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해결
첫 페이지 랜덤 글 회원가입 로그인
비공개 손님 … 2026-10-01 19:49:20
URL 복사 모바일 화면
사십대의 소회


저는 꿈이 많은 아이였습니다.

호기심도 많았고 질문하기도 좋아했습니다.

한참 어릴때는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한참 뛰어놀다가도 어느 순간엔 혼자 벤치에 앉아

그네 줄을 더 길게 하면 어떻게 될까.

짧게 하면 어떻게 될까.

정글짐은 왜 삼각형이 아닐까.

달에서 시소를 타면 어떻게 될까.

이런저런 생각을 참 많이 했던것 같습니다.

초등학생 무렵엔 우주나 공학 같은 것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과학상자나 과학키트를 가지고 이것저것 만들어보는 걸 좋아했고

머릿속으로 상상한 것들을 그림으로 그리는 것도 좋아했습니다.

보고싶은 우주 관련 책이나 과학 관련 책이 생기면 부모님께 사달라고 조르곤 했습니다.

그럴 때면 부모님은 대답이 없으시거나 나중에 사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초등학생 때는 수학과 과학을 많이 좋아했습니다.

정확한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학교에서 남학생 두 명, 여학생 두 명을 뽑아 나가는

서울시 단위의 과학대회인지 영재대회인지에도 참가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무렵 가장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친구 아버지는 의사셨고 넓은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에 살았습니다.

집에 놀러 가면 과학과 관련된 장난감이나 우주에 관한 책들이 참 많았습니다.

매번 방학이 되면 항상 그 친구는 미국이나 유럽 같은 곳에 다녀오곤 했습니다.

돌아오면 과학전시관이나 천문대 같은 곳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줬습니다.

저는 그런 곳이 있는지도 친구가 보여주는 사진을 보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부모님께 나도 가고 싶다고 졸랐습니다.

친구는 방학 때마다 새로운 곳에 다녀왔고

저 역시 방학 때마다 부모님께 졸랐습니다.

부모님은 대답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렸던 저는 그 이유를 몰랐고 투정을 많이 부렸습니다.

우리는 반지하에 살았습니다.

그렇다고 그게 부끄럽다거나

우리 집이 가난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길을 가다가 넓어 보이는 집이나 아파트가 보이면

우리도 저기로 이사가면 안 돼?

라고 묻곤 했습니다.

그럴 때면 부모님은 "안돼"라고 하셨습니다.

왜 안되는지는 몰랐습니다.

우리도 넓은 집에서 살면, 집에 책이 많이 있을수 있겠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친구 아버지가 의사라는 것도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인지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업인지도 당시엔 어렸기에 몰랐습니다.

가장 친했던 그 친구는 강남구로 이사를 간다고 했습니다.

이삿날 친구가 잘 지내라며 손목시계를 하나 줬습니다.

자기가 가장 아끼던 시계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도 몰랐습니다.

그저 시계를 선물받았다는 게 좋아서 부모님께 자랑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조금은 머리가 커지고 나서야 뒤늦게 알았습니다.

왜 부모님이 대답하지 않으셨는지.

왜 "안돼"라고 하셨는지.

왜 "나중에"라고 하셨는지를요.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우리 집 형편이 넉넉치 않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같은 관심사가 있는 친구들이 생기면서 과학동아리 같은 사모임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회비 문제로 저만 그 모임에서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부터 친구들과의 관계도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대놓고 괴롭히는 일은 없었습니다.

다만 제 앞에서 자기들끼리 속닥거리다가

저를 힐끗 보고 웃는 일이 생겼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몰랐습니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제가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은 들었습니다.

성격도 점점 소극적으로 변했습니다.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일이 줄었고

새로운 친구도 잘 사귀지 않았습니다.

사춘기까지 겹치면서 반항심도 커졌습니다.

공부도 조금씩 멀어졌습니다.

그래서인지 중학교 시절은 기억이 많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몇몇 장면만 띄엄띄엄 떠오를 뿐입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습니다.

그 무렵에는 집안 형편이 좋아졌습니다.

반지하에서 벗어나 3층 신축 빌라로 이사도 가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에서는 지금까지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습니다.

공부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도 다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친구들 중에는 과외를 받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저도 부모님께 과외를 받을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비용 때문에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지금처럼 인터넷 강의가 흔한 시절도 아니었기에

결국 동네 보습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중학교 때 놓았던 공부를 다시 하려니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수학과 과학이 그랬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좋아했고 잘했던 과목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공부하려니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습니다.

분명 예전에는 잘했는데...

중학교 시절에 생긴 간극이었겠죠.

진로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나는 뭘 해야 하지?

내가 좋아하는 건 뭐지?

그 와중에 용케 재주가 있었던 게 미술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공상하는 걸 좋아했고

상상한 것들을 그림으로 그리곤 했던게 도움이 됐었나 봅니다.

미술선생님이 제 그림을 보시고 생각치도 않았던 미술반에 들어오라고 하십니다.

미대 진학도 한번 생각해보라고 권하셨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미술로 진로를 생각했습니다.

고민하고 또 고민한뒤

부모님께 조심스럽게 미대에 가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반대하셨습니다.

미대를 준비하려면 미술학원을 다녀야 했습니다.

학원비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입시미술을 혼자 준비하기도 어려웠습니다.

한 번에 포기한 건 아닙니다.

다시 말씀드리기도 했고 설득도 해봤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은 결국 등을 돌리셨습니다.

결국 미대를 포기했습니다.

목표가 사라지니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마음도 같이 흩어졌습니다.

대학은 왜 가야 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들이 가니까 가는 건가.

좋은 직장을 얻으려고 가는 건가.

