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위한 시간 ★★★★
원제 1박 2일 대신 센스 있는 작명으로 더 유명한 영화인데요. 매력적인 배우 마리옹 꼬띠아르가 본인의 아우라를 죽이고 우울증 병력이 있는 소시민으로서 직장을 되찾기 위한 분투기를 그려냈습니다. 만나는 사람의 상황마다 조금씩의 다른 변주와 그 속에서 처음엔 그냥 모든 걸 포기하려고 했던 그녀가 "나 싸우길 잘했지?"라는 말을 하기까지의 과정 속에 변화하는 모습이 씩씩하게 잘 그려져 있어요. 프랑스의 따가운 햇볕 아래 나른하면서도 건조한 이 이야기가 보는 이에게 용기를 전해 주는 건 마리옹 꼬띠아르라는 배우의 탈렌트가 아닌 산드라라는 인물의 성장 덕분일 겁니다.
자전거 탄 소년 (내일을 위한 시간 개봉 기념 특별 상영) ★★★★☆
처음부터 끝까지 소년에게 감정이입을 하기 힘들었던 것도 내가 속칭 철이 들었다는(나이를 쳐 먹었다는) 어른이 되었기 때문이고 마지막에 자전거를 타고 사라지는 소년을 보며 가슴앓이를 느끼는 것도 내가 속칭 철이 들었다는(나이를 쳐 먹었다는) 어른이 되었기 때문인 듯 합니다.
스시 장인 : 지로의 꿈 ★★★☆
아주 훌륭한 꼰대시죠. 스시를 쥐는 영상미가 매우 독보적인 영화입니다.
와일드 ★★★☆
이유 모를 개고생 끝에 찾아오는 현자 타임은 늘 여행마다 겪는 편이기에 비교적 가볍게 여기고 보기 시작했으나 역시 사막 횡단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교훈을 얻었읍니다(병신) 현실의 상처가 아무리 깊다 해도 그것이 사실 길다란 인생에 있어서는 별 대단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닫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한 거라는 걸 잘 보여줬던 거 같아요.
꿈보다 해몽 ★★★☆
새롭게 퍼져나가는 홍상수 월드의 평행 우주. 이 정도면 훌륭히 복제해낸 듯 싶지만 정돈되지 않은 소품집으로서의 느낌이 작품의 전체적인 퀄리티를 떨어트린 느낌입니다. 보다 보면 어느새 빠져드는 홍상수의 입담에는 아직 많이 모자라 어느 순간 영화와 나와의 괴리감이 느껴지는데 아직은 젊은 감독이니만큼 가능성을 믿고 싶네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재개봉) ★★★★★
다시 보니 더 압도적인 영화네요. 경이로운 영상미에 제압당한 상태로 질질 끌려다니다가 결국 마지막에 뒤돌아보는 센과 치히로의 경계선상에 있는 소녀의 모습에서 원래의 치히로보다 한 뼘은 더 성장한 듯한 느낌에 한 편으로는 대견스러우면서도 한 편으로는 어린아이로 존재하던 시절이 이렇게 끝나버렸다는 데서 오는 씁쓸함이 동시에 펼쳐집니다. 호평 받는 캐릭터인 하쿠에는 의외로 별 감흥이 없었네요.. 별로 좋아하는 타입의 캐릭터는 아니라 그런지..
이다 ★★★★
본인의 출생은 커녕 부모님이 누군지도 모르고 수도원에서 길러진 안나는 서원식을 하기 직전 이모의 존재를 알게 되어 수녀가 되기 전에 이모를 만나러 갑니다. 그 이모와의 만남을 통해서 자신이 유대인이고 이름은 이다이며 부모님은 2차대전의 홀로코스트 속에 희생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에 대해 더 확인하기 위해 이모와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되죠. 그 과정에서 무균실과 같았던 수도원과는 정반대인 세상 풍파 속에서 다양한 인간 군상과 복잡한 감정을 접하며 하나의 인격체를 완성하는 과정이 그려집니다.
특히나 자신과의 정반대의 입장에 생활하고 있던 이모의 행동을 따라하다가 다시 수도원으로 돌아오는 길의 풍경은 무척이나 밀도감이 높아서 압도당하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흑백의 필치를 매우 잘 뽑아낸 영화입니다.
버드맨 ★★★★
솔직히 말해서 좀 지루했지만 고생한 흔적이 역력히 드러나는 촬영 기법과 음향 효과는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예술가의 고뇌가 너무 피상적으로만 그려진 게 아닌가 (원래 그런 캐릭터를 노린 거 같긴 하지만) 하는 불만도 있었지만 엔딩의 시퀀스가 너무 압도적이어서 좋은 점수를 주고 말았습니다.
