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배트맨 시대를 그려보는 배트맨 영화
하비 덴트의 죽음과 함께 배트맨이 사라진지도 어언 8년. 고담시는 외형적으로 평화를 찾았지만, 거짓된 이야기에 기반한 평화는 위태롭고, 타성에 젖은 경찰은 나약해졌다. 배트맨이 사라지고 평화를 찾은 포스트 배트맨 시대에 다시금 폭풍이 찾아올 경우, 브루스 웨인과 고담시의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이처럼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영화의 초반부부터 기존의 슈퍼히어로 영화에서는 흔히 보기 힘들었던, 비범한 전작들의 계보를 잇는 흥미로운 화두를 던지며 시작한다. 얼핏 그 화두는 마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개인에게 던져진 화두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과연 엄청난 존재감을 선보였던 히스레저의 조커가 사라진 이후 배트맨 시리즈를 어떻게 이어나갈 것인가? 다크나이트 라이즈에는 그 화두에 대한 고뇌의 흔적이 엿보이는 놀란 감독의 대답이었다.
전편들보다 강화된 눈요기와 액션
이전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들을 살펴보면, 굉장한 영화의 짜임새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액션은 무미건조하거나 특별히 즐거움을 얻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었다. 의도적이었던 것이었는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지만 어찌되었건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는 조커의 빈자리를 매꾸기 위해 일개 악당이 아닌 조직을 통솔하여 전 미국을 패닉에 빠뜨리면서도, 육체적으로 배트맨 이상의 능력을 가진 베인을 전면에 내세워 기존의 놀란 감독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스펙터클과 액션의 쾌감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 컴퓨터 그래픽이 아닌 실제로 동원된 수천명의 엑스트라들이 싸우는 장면은 무성영화 시대의 스펙터클을 고스란히 재현한듯 놀라울 정도이고, 베인과 배트맨의 액션은 전작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호쾌한 액션을 제공한다. 특히 '배트포드'나 '더 배트'를 타는 장면에서는 기존의 배트맨 시리즈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현란함과 속도감을 선보이는데 성공한다. 후반부 20분 정도의 액션 장면은 과거의 클래식컬한 액션 영화의 타격감과 현대의 블록버스터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화려무쌍함을 섞어놓은듯한, 눈이 호강하는 시간이었다.
조커와 함께 사라져버린 사람에 대한 고찰
이러한 기존 배트맨 시리즈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액션의 짜릿함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다크나이트 라이즈를 보며 뭔가 심한 갈증을 느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사람에 대한 농밀한 고찰의 부재와 시종일관 다음 장면이 예측이 가능했던 의외성의 부재였다. 모 평론가는 다크나이트를 평가하며 '다크나이트 또한 조커를 빼면 값비싼 블록버스터일 뿐이다' 라는 평가를 한적 있었다. 다크나이트 라이즈를 보며 새삼 그 평가에 절대적으로 공감 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단순히 '히스 레저'의 놀라운 연기력이 사라진 탓이 아니라 조커라는 캐릭터가 사라지면서 인간 브루스 웨인과 배트맨, 그리고 고담 시민들이 놀라울 정도로 평면적인 캐릭터가 되었고, 영화의 구성에서도 조커가 가진 의외성이 사라지면서 이야기와 내러티브가 지나치게 평이해졌던 것이다. 다크나이트 못지않게 다크나이트 라이즈 또한 일련의 이야기와 사건들이 브루스 웨인과 배트맨, 그리고 고담 시민들에 대한 입체적인 표현을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잘 살리지 못한 점은 다크나이트 라이즈를 보는 내내 느낄 수 밖에 없었던 갈증의 근원이었다.
이대로 끝이라고 하기엔 뭔가 아쉬운데...
아마도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어마어마한 수익을 거둘 것이고, 이대로 끝내기엔 헐리우드도, 영화제작사도, 팬들도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캣우먼의 출연신을 늘려달라!!) 마지막을 보면 이대로 끝내기엔 감독이나 제작진도 아쉬워보이는 것 같긴 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대로 다크나이트 라이즈와 같이 배트맨 혹은 다크나이트 시리즈를 연장한다면... 글쎄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뭐 어느쪽으로 결론이 나던 아무쪼록 놀란 감독의 놀라운 차기작(...)을 기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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