정말 배우고 싶은 게 있어서 가는 건가.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많이 했습니다.

결국 대학은 가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다만 공부까지 완전히 놓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중학교 때 공부를 놓았다가

고등학교에 와서 다시 시작할 때 느꼈던 막막함이 싫었습니다.

아주 뛰어나지도 그렇다고 뒤처지지도 않은 성적을 받았습니다.

그저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친한 친구들은 좋은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어떤 친구들은 원하는 대학에 가기 위해 재수를 했습니다.

제 사정을 알고 있는 친구들은 위로도 많이 해주더라구요.

저는 졸업 후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고 싶은 것도 없었습니다.

목표도 없었습니다.

그놈의 돈이 뭔지라는 생각에

일단 돈부터 벌자는 생각이 컸습니다.

그러다 보수가 조금 더 좋은 택배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습니다.

일은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돈을 벌고 싶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돈 때문에 못 했던 게 한이 되었나 봅니다.

가보고 싶은 곳이 있어도 못 갔습니다.

보고 싶은 책이 있어도 살 수 없었습니다.

미대도 경제적인 이유로 포기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내 삶이 또 돈 때문에 가로막히는건 싫었습니다.

그런데 돈을 벌면서도 마음은 계속 공허했습니다.

뭔가 불편했습니다.

돈은 버는데 마음은 무거웠습니다.

정작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몰랐습니다.

일을 하면서도 머리속은 계속 방황했습니다.

그러다 또래보다 늦게 입대 했습니다.

훈련병때였을겁니다.

수많은 훈련병들이 대강당 같은 곳에 모였습니다.

강단에 선 교관이 학력을 조사했습니다.

대학생 손들어.

전문대생 손들어.

고졸자 손들어.

그 수많은 훈련병들 가운데 고졸인 사람은 정말 적었습니다.

부끄럽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역하고 사회로 돌아갔을 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생각보다 많이 좁아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전문대라도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적어도 사회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을 조금 더 넓혀두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전역하는 날

집으로 되돌아오는 고속버스 안에서 몇 번이고 다짐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방황하지 말자.

더 이상 흔들리지 말자.

하나를 정하면 끝장을 보자.

그렇게 서울에 있는 전문대에 들어갔습니다.

충실히 공부했습니다.

중학교 때처럼 다시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때처럼 방향을 잃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한 번 정한 길을 그냥 계속 가보기로 했습니다.

전문대를 졸업하고 연봉 2,000만 원에 시공사에 취업했습니다.

연봉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일단 현장에서 일을 제대로 배우고 싶었습니다.

쌍욕도 먹었습니다. 뒷통수도 맞았습니다.

그런데 일을 하다 보니 욕심이 생겼습니다.

전문대 졸업에서 멈추고 싶지 않았습니다.

운 좋게도 근무하던 현장이 야간대학과 멀지 않았습니다.

직장 선배님들께 양해를 구하고 대학을 갔습니다.

낮에는 현장에서 일했습니다.

퇴근하면 학교에 갔습니다.

기사 자격증 공부도 했습니다.

그렇게 일과 학사, 기사 공부를 병행했습니다.

학사도 취득했고 기사 자격증도 땄습니다.

시공 한 길만 파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같이 졸업한 대학 동기(전문대, 대학)들 가운데 시공사로 취업한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3년쯤 지나고 보니 저만 남아 있었습니다.

남들이 퇴근한 뒤에도 혼자 남아 일을 들여다보는 날이 많았습니다.

도면도 다시 봤습니다.

서류도 다시 봤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었습니다.

업무에 필요한 토목 프로그램도 하나씩 익혔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편하고 효율적으로 일해보고 싶어서 VBA와 파이썬도 공부했습니다.

기사 자격증도 추가로 취득했습니다.

필요한 게 생기면 닥치는대로 하나씩 배우고 익혔습니다.

이제는 기술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죽자살자 일하고 공부하는 이유는 결국 돈입니다.

부자가 되고 싶지만 현실적으론 힘들것 같습니다.

그저.. 저나 내 가족이 무언가를 배우고 싶을 때

제가 어렸을때처럼 돈 때문에 못 하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해보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돈 때문에 포기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제가 어릴 때 그랬던 것처럼 형편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일은

내 가족에게는 없었으면 합니다.

669명이 읽었어요. 216.73.217.52

report_gmailerrorred 첨부이미지는 로그인을 하셔야 볼 수 있습니다.
16
1 비공개 손님 … 2026-10-01 19:52:39
어른이십니다.
2 비공개 손님 … 2026-10-01 19:55:50
고생하셨습니다!
3 비공개 손님 … 2026-10-01 21:51:24
원더걸스 소희인줄 (미침)
4 비공개 손님 … 2026-10-01 22:12:52
오늘보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분이네요 멋있습니다
정말
5 비공개 손님 … 2026-10-01 22:55:30
앞날에 축복이 가득하기를
6 비공개 손님 … 2026-10-01 23:00:23
잘 하고 계십니다
쉽지 않네영 헤헤
7 비공개 손님 … 5시간 전
저와 비슷한 유년 시절을 보내신 것 같지만, 생각의 그릇은 훨씬 크시군요. 존경스럽네요...
댓글을 작성하실 수 없습니다.
(권한이 없는 회원레벨)
목록으로
△ 이전글: 한동훈: 진보 괴멸은 차근차근 잘 진행되고 있겠지요 [5]
▽ 다음글: (SOUND)대만에서 일어난 충격적인 사건
이용약관 | 광고/제휴 | 개인정보취급방침 | 문의/신고 | 모바일 TE31 | 서버 부하 : 5.25%
실시간 Issue 커뮤니티 TE31 [알지롱] ⓒ 2002-2026
TOP arrow_upw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