위플래쉬 ★★★★☆
두 말할 것도 없는 올해의 영화죠. 이런 영화를 만들려면 어떤 약을 빨아야 할 지 감도 안 잡히는데.. 과연 예술의 영역을 범재들이 이러쿵 저러쿵 말할 수가 있는가 하는 의문과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조차 지켜지지 않는 예술이 무슨 소용인가 하는 의문의 끊임 없는 충돌을 압도적인 드럼 컴비네이션으로 엮어냅니다. 이쯤 되면 타악기인 드럼을 선택한 혜안에 탄복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철도원 (재개봉) ★★★☆
한참을 시큰둥하게 보다가 운구를 실은 기차가 출발하면서 눈 덮인 홋카이도의 산하를 관통하는 부분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고 말았네요. 좋은 영화냐고 물으면 잘 모르곘다는 답을 할 거 같은데.. 이상하게 그 부분이 마음을 울렸습니다.
아 히로스에 료코의 젊은 시절은 참 빛나더라구요. 별로 영화에선 잘 써 먹진 못했지만서도.
이미테이션 게임 ★★★☆
한 천재가 국가로부터 버림 받는 과정이 매우 씁쓸했읍니다.. 딱히 재밌다거나 영화적으로 좋은 인상을 받을 만한 부분은 없었는데 (커다란 해석기관이 돌아가는 건 진풍경이긴 했지만 뭔가 리얼리티는 없어 보였습니다.) 튜링의 일생의 어두운 부분을 비춰낸 부분은 좋았습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캐릭터 해석 능력이 좋았고 키이라 나이틀리도 매력적이네요.
킹스맨:시크릿 에이전트 ★★★★
존나 골 때리는 영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지만 속편이 나온다면 안 볼 거 같습니다.
리바이어던 ★★★★
프롤로그에서 나오는 황량한 벌판에 고래 사체를 때리는 파도처럼 러시아의 한 시골 도시라는 특정한 공간 내에서 일방적으로 권력에게 유린당하며 꿈도 희망도 없이 모든 걸 잃어가는 한 개인을 그려낸 영화입니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은 어떻게든 헤쳐 나오려고 하지만 바위에 계란 치기처럼 그 어떤 것도 권력에게 기스 하나 내지 못하고 오히려 더 일방적으로 린치당하는 모습에서 단순히 러시아에서의 삶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도 저렇게 흘러가는 게 아닌가 하는 경각심을 가지게 됩니다. 에필로그에서 주인공의 흔적이 가루조차 남지 않은 고향의 풍경에서 어찌할 바조차 알 수 없는 무력감의 엄습이 대단한 수준입니다.
파울볼 ★★★
이것 저것 계급장 다 떼고 영화의 만듦새만 보면 그냥 딱 평균 레벨. 그 정도의 영화였네요.
한여름의 판타지아 ★★★☆
낯선 형식, 낯선 장소, 낯선 인물에서 묘하게 느껴지는 높은 리얼리티.
앞길을 전혀 에측할 수 없는, 그냥 우리 옆 집 혹은 옆 동네에 사는 듯한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인생의 짧은 핑크빛 이야기가 더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부분이 있어요. 습도 높은 여름 밤 일본의 한 시골 거리에서의 엉망진창으로 이뤄지는 키스 씬은 올해 본 그 어떤 장면보다도 더욱 달달했던 것 같습니다. 근데 제 기준으로 봤을 때 여주인공이 쉬운 일본말을 되게 어려워하고 의외로 어려운 말은 쑥쑥 말하는 걸 보면서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좀 고민을 했드랬습니다.... 대본이 이상한 건가..
종이 달 ★★★★
일본 영상물 내 특유의 서늘함을 무시무시할 정도로 잘 살려낸 작품입니다.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미야자와 리에의 캐릭터 해석이 매우 좋았습니다. 관심 있으시면 예전에 긴 리뷰를 쓴 게 있으니 그 쪽을 참조해 주세요.
위로공단 ★★★☆
YH노동조합 사건 등의 구로공단 혹은 그 이전 시절의 여성 노동운동으로부터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 소송에 이르기까지 한국 노동운동의 한 축을 맡아온 여성 노동운동의 주역들의 인터뷰를 엮은 영화입니다. 형식적인 측면에서 미숙하달까 정돈되지 않았달까 여튼 (나쁜 의미로) 잘 정제되지 않은 점이 영화 보는 내내 거슬리기는 했지만 인터뷰이가 지난한 과거를 담담하게 풀어내는 모습에 또 앞으로의 신념에 대해 말하는 부분에 참 마음이 많이 가던 영화였어요.
글이 길어져서 반 자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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