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성현 감독은 과연 뭘 만들고 싶었을까요? 히트맨의 이중생활, 싱글마더로서의 고충,
시대를 관통하는 퀴어 코드까지 로그라인에서는 흥미를 유발하는 구석이 많았습니다.
오프닝을 여는 황정민의 어눌한 왜국말 연기와 허세 가득한 액션 연출은 B급 테이스트로서는
어느 정도 합격점을 줄 만 했지만 각본의 완급 조절이 점점 탄력을 잃어버리고 풀어지다
지루함에 하품이 날 만큼 흐트러지고 말았습니다.
코믹하면서도 피가 낭자한 <존 윅> 시리즈가 관객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를 받는 이유는
개연성이 완벽한 각본도 아니고 캐릭터의 서사가 복잡하기 때문만도 아닙니다.
존 윅이 움직이는 동기는 단순하기 그지 없고, 문제를 해결하려 할 수록 더 많은 피를
손에 묻히게 되고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들이 아이러니를 만들어내면서 캐릭터의 개성을
더욱 더 공고하게 만드는 지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분식집에서 벽을 사이에 두고 오가며 격렬한 전투를 벌이는 시퀀스에서는
액션 장면의 합을 맞추느라 주연 배우들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을지
안타까울 정도로 품이 많이 들어갔음을 유추할 수 있었는데요, 최종국면에 이르러
클라이막스가 되어야 했을 차대표와의 결투장면이 중국 무협지처럼 전시되는 부분이나
싱겁기 그지 없는 한 합으로 결말을 전환시키는 부분 등, 따지고 보면 등장인물들은
다들 전설적인 킬러로서 길복순의 위명에 벌벌 떨지만 실제로 캐릭터 다운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는 것은 분식집에서 칼부림 속에 빙긋 웃어보이는 단 한 컷 뿐 아니었을지...
또한 결말 이후 길복순의 행적이 전혀 궁금해지지 않는 허망한 마무리 역시 백미...
사견입니다만 사춘기 자녀에게 무관심할 수 밖에 없는 어머니로서의 복순과
피비린내가 가시지 않는 직장에서의 엘리트로서의 양면성을 훨씬 더 코믹하거나
스릴 넘치는 서스펜스로 충분히 풀어갈 수 있는 러닝타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맥거핀에 지나지 않는 '회사'들의 정례회의나 납득하기 어려운 '규칙' 따위 그저
등장인물들의 대사나 몇 가지 소품만으로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분량을
중견배우들을 소집해가며 낭비한 점, 아역배우들의 분량 역시 공감할 수 있는 건덕지를
줄 틈도 없이 그저 퀴어코드를 어필하기 위해 현실이었다면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무리한 설정으로 유야무야 넘기려 한 점 등 감독의 불성실함이 돋보이는 망작이었습니다.
차라리 초반에 복순의 놀라운 암살 실력을 몇 개의 빠른 시퀀스로 후다닥 보여주고
그놈의 되도 않는 규칙을 어기는 바람에 딸과 함께 도피하는 복순을 주변 킬러들이
현상금 걸고 잡으러다니는 동안 벌어지는 난리 부르스였다면 혼자서 고군분투하는
존 윅과 다르게 모성애와 비정함을 양면에서 다룰 수 있는 B급 액션이 되지 않았을까요?
도대체 이런 개같은 각본을 보고 전도연씩이나 되는 배우가 흔쾌히 사인했다는게
믿어지지 않는 수준의 참사가 아닌가, 이렇게 K-콘텐츠는 말라 죽어가는 것인가 싶네요.
방화 | 3391명이 읽었어요. 18.97.9.17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