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구단 KT의 ‘창단 1호 선수’ 탄생이 임박했다. 신생 KT 위즈 야구단은 6월 17일로 예정된 우선지명 선수 발표를 앞두고 창단 이래 어느 때보다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5명으로 구성된 스카우트 팀을 총동원해, 가장 최근까지 전국 고교와 대학의 우수 선수들을 다각도에서 주의깊게 관찰하며 후보자를 추려냈다. 한 관계자는 “늦어도 주말 전까지는 2명의 지명 선수가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KT의 우선지명과 신인 1차지명의 진행 방식, 그리고 앞으로의 전망을 미리 살펴봤다.
고교 투수 2명이냐, 대학 야수 포함이냐
“올해 3학년이요? 정말 약해요. 매년 똑같은 소릴 하는 것 같지만, 올해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선수가 없습니다. 아마 다른 팀도 다 마찬가지일 거에요. 대신 1, 2학년에는 괜찮은 선수가 꽤 많은 편입니다. 내년부터는 기대하셔도 좋아요.”
한 사람이 말한 내용을 옮겨 적은 게 아니다. 올해 들어 만난 고교 감독들마다 하나같이 똑같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입이라도 맞춘 듯이 ‘3학년이 약하다’고 길게 탄식하고는, 곧이어 ‘1, 2학년은 좋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끝에는 ‘내년 이후를 기대하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감독들 특유의 엄살일 것 같지만, 프로 구단 스카우트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수도권 팀의 한 스카우트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올해는 지명 대상 선수들의 기량이 대체로 고만고만한 편입니다. 작년의 윤형배나 그 전해 나성범, 하주석처럼 눈에 확 띄는 선수가 많지 않아요. 변진수나 한현희처럼 고교 무대에서 괴물같은 성적을 기록한 선수도 드물구요. 게다가 랭킹 상위권으로 예상했던 선수들이 부상과 부진에 빠지는 바람에,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더욱 좁아졌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고교야구에서는 윤형배(NC), 조상우(넥센) 등 최고구속 150km/h대를 던지는 괴물 투수들이 돋보이는 활약을 펼쳤다. 한 해 전으로 시선을 옮겨도 노성호, 나성범(이상 NC) 등 150km/h대 대학 좌완에 이민호, 한현희, 변진수 등 뛰어난 고교 투수들이 한꺼번에 두각을 드러냈다. 그에 비하면 올해는 대학과 고교를 탈탈 털어봐도 ‘특급’으로 분류할 만큼 압도적인 기량을 보여준 선수가 없다. 저학년 때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선수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부진에 빠졌다. 경상권 팀의 한 스카우트 담당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원래 올해 초까지만 해도 KT의 우선지명 선수가 누가 될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견이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스카우트가 개성고 심재민과 서울고 배재환이 랭킹 1, 2위라는데 의견이 일치했죠. 그만큼 두 선수가 야구 재능과 발전 가능성 면에서 다른 선수들에 비해 뛰어났으니까요. 3학년 때 어지간히 심각한 부진에 빠지지 않는 이상, KT가 두 선수를 데려갈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누구도 바라지 않은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심재민과 배재환이 한꺼번에 기대에 크게 못 미치는 모습을 보여준 것. 심재민은 잔부상으로 겨울 연습경기 때부터 좀처럼 실전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고, 주말리그에서도 2경기에서 11.2이닝을 던지는데 그쳤다(평균자책 5.25). 배재환 역시 투구 밸런스가 무너지며 2경기 1.1이닝 동안 사사구 7개를 내주는 참사를 경험했다(평균자책 27.00). 단순히 성적만 나쁜 게 아니라 구속과 제구 등 모든 면에서 작년보다 좋지 못한 모습을 드러냈다는 게 문제다. 아마야구계 일각에서 심재민과 배재환을 두고 ‘태업설’까지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모 고교 감독은 “두 투수 다 올해 어떻게든 좋은 활약을 해서 조금이라도 몸값을 높이려고 하는 게 당연하다”는 말로 의혹을 일축했다. “심재민의 경우 지난해 세계청소년대회까지 워낙 많은 경기에 나와서 던졌고, 그 후유증으로 작년 연말에는 어깨 통증으로 고생했다. 2학년 내내 학교와 대표팀을 위해 군말없이 열심히 던지던 투수가 일부러 슬슬 던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얘기다. 배재환 역시 겨울 전지훈련 때부터 투구 밸런스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안다.”
특급 유망주들이 동반 부진에 시달리는 동안 고교 랭킹 상위 자리는 다른 선수들이 차지했다. 제주고 좌완 임지섭과 상원고 좌완 이수민, 효천고 우완 차명진 등이 대표적인 예. 이수민은 올해 주말리그에서 대구고를 상대로 한 경기 최다탈삼진 신기록(26개)을 달성하며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다. 또 임지섭과 차명진은 140km/h 중후반대 강속구를 던지는 장신 투수로 성장 가능성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에는 북일고 우완 유희운이 연일 인상적인 피칭을 선보이며 맹추격을 벌이는 중이다.
