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하스를 그렇게 열심히 하거나 아주 잘하거나 하는 유저는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나름대로 오래된 TCG 유저입니다. 한 17년쯤 전에 90년대 후반에 한국에 매직 더 개더링이 한글화되서 들어왔을 때 시작해서 한글화 망할 때쯤 접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Tempest 때 시작해서 Urza 나오자 마자 접었습니다.) 뭐 중딩때 매직 혼자 십몇만원어치 사서 깨작거린다고 TCG 부심부리네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제가 매직에서 배운 딱 한가지 사실은 정말로 이기는 덱, 판세를 control 하는 덱은 쎈 하수인, 쎈 주문, 비싼 카드로 도배된 덱이 아니라, 메타를 최대한 예측해서 상대방의 카드를 쓸모없게 만드는 카드로 덱을 짜는 전략적 사고에서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그야말로 Meta Deck이라는 것이고 이걸 보여주는 대표적으로 덱이 Magic에 진짜 오래된 덱 중에 The deck 이라는 덱이 있습니다. 이걸 아시는 분들은 "아하!" 싶을겁니다.
친추된 분들은 아실수도 있는데 최근에 하스를 잘 안하게 되었습니다. 뭔가 손이 안가더군요. 그냥 마음 한구석에서 지금의 하스스톤 랭크판이, 메타가, 밸런스가, 블리자드가 뭔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하고 싶은 마음이 점점 줄어들었다... 뭐 이런 느낌이었습니다.
그래도 방송은 제법 찾아 보는데 크라니스 선수 방송이 있어서 봤습니다. 크라니시 선수는 아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하스 초창기부터 세계적인 선수였고, 지금 Dignitas Gaming의 멤버로 외국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카이스트 생명공학과를 다니고 있는 굉장히 똑똑한 친구입니다. 저도 중간부터 봤는데 이 선수가 뭔가 신기한 주술사 덱을 꺼내놓고 좋은 얘기를 하더군요.
하스스톤은 상대턴에 행동을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자기턴에 상대를 끝내버리는게 무척 중요합니다. 이때문에 블리자드 입장에서는 콤보덱의 가능성을 제한할 수 밖에 없습니다. 손님전사처럼 블리자드가 쓰라고 던져준 허가된 콤보덱을 제외하면 하스스톤의 덱은 1234 순서대로 내서 상대방을 패서 죽이던가 1234 나오는 상대방의 하수인을 어떻게든 수비해서 큰걸 꺼내서 이기는 이 두가지 밖에 할게 없다는 거죠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주술사는 예전에 상당히 강했습니다. 아주 예전에 온게임넷에서 트럼프, 세비즈, 하푸 이런 애들 데려다놓고 경기시켰을 때 세비즈가 주술사로 때려잡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주술사는 굉장한 약체죠. 대마상시합 시작하고 나서 토템술사가 반짝했지만 그것도 잠깐이었고 지금은 다시 시들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의 원인이 무엇인가... 크라니시 선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비즈나 이런 선수들이 클래식 술사라는걸 만들었는데 그때 주술사 영능, 2코스트에 0/2 짜리 토템은 상대방이 할 수 있는 행동의 최소 단위보다 더 가치가 있었다. 그땐 토템을 끊을 수 있는 적절한 공방의 하수인이라고는 허수아비 골렘 정도 였고, 토템이 쌓이는걸 막기 위해서 서리바람 설인같은 친구들로 공격력 낭비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땐 주술사가 토템을 쌓으면서 자잘한 주문들, 대지충격, 번개화살, 대지의 무기로 상대방의 필드를 다 끊어버리고 모인 토템을 바탕으로 무거운 하수인을 꺼내면서 판을 지배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2~3턴에 필드를 강하게 지배하는, 토템을 효율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하수인이 무척 많다.
여기서 고뇌가 시작되는데 최근에는 직업을 상관 하지 않고 1턴 간좀, 2턴 보쓴꼬 혹은 미치광이 과학자 혹은 단검 곡예사 4턴 벌목기 이렇게 필드를 전개하면서 압박하는 덱이 무척 많다. 용사제도 이런 식이죠. 1턴 새끼용 2턴 고룡쉼터사원 3턴 벨렌의 선택 버프 4턴 황혼의 수호자... 이게 지금 가장 강력한 메타이고 이걸 주술사의 토템과 자잘한 주문들로 이겨낼수가 없다. 같이 맞서서 1234 싸움을 해야되는게 현 상태이고 그래서 예전 클래식 술사 덱에서 덱파워를 담당하던 무거운 친구들... 알아키르, 라그나로스 실바나스 이런 친구들을 빼고 지금 토템술사처럼 토템골렘, 투스카르 토템지기를 넣을 수 밖에 없다.
