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경기가 끝난 락커룸, 코치는 자랑스레 태극기를 펼쳐놓는다. 애국가는 물론 기본 옵션이다. 선수들은 그동안의 서러움과 아쉬움에 눈물을 보이며 한마디 한다.
'야 애국가가 이렇게 슬픈 노래였냐?'
애국가는 슬픈 노래라 주장하긴 조금 어려운 곡이다. 하지만 때와 장소에 따라선 형용할 수 없는 거룩함과 감당하기 힘든 슬픔을 느끼게 만드는 곡이기도 하다. 중요한건 포장이다. 어떤 때, 어떤 장소에서 '애국심'이란 복잡 미묘한 존재를 불러 일으키느냐 그것이 관건이다.
영화 국가대표는 그 제목부터 그러하듯 2시간이 넘는 런닝타임동안 영화속 인물들은 줄기차게 '국가대표', '메달', '올림픽'을 부르짖는다. 이를 통해 관객들을 2시간 동안 애국심에 불타오르는 네셔널리스트로 만들고는 기어코 마지막 태극기와 애국가를 통해 확인사살에 들어간다.
결국 영화 속 국가대표 선수들이 울음을 터뜨린다. 영화 속 국가대표 선수들을 보는 영화 속 대한민국 사람들도 울음을 터뜨린다. 영화를 바라보는 관객들도 울음을 터뜨린다. 그리고 영화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한마디 '이 영화는 실화입니다'
감동실화
앞서 말한 관객을 네셔널리스트로 만드는 가장 큰 원동력은 이 이야기가 바로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감동적이고 놀라운 이야기들은 분명 실화를 바탕으로 했을 때 그 파급력과 전달력이 높아진다. 그렇기에 관객들은 영화 시작전 마법같은 한마디 -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 에 그토록 쉽게 감정이입에 빠질 수 있게 되고 결국 감동의 눈물에 빠질 수 있게 된다.
지금 말하고 싶은 것은 그것이 잘못된 방법이라거나 관객들이 하찮은 눈속임에 넘어갔다는 것을 지적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영화의 소재와 이야기는 단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것을 넌지시, 아주 은근히 입소문을 퍼뜨리는 것만으로도 그 효과는 충분했을 것인데, 영화의 내적으로 그것을 노골적으로, 세련되지 못하게, 지나칠 정도로 몰아붙여 오히려 영화를 보는데 역효과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이는 비단 영화 '국가대표'만의 실수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몇년전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모 SF 영화가 영화의 외적으로 이러한 '애국 마케팅'을 노골적이고 세련되지 못하게 펼쳤던 것처럼, '국가대표'는 영화의 내적으로 그러한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모 노교수님께서 모 정당에게 했던 충고를 빌려 영화 감독님에게 말씀드리고 싶다. "영화 '국가대표', 애국심에 대한 호소는 좀 매끄럽게 했어야죠..."
스키점프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국가대표'를 애국심 마케팅에만 의존한 허접스레한 한국영화로 치부할 수 없는 것은 이 영화가 분명 스키점프라는 스포츠 본연의 맛을 살리는데 있어서는 합격점을 줄만큼 수준급이라는 사실이다.
특히 영화 후반부의 올림픽에서 선수들이 스키점프를 하는 장면은 스키점프 하기 직전의 긴장감, 점프대를 타고 내려올 때의 속도감과 박진감, 스키점프대를 박차고 날아오를 때의 쾌감은 일품이라 칭찬할 수 있을 정도로 훌륭했다.
또한 영화 초중반의 매끄럽지 못한 - 영화의 위기와 긴장이 지나치게 잦고, 중구난방으로 펼쳐지던 이야기가 영화 마지막에 급히 수습되는 - 구성이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많이 안정되어 제법 센스 있고 멋진 모습을 연출해낸다. 앞에서는 과도하게 관객들을 네셔널리스트로 만든다 비판했지만 선수들이 올림픽 무대에서 스키점프를 할 때만큼은 개인적으로도 소름이 돋고 눈시울이 시큰할 정도였다.
이처럼 단지 황무지와 다름 없는 인프라에서 아무도 하지 않으려하는 것을 하려는 이들의 도전과정 그 자체만으로도 감동적이면서 재미있는 이야기의 완성이 가능한 것인데, 영화 '국가대표'에서는 불필요한 부분이 지나치게 많았다는 점이 끝끝내 아쉽다. 선수들의 훈련과 도전과정, 그리고 스키점프라는 스포츠 자체에 좀 더 촛점을 맞추었더라면... 이라는 안타까움이 남는다.
부디 제 2, 제 3의 국가대표들은 '감동실화'에 집착하여 패착을 두지 않고, 스포츠 본연의 재미와 이야기로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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