KT 관계자는 최근 “내부 회의를 통해 우선지명 후보를 5~6명 선으로 압축한 상태”라고 밝혔다. 구체적인 이름이 언급되진 않았지만 야구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심재민, 임지섭, 차명진, 유희운 등 고교 투수 유망주들과 동국대 강민국이 여기에 포함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심재민의 경우 올 한해 부진하긴 했지만 체격조건과 성장 잠재력, 투수로서의 재능 면에서 여전히 독보적이라는 평가를 듣고 있다. 특히 KT의 1군 진입이 2년 뒤에 이뤄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재활을 거쳐 원래 투구폼을 회복하기에는 시간적인 여유가 충분하다. 동국대 강민국은 올해 아마추어 선수를 통틀어 가장 프로 즉시전력에 가깝다는 평을 받는다.
모 구단 스카우트는 “9구단 NC도 두 차례 우선지명에서 4장의 지명권을 모두 투수에게 사용했다”며 “투수놀음인 야구의 특성상 KT도 투수 2명을 발탁하지 않겠느냐”고 예상했다. 야수의 경우 보호선수 외 특별지명 등을 통해 충원할 수 있다는 것도 이유다. 다른 스카우트도 “좌완투수 1명과 우완투수 1명씩을 선택할 것 같다”고 비슷한 의견을 냈다. 반면 한 대학 감독은 “2명을 모두 고졸 신인으로 뽑기에는 위험부담이 있을 것”이라며 “지명권 하나 정도는 즉시전력감인 대졸 내야수에게 사용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KT 관계자 역시 “투수 2명을 할지, 야수 1명을 포함할지는 아직 검토 중”이라는 말로 여지를 남겼다.
기존 구단 신인 농사, KT 손에 달렸다?
기존 8개 구단은 KT의 우선지명 발표를 앞두고 한껏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KT가 어떤 선수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신인 1차 지명의 판도가 크게 좌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연고지역에 대어급 유망주가 부족한 일부 구단은 KT가 자신들의 연고지 선수를 지명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안 마련에 고심을 거듭하는 중이다. 프로야구 초창기에 만들어진 1차 지명을 신생팀이 창단하는 시대에 무리하게 시행하려다 보니 빚어지는 촌극이다. 한 야구인은 “신생팀이 생기는 마당에 1차 지명이 되살아나는 게 이치에 맞느냐”며 “KBO 규약도 지역연고제가 아닌 도시연고제로 바뀐 마당에 1차 지명 부활은 그야말로 코미디”라고 꼬집었다. *1차지명 부활에 따르는 여러 문제점에 대해서는 추후에 다른 글을 통해 소상히 다룰 예정이다.
전면드래프트 제도 하에서는 신생팀에 주어지는 우선지명 혜택이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역에 관계없이 전년도 성적 역순으로 우수한 선수를 선택하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전년도 상위권 팀이 지명 순번에서 손해를 보긴 했지만, 드래프트 제도 자체가 원래 하위팀에 유리하고 상위팀이 불리하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올해는 우선지명과 1차 지명을 한꺼번에 시행하는 통에 KT가 일종의 ‘캐스팅 보트’를 손에 쥐게 됐다. 1차 지명 제도의 맹점인 고질적인 지역 불균형 문제가 원인이다. 한 스카우트의 말을 들어보자:
“10개 구단이 추첨을 통해 55개 고교 팀을 연고지 기준으로 골고루 나눠 갖긴 했지만, 우수한 유망주 선수까지 균등하게 배분한 것은 아니다. 지역마다 여러 명의 우수 선수가 있는 연고지가 있는가 하면, 눈 씻고 찾아봐도 1차지명감 선수가 보이지 않는 지역도 있다. 가령 10구단 KT가 배정받은 학교들만 봐도 유신고, 장안고, 부천고, 안산공고, 충훈고 등 중하위권 팀과 신생팀 소래고가 전부다. 평가 기준에 따라 달라질 순 있겠지만, 솔직히 올해 KT 연고에서는 예년 같으면 3라운드에서 뽑힐 만한 선수도 찾아보기 힘든 게 사실이다. 경남권 고교들과 군산상고, 전주고를 연고로 받은 NC 역시 1차 지명으로 뽑을 선수가 전무한 실정이다.”
당초 1차 지명 부활 움직임을 두고 ‘신생팀을 두 번 죽이는 악법’이라는 비판이 나온 것도 바로 이런 사정 때문이다. 다행히 막판 기존 구단들의 양보로 NC와 KT는 1차 지명에서 연고지에 관계없이 선수를 뽑을 수 있게 되면서 한 시름을 놓은 상태. NC 관계자는 “NC와 KT의 척박한 연고지 상황을 감안해, 올해부터 3년간은 기존 구단들이 1차 지명을 한 뒤 전체 학교를 대상으로 1명씩을 지명하도록 조정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이에 드래프트 3~4라운드감 선수를 울며 겨자 먹기로 1차 지명에서 뽑는 최악의 시나리오만은 당분간 피할 수 있게 됐다.
