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빈아. 아빠와 엄마가 서로 뜻이 맞지 않아 이혼하게 되었구나. 네게 아빠로써 면목이 없다"
한참 민감한 시기였던 터라 두 분의 이혼 사실을 쉽사리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당장이라도 야구를 그만두고 그저 내 멋대로 살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지만 언제나 나를 지켜주셨던 아버지를 생각하니 결코 스스로를 망가뜨릴 수 없었다. 그때부터 우리 가족은 아버지.나.그리고 동생 이렇게 셋이서 살기 시작했다. 아버지께서는 기계 만지는 일을 하신다.그래서 늘 손에는 기름때가 지워질 날이 없으시다. 그렇지만 언제나 동생과 내 앞에서는 힘든 내색 하지 않으시며 우리 형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신다.
내가 야구를 시작하고 얼마 있지 않아 두 살 터울인 동생도 야구를 시작했다. 형의 유니폼 입은 모습이 늘 부러웠다며 기어이 형과 같이 야구를 하겠다 했다. 덕분에 (?) 그때부터 아버지께서는 두 배로 힘들어지셨다.
야구라는 운동이 많은 장비를 요하는 스포츠이기에 그 비용만도 만만치 않았다. 그렇게 형제의 뒷바라지를 아버지 혼자서 감당하시려 하니 얼마나 힘드셨겠는가. 아직도 철이 든 건 아니지만 어떤 날은 편하게 운동할 수 없는 환경에 불만을 떠뜨리기도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는 정말 운동을 그만둘까도 생각했다. 밀린 회비도 감당하기 벅찼기 때문이다. 차라리 이렇게 힘들게 운동을 계속 할 바에는 그냥 학교 그만두고 돈벌이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당장 야구를 그만둔다면 어떻게 돈을 벌 것이며 그래도 내가 가장 자신 있는 게 야군에 그럴 수도 없었다.
결국 아버지만 더욱 고생을 떠 안게 되었고 동료들보다 몇 달이 지난 후에야 회비를 마련하곤 했다. 그래도 주변 분들로부터 큰 도움을 받기도 했다. 야구 장비를 구입하지 못할때는 용품을 파는 주인 아저씨께 사정을 얘기한 후 외상으로 구입한 적도 부지기수였다. 인심 좋던 주인 아저씨께서는 아들 같은 학생이 너무 열심이라며 흔쾌히 나의 청을 허락해 주셨다. 그래도 장비가 부족할 때면 야구를 도중에 그만 둔 선배들 것을 물려받아 사용하기도 했다.
이렇게 힘들게 운동을 계속해왔지만 우리 가족은 서로에게 힘든 내색을 좀처럼 하지 않았다. 비록 어린 나이에 어머니께서 집을 떠나셨지만 우리는 나름의 룰을 만들어 가사를 분담하곤 했다. 세탁은 동생과 나의 몫이었고, 식사 준비는 아버지, 그리고 설거지는 세 명이 돌아가는 그야말로 민주적인 형태였다. 그 룰은 내가 KIA 타이거즈에 입단하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아버지는 내게 친구 같은 분이시다. 보통 아버지들을 보면 엄하기도 하시고 쉽게 다가가기 힘든 분이신데 아버지께서는 언제나 편하게 나를 대해 주시는 분이시다. 어떤 날은 동생과 내가 같이 쉬고 있노라면 슬그머니 다가와 " 우리 아들들 오랜만에 아빠와 PC방 가지 않을래?" 하시며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시곤 하셨다.
KIA타이거즈에 지명 된 후 가장 먼저 아버지께 그 사실을 알리자 장한 내 아들이라며 격려를 해 주셨고,나중에 계약금을 받아 아버지께 드리니 "우리 아들이 벌써 이렇게 커서 효도를 다 하는구나" 하시며 눈시울을 붉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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