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블록버스터, 무협 판타지, CJ Entertainment...
내가 '중천'의 영화 관계자였다면 영화 개봉 전 굿이라도 한판 하고, 교회 가서 하루 날 잡아 금식기도를 하고, 고명한 사찰에 찾아가 삼천배라도 했을 것이다. "우리 XX는 영화에 얼마얼마 쓴 한국형 블록버스터입니다" 자랑하는 영화치고 흥행한 영화가 거의 없었고, 우리나라 영화계에서 무협 판타지라는 장르는 사실상 불가침의 영역이였으며, 1000만 관객에 목숨을 건 CJ에서 1000만 관객을 노리고 배급한 영화 치고 (타짜를 제외하곤)본전이나 제대로 건진 영화가 없었던 탓이다. 그래서인지 '중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면 사람들의 반응은 기대보다는 걱정과 우려가 컸던 것이 사실이다. 기대보다는 우려가 컸던 '중천'이 드디어 베일을 벗고 모습을 드러냈다.
헐... 여기가 중천인가벼?
베일을 벗은 '중천'의 세계는 사람들의 우려보다는 기대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모습이었다. 영화 '중천'은 중천이라는 특수한 세계를 신비하고 환상적으로 잘 그려냈고, 액션은 화려하고 박진감이 넘쳤다. 스케일면에서 중국의 무협 영화에 비해 손색이 없고, 화려함에서는 헐리웃의 특수효과 못지 않다고 표현을 하면 너무 오버일까? 해외의 블록버스터들과 비교도 안되는 적은 예산으로 (외형적으로) 이만한 수준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을 스텝들의 대단한 노력이 영화 내내 느껴졌다.(100억원이 뭐가 적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해피 피트' 같은 애니메이션에도 1000억원을 쓰는 애들이 헐리웃 애들이다;;)
겉은 번지르르 했는데 속 알맹이는 여전히...
'중천'은 여러모로 '무사'를 떠오르게 하는 영화이다. '무사'의 스텝들과 배우가 다시 만났다는 점이나 같은 장르(사실 그다지 같아보이진 않지만;), 비슷한 케릭터 설정등이 자연스럽게 '무사'를 떠오르게 한다. 그런데 문제는 '무사'에서의 흥행 실패요소였던 것들을 가지치기 한다는 것이 되려 더 심한 단점들로 부각되어 나타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우선 영화의 스케일에 걸맞지 않는 짧은 런닝 타임은 이 영화를 어정쩡하면서도 불친절한 영화로 만들어버리는데 일등 공신 역할을 한다. 흥행을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재미를 위한 것이었는지는 몰라도 관객들의 이해를 도울 '지루하지만 꼭 필요한 부분'을 지나치게 생략해 버린 느낌이 영화를 보는 내내 강하게 들었다. 덕분에 영화는 쌩뚱맞고 뭔가 부자연스러운 연결이 계속 되다 너무 뻔하게 끝나고 만다. 또한 친절해야 될 부분은 불친절하고, 불친절해도 될 부분은 지나치게 친절하다. 도대체 쓸데없는 조연들의 이름을 누가 외우고 싶다고 그렇게 매 대사마다 악당 조연들을 비롯한 각종 인물들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인가?
배우들의 연기력도 꼬집지 않을 수 없는데. 정우성의 연기는 딱히 흠잡을 곳은 없지만 너무 느끼하고, 김태희의 연기는 너무 밍숭맹숭하고, 허준호의 연기는 너무 부담스럽다. 연기력 못지 않게 작가도 이상했던 것인지 배우들의 대사가 지나치게 조야하고 유치하다.(그래도 역시 정우성의 한마디 한마디는 가히 CF감이다.) 이는 딱히 어느 누굴 탓할수만은 없는 아직 이런 장르가 미흡한 우리나라의 영화계 현실이 나타난 것이라고 한탄해 본다. 김태희나 허준호를 대신할만한 배우가 선뜻 떠오르지 않는데다 이러한 스타일의 작품을 만들어본 작가가 몇이나 되겠는가?
그래도 뭐 난 재미있게 봤다!
'반지의 제왕'을 볼 때 헬름 협곡 전투와 미나스티리스 전투 장면을 위해 모든 지루함을 참아낼 수 있었듯이, '메트릭스3'가 아무리 욕을 먹었어도 시온 공방전 하나만으로도 대찬사를 해주고 싶었던 것처럼 '중천'도 영화의 액션씬 하나만으로도 나는 이 영화를 충분히 재미있었노라 말하고 싶다. 한마디로 아무 생각없이 화려한 액션만이 가득한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고 싶다면 '중천'이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것이다. 물론 '슬프고도 아름다운 연인의 전설'은 덤이라고 생각하고 보는게 속 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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