여기서 크라니시 선수가 지적하는데 주술사가 2코 3/4인 토템골렘을 가지게 되면서 뭘 얻었냐, 이거 생겼다고 상대의 1234템포를 상대로 이기거나, 버텨서 후반의 덱파워를 뽑아낼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라고 합니다. 3/4의 토템골렘, 4~7/6의 파괴의 화염수호정령은 스탯상으로 엄청나게 강한 하수인이지만 이걸 가졌다고 상황이 크게 개선되진 않았습니다. 과부하로 인해서 템포가 느려지기 때문이죠. 만약이 2코 3/3의, 4코 5/5의 페널티 없는 공용 하수인을 가지게 된다고 해도 어떤 덱은 분명히 쓸리가 없다고 말하더군요. 왜냐면 2코 3/3이 2코 2/2에 천상의 보호막인 보쓴꼬보다, 4코 5/5가 아니 6/6이 되어도 과연 4코 4/3에 죽메를 가진 벌목기보다 좋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겁니다. 바닐라 왕이라고 칭송받는 돌주먹 오우거가 6코 6/7인 상황에서 저런 지금 메타를 주도하는 저코 하수인 - 보호막을 쓴 꼬마로봇, 미치광이 과학자, 누군가 타고 있는 벌목기 - 이런 미친 하수인은 말도안되는 인플레이션이죠.
대마상 이후의 토템술사도 이런 1234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그런 애매한 덱일수 밖에 없는 이유는 클래식 술사라는 틀... 예전에 아주 강했지만 지금은 좋지 않은 그 틀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고 결론적으로 토템술사는 누더기처럼 누덕누덕 기워진 그런 덱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최근에 위즈소울님의 바나나술사(무클라의 용사를 사용하는 템포형 주술사덱)가 뜨고 있는데 이건 새로운 덱을 창조했다기보다 주술사도 1234가 되는 템포덱이 최초로 나온거다... 물론 위즈소울님이 좋은 덱을 잘 짰지만 주술사의 근본적인 문제, 하스스톤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라고 진지하게 얘기하는 크라니시 선수를 보면서 제가 어렴풋하게 생각하고 있던 게 바로 저거였구나 싶었습니다.
자기 덱을 보여주면서 이 덱은 자기 스스로 해보는 주술사에 대한 실험이라고 하더군요. 늑조디아덱도 정말로 이 덱이 약한지, 자기가 잘 못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랭크에서 500판 정도 연구했다고 하더군요. (크라니시 선수는 작년 블리즈컨에서 늑조디아덱!을 사용해서 코렌토!를 이기고 4강!에 진출했었습니다.)
저는 요즘 대회를 보면 고놈 나오기 전처럼 선수들이 가져온 직업만 가지고 아 이런 이런 덱이 나오겠구나 예상이 다 되더군요. 다들 쎄다고하는 덱을 가져다 플레이하는 그런 느낌입니다. 요즘 미드기사가 유행하는데 저도 대회에서 몇번 보고 대충 만들어서 퀘스트를 깨봤는데 한장도 안 틀리고 Sjow선수가 만든 미드기사랑 동일하더군요. 슬시호가 만들어도 그렇고 룩삼이 만든 미드기사도 똑같습니다. 한두장빼고 똑같죠. 하스라는 게임 자체가 인플레이션이 심한 하수인을 넣고 1234 찾는 운빨게임이 된거 같은 회의감을 느낀거 같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진지하게 "남들 다하는 쎈 덱하면 편하지만 그러면 뭔가 불편하다" 라면서 뭔가 병신같지만 멋있게 뭔가 이상한 덱을 돌리는 크라니시 선수 방송을 보니 뭔가 울컥하는 기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알지롱 마스터즈 2회가 되면 억결 그 이상의 덱, 천공의 교감 덱으로 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덱 완성하기 위해서 5200 가루 필요함.... 천공의 교감 1장 400, 전투절단기 1600, 데스윙 1600 스니드의 벌목기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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