걸린 좋은 영화 있으면 보는 정도의 취향일 뿐이지 그 이상은 아닐 겁니다. 아마도 난 영화에 몰입해서 영화 자체를 즐기는 소양은 극히 부족할테고, 그보다는 원래 성격 - 설정에 미치는 - 대로 그 뒤를 지향하는 것이 좀 컸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디워라는 작품에 대한 좋지 않은 평론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찾아 들여다본 것이겠죠. 그리고, 아마도 적지 않은 다른 네티즌들도 그러했을 거라고 난 생각합니다.
디워를 정말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텍사스 불가사리 이후로는 그다지 괴수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본 것도 없고, 그런 상황에서 스토리나 편집, 연출에 대해 '전혀' 기대하지 않고 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하니 기대치도 낮았는데, 그런 것 치고는 재미있더군요. 뭐랄까, 부라퀴씨가 천사시티 도심 도로를 사행하면서 길에 깔려있는 자동차들을 날려보내다가 마침내 자유빌딩을 휘감쳐 올라가는 장면에서는 정말 즐겁기까지 하더군요. 머리 속을 비우고 영화를 보니, 우선은 재밌다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일종의 게임같은 걸로서 말이죠.
영화라고 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잖나 싶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여기서 영화란 어떤 예술적인 느낌, 서사, 뭐 그런 것들을 담아내려는 노력을 한 작품을 지칭하는 의미로 좁혀 쓰긴 했습니다. 저야 예술을 잘 모르고, 시각예술에는 거의 무지하며, 하물며 영화예술에 대해서는 더더욱 모릅니다만, 디워가 예술혼을 갖고 만들진 않았다는 건 좀 너무 명확해 보였달까요. 게임하듯이 영화를 본 느낌이라고 말하는 게 정말 딱 들어맞지 않나 싶습니다. 빅리그같은 호쾌한 게임 말이죠. 뭐랄까, 제작자가 별 생각없이 만들었다는 얘기입니다.
흠, 가장 절망적인 부분은 디테일이었군요. 서사구조라거나 스토리, 설정같은 건 중요한 거라는 걸 말이죠. 보통 우리는 주어진 하나의 영상만을 보는 게 아니라 대개는 그 문맥을 보고 싶어하며, 문맥 안에서 단막들을 이해하지 않는가 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도대체 그 디테일이라는게 없습니다. 큰 틀에서의 스토리라인이야 물론 있고, 그것이 단순하다거나 하는 건 그냥 괴수영화니까 그런가보다 할 수 있지만 세부 설정의 부재는 보는 이를 당혹하게 할 때가 많더군요. 아트록스군단이 애초에 어디서 나타난 애들이냐거나 이무기란 원래 기원이 어떤 생물이냐 같은 얘길하는 게 아닙니다. 이를테면 이무기가 거리를 달리다가 갑자기 방향을 틀었다면 그 이유를 보여줘야하는게 당연하지 않나 싶은데, (고질라 영화에서는 달아나던 사람들끼리 차 안에서 "저 녀석 왜 갑자기 다른 쪽으로 간거지?" "우리가 빨랐던 거 아닐까?" 는 식의 대사라도 나와주던걸로 기억하는데) 그런게 도대체 없습니다. 사람 말을 할 줄도 모르는 녀석이 FBI도 못찾는 여주인공 위치를 계속 찾아내는 이유라거나 (냄새로 맡는다거나, 뭐 기운을 느낀다거나하는 말 한마디만 넣어주면 해결되는 문제아닌가요), 여주인공을 자신들이 납치해가기 위해 도시를 침공하는 거 까진 좋은데 여주인공이 죽든 말든 가차없는 대규모 포격과 무차별 공격을 해대는 모습이라거나 (죽어도 무관한가 했더니 그건 또 아니더군요) 기껏 아까까지는 필요없는 사람들은 무차별적으로 다 죽이던 놈들이 구태여 남자주인공은 잡아다 기둥에 묶어놔서 친절하게 남자주인공이 힘을 써서 그들을 전멸시키게 방치한다거나. 여의주 원래 주인이었어야 했을 선한 이무기씨는 타력본원, 내내 안나타나는 이유도 모르겠고 (최소한 '당일 전까지는 계속 목욕재계 해야해서 이무기님은 못오신다' 한 마디만 넣어도 될 거 같은데) 이건 스토리는 아닙니다만 맨 마지막에 죽은 여주인공 영혼과 용이된 이무기씨가 이별의 인사를 마치고 남자주인공만을 내버려둔 채로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에서 배경음악으로 깔리던 아리랑은 마침 딱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구절을 밟고 있던 것 같은 건 조절할 수 있는 문제 아닐까 싶은데 말이죠. 정말 자잘한, 정말 짤막한 노력들로 다 해결할 수 있는 디테일의 부재가 눈에 너무 많이 띄이니까, 짜증이 났달까요. 카메라 앵글이나 워크 같은 문제는 내가 전문가도 아니니 말할 것이야 없습니다만 좀 좀.
스토리가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도 알 수가 없다는 것이 흠이더군요. 단순한 선악구도라고 한다면 주인공 남녀가 착하기라도 해야하는데, 미국인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비겁한 주인공들입니다. 아주 단순하게, 부라퀴가 내습했을 때 자기 주변에 사람들 - 이를테면 자기를 안내해준 의사라거나, 도와준 친구라거나, 구해주러온 헬기 조종사라거나, 이들이 상담하러 갔던 심리학자라거나 - 에게 '달아나야 해요, 어서요' 한마디만 했다면 비겁하다고까진 안하겠는데 이 녀석들은 항상 지들끼리 튀거나 혹은 '안녕히 계세요' 하고 달아나기 일쑤입니다. 계속 운명을 강조하는데, 운명이라는 것을 왜 피할수 없는지 운명이 왜 이들을 질곡에 밀어넣는지 그 몰입이 전혀 안되어 있기도 합니다. 이건 디테일이라기보다는 연출의 문제겠지요. 그 몰입이 애초에 안되어 있으니, 비극성도 별로 못느낄 수밖에.
전반적으로 그랬습니다. 그냥 영화가 아니라 조금 긴 게임 동영상 본 느낌 정도 될까요? 확실히 좋은 작품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개그 신이 역시 몇 나왔는데, 친구 아이와 전 그때마다 깔깔대고 재밌어 하긴 했습죠. 영화 본 것이나 시간이 딱히 아깝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거야 뭐 원래 내가 자기 합리화 기제가 강한 인간이니 그런 것이고, 영화 자체가 고품질이라는 말은 절대로 못하겠습니다. 대충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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