문제는 기존 구단 중에도 연고지 사정이 마땅찮은 팀이 한둘이 아니라는 것. 앞의 스카우트는 “1차 지명감 선수가 여러 명 있는 지역은 그나마 걱정이 덜한 편”이라며 말을 꺼냈다. “비슷비슷한 선수가 연고지에 두 세 명 있다면, KT가 우선지명으로 선수를 데려가도 남은 선수 중에 하나를 지명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상위권 유망주가 지역 내에 한 명 뿐이거나, 한 선수와 나머지 선수 간에 현격한 차이가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KT에서 먼저 좋은 선수를 뽑아가면, 자칫 그보다 훨씬 못한 선수들 중에서 첫 번째 지명권을 행사해야 할 수도 있다.” 이에 우선지명에서 KT의 선택에 따라 1차 지명에서 각 구단의 희비가 크게 엇갈릴 전망이다.
지역별 1차 지명 주요 후보군
서울권: 임지섭(제주고), 배재환(서울고), 임병욱, 한주성(덕수고), 배병옥(성남고)
인천·경기권: 박민호(인하대), 이승진(야탑고)
대전·충청권: 유희운(북일고)
광주·전라권: 차명진(효천고), 강민국(동국대)
대구·경북권: 이수민(상원고), 박세웅(경북고)
부산·경남권: 심재민(개성고), 김유영(경남고)
*고려대 문상철 등 고교 졸업한 해 프로 지명을 받았던 선수들은 1차 지명 대상에서 제외
KT의 선택에 가장 큰 영향을 받게 될 지역으로는 3팀이 공동으로 연고권을 행사하는 서울이 가장 먼저 거론된다. 두산과 LG, 넥센 3팀은 서울지역 14개 고교와 추첨을 통해 확보한 제주고와 원주고까지 총 16개 고교 팀을 공동 연고지로 관리한다. 3팀은 1차 지명 순서를 어떻게 정할지를 놓고 자유 경쟁부터 추첨제까지 여러 선택지를 놓고 협의를 거듭한 끝에, 결국 전년도 성적 역순으로 지명권을 행사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이에 올해는 LG-넥센-두산 순으로 1차 지명을 행사한다. 내년에는 넥센-두산-LG 순, 2015년에는 두산-LG-넥센, 2016년에는 다시 LG-넥센-두산 순서로 지명권을 갖게 된다.
한 스카우트는 “올해는 다른 해에 비해 서울지역에 1라운드급 유망주가 많지 않은 것 같다”며 “만일 추첨에서 제주고가 나오지 않았으면 서울 팀도 선수 선발에 꽤나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덕수고 에이스 한주성 외에는 실전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투수 유망주가 드물었다는 게 서울지역 스카우트들의 고민이다. 이 스카우트는 “투수 중에 재능과 성장 가능성 면에서는 임지섭과 배재환이 앞서고, 변화구 구사능력과 완성도 면에서는 한주성이 우위”라면서도, “야수 중에서는 덕수고 임병욱을 선택하는 팀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KT의 선택에 따라 서울 3팀의 지명 선수도 연쇄적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게 변수다.
KT 딜레마를 겪는 또 다른 팀은 한화 이글스. 한화는 1차 지명 부활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팀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해만 해도 윤형배, 김인태, 강승호(북일고), 조상우(대전고) 등 1라운드 지명자들이 4명이나 쏟아져 나왔지만, 올해는 북일고 유희운 외에는 이렇다할 상위 지명 대상이 눈에 띄지 않는 상황. 유희운은 연초에만 해도 직구 구속이 130km/h대에 그치며 부진했지만, 주말리그와 황금사자기에서 145km/h까지 구속을 끌어올리며 주가를 높였다. 가장 최근 등판에서는 최고구속 149km/h를 기록하며, 올해 고교 우완 투수 중 가장 빠른 볼을 뿌렸다.
이에 처음에는 유희운의 활약을 반기던 한화 구단도 유희운이 매 경기 눈부신 호투를 거듭하고 150km/h 가까이 구속을 끌어올리자 조금은 신경이 쓰이는 눈치다. 팀 성적이 몇 년째 하위권을 맴도는 가운데, 만약 신인 수급에서도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면 한화의 미래는 더욱 어두울 수밖에 없다. 반대로 롯데는 지역내 최고 신인인 심재민이 올해 부진했다는 점이 고민거리다. 최근 몇 년간 1라운드에서 잇달아 투수를 지명했지만 아직 뚜렷한 성공 사례가 없기 때문. 물론 심재민이 차례까지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다. 모 스카우트의 다음과 같은 말이 기존 구단들의 딜레마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뽑고 싶은 선수가 너무 못 해도 걱정이고, 반대로 너무 잘 해도 걱정이다.”
KT 야구단은 14일 경 자체 회의를 통해 우선지명 선수를 정하는 마지막 단계를 밟을 예정이다. 10구단 KT의 유니폼을 입는 첫 번째 주인공은 누가 될지, 야구계와 팬들의 눈과 귀가 일제히 KT가 쥔 마법의 지팡이에 집중되고 있다.
어휴... 올해 고교 특출난 애가 없다는데
왠지 별로 시원찮을 거 같은 불안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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