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고척 스카이돔, 넥센의 타격 연습 때 배팅케이지 한 쪽 옆에 피칭 머신이 설치됐다. 머신에서는 계속해서 강속구가 뿜어졌고, 타자들은 이를 지켜봤다. 치기도 어려웠지만 칠 생각도 없었다. 넥센 심재학 타격코치는 “스피드건으로 재면 시속 158~160㎞ 정도 된다”고 설명했다.
빠른 공에 대한 감각을 유지하기 위한 훈련이다. 휘두르는 대신 마음 속으로 타격의 타이밍만 계산한다. 심 코치는 “이 훈련을 시작한지 한 2년쯤 됐다”고 했다.
넥센이 경기 전 훈련 때 사용하는 컬러 볼. 피칭 머신에서 160km 속도로 날아오는 공의 색깔을 맞히는 훈련이다. | 이용균 기자
최근 넥센은 빠른 공 훈련에 한 가지를 추가했다. 공 가운데에다 빨강과 파랑, 검정색 동그라미를 칠했다. 그저 빠른 공을 쳐다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공에 칠해진 색깔을 맞혀야 하는 숙제가 더해졌다. 피칭 머신 앞에 선 임병욱은 공을 한 번 쳐다본 뒤 “파랑” 혹은 “빨강”을 외쳤다. 못 보는 수는 있어도 색깔이 틀리는 일은 없다. 임병욱은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금방 색깔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넥센이 새로 시작 한 ‘컬러 볼’ 훈련이다. 심 코치는 “공에 색을 칠한 건 한 1주일 쯤 됐다”고 말했다.
빠른 공에 대한 감각 뿐만 아니라 그 공의 색깔을 살핌으로써 공의 궤적을 좇는 훈련이다. 동체시력을 강화시킬 수 있다. 주장 서건창은 “이제 시작이지만 동체시력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처음 몇 개는 안 보였는데, 금방 색깔 다 볼 수 있게 되더라”라고 말했다. 넥센 염경엽 감독은 “어떤 선수는 3일 정도 걸리는 선수도 있었다. 지금은 대부분 색깔을 다 맞힌다”고 설명했다.
넥센 컬러볼 훈련/스포츠경향 유튜브 채널
메이저리그에서 익숙한 훈련이다. 추신수 역시 기계에서 뿜어져 나오는 테니스공에 적힌 숫자를 확인하면서 이를 때리는 훈련을 한다. 스즈키 이치로는 초등학교 때 부터 버스와 전차를 탈 때 빠르게 지나가는 간판을 읽어내는 훈련을 해 왔다고 밝혔다. 1990년대 초반 LA 다저스는 안과 전문의를 스프링캠프에 초청해 선수들의 시력을 살폈다. 의사는 92년과 93년 각각 1명의 선수를 ‘시력 좋은 선수’로 골랐다. 에릭 캐로스와 마이크 피아자. 둘 모두 그해 내셔널리그 신인왕에 올랐다. 동체시력은 투구의 움직임을 빨리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0.2초 안에 판단해야 하는 타자에게 아주 작은 찰나의 여유가 주어진다면 훨씬 더 유리해지는 것은 자명하다.
심 코치는 “이것저것 다 해보는 중”이라며 “그냥 공만 보는 것은 이제 지루할 것 같아, 색깔을 칠하는 변화를 줬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인터넷을 검색하고 유튜브를 뒤졌다. 원래 테니스공을 사용하려고 했지만 회전판 3개로 작동되는 현재 피칭머신으로 테스트해보니 테니스공이 찌그러져서 제대로 발사되지 않았다. 기존 공에 색칠을 하되 대신 타격을 하지는 않는 방식이다. 염 감독은 “스윙의 타이밍만 계산하면서 잡아나가면 된다”고 말했다.
한 선수는 “실제 효과가 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며 웃었지만, 실제 효과 여부 보다 중요한 것은 변화에 대한 추구 의지다.
넥센은 강정호가 떠난 데 이어 박병호, 유한준, 손승락이 모두 빠져나갔다. 시즌 개막 전 전력상 최하위권으로 예상됐지만 넥센은 23일 현재 21승20패로 중간순위 5위에 올라 있다. 넥센이 성적을 낼 수 있는 것은 큰 틀 뿐만 아니라 작은 디테일에서의 변화를 꾸준히 추구했기 때문이다. 2012시즌 발야구의 팀이었다가 곧장 벌크업을 통해 타선의 힘을 키우는 방식으로 변했고, 홈구장의 변화와 함께 팀 컬러를 또 바꿨다. 목동구장의 작은 크기 때문에 투수들 입장에서는 안 맞으려고 볼넷이 많았던 팀 마운드는 또다른 변화 추구를 통해 올 시즌 가장 볼넷이 적은 팀(107개)으로 변신하는데 성공했다. 성공은 변화에 대한 의지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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