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사울의 아들
2차대전 시절 아우슈비츠의 홀로코스트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는 특히나 주인공의 어깨 바로 뒤에 고정된 듯한 느낌의 카메라 뷰가 아주 눈에 띄죠. 이러한 화각의 효과로 주인공의 극도로 답답한 심경이 고스란히 잘 전달됩니다. 그렇게 100여분을 영문도 모르는 채로 질질 끌려다니다 결말에 도달하게 되었을 때 한 편으로는 허무함에 기운이 쭉 빠지면서 한 편으로는 거대한 짐을 내려놓은 듯한 안도감도 드는 독특한 경험을 했습니다.
9. 우리들
윤가을 감독의 관찰력이 눈에 띄는 영화죠. 아이의 세계를 가감 없이 그려낸 것이 도리어 어른들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를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대개의 한국 영화에서 아이 배역에게 부여하는 평면성과 스테레오타입들을 시원하게 깨트리는 부분이 좋았습니다. 사실 착한 아이나 나쁜 아이는 없죠. 그냥 환경과 입장이 그렇게 행동하도록 만드는 것 뿐이죠.
8. 설리 : 허드슨강의 기적
비단 세월호 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많은 비극적인 사건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영화였습니다. 그냥 그 자리에서 자신의 직업 윤리에 걸맞는 일들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덕목인가. 왜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었는가. 현 시대의 상황 때문에 영화의 만듦새 이상으로 크게 와닿은 영화였습니다.
7. 스포트라이트
설리랑 비슷한 주제 의식을 공유한다고 볼 수 있는 영화죠. 역시 기자의 세계를 바탕으로 직업 윤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요즘의 시대상과 잘 맞닿아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흥분할 만한 이야기를 하면서 흥분하지 않고 영화의 톤을 시종일관 차분하게 유지하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6. 자객 섭은낭
자객 섭은낭 같은 호흡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영화는 처음 경험해 봅니다. 절경 속 점이 되어 가는 섭은낭의 뒷모습에서 발견되는 절절한 사랑의 흔적은 앞서 켜켜이 쌓아놓은 일견 의미없어 보이는 장면들의 더미 위에서 흐릿하게 빛이 납니다.
5. 나, 다니엘 블레이크
복지라는 것이 시혜인가 권리인가. 인간답게 살기 위해 인간성을 포기하게 만드는 사회는 존재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 세계적인 장기 불황 속에 복지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존엄성이 잔혹하게 희생되어 가는 과정을 그리는 영화입니다. 우리가 삶을 이어나가는 것이 과연 희망일지 절망일지. 한 번 되돌아 볼 필요는 있습니다.
4. 로스트 인 더스트
한 때 미국 대륙에서 무참하게 인디언을 몰아냈던 백인들이 이번엔 실체도 알 수 없는 탐욕적인 자본가들에 의해서 밀려나는 참상을 그리는 영화입니다. 마른 먼지 날리는 텍사스의 무대 배경에 걸맞게 종결까지 감성에 젖을 시간 없이 입 안이 텁텁해질 정도로 건조한 무드를 유지합니다. 은행강도짓을 하는 형제와 강도를 쫓는 경찰. 매우 전형적이고 단순한 서부극의 구도 같지만 이들이 왜 강도짓을 하게 되었는가는 그리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지요. 어느 등장인물이건 응원하는 것이 바보 같아 보일 정도로 답답하고 밀도가 높은 이야기를 다룹니다. 현실이라는 게 정답이 없는 거죠 뭐.
3. 라라랜드
지독한 현실주의자가 그리는 꿈과 사랑의 아름답기만 한 불협화음. 모든 걸 가질 수는 없다며 시원하게 뺨따구를 후려치는 감독이 보여주는 환상적인 상상의 시퀀스. 무엇 하나 계산되지 않은 것이 없고 무엇 하나 허투로 보여주지 않는 깐깐한 디렉팅이 축조한 세계가 이렇게까지 아름다울 줄은 몰랐네요.
2. 칠드런 오브 맨
이렇게까지 완벽한 디스토피아를 그린 작품이 있었을까 싶네요. 촬영한 지 좀 오래 되서 지금 보면 좀 촌스러운 구석도 제법 있지만 후반부 롱테이크가 주는 압도적인 존재감만으로 마스터피스의 반열에 오를 만한 작품입니다.
1. 곡성
말이 필요 없죠. 장르를 정의하는 것도 우습고 무엇이 뛰어났는지 말할 필요 없을 정도로 훌륭한 종합 예술입니다.
작년엔 꽤 흉년이었는데 올해는 건질 만한 작품이 많네요. 좋은 한 해였읍니다.
잡담 | 2347명이 읽었어요. 3.15.5.9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