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말 할 것 없이 스파이디가 첫번째입니다.
마블 코믹스에서 1985년 캐넌 필름스에 판권을 내준 이후로
1996년까지의 지난한 소송 끝에 컬럼비아-트라이스타, 지금의 소니 픽처스에서
'영구적'으로 스파이디의 실사화 판권을 소유하게 되었고 2002년 샘 레이미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탄생시킨 <SPIDER-MAN>이 전설의 첫 페이지를 열게 되었다는 사실은
모두 다 알고 계신대로입니다.
스파이디가 처음 출판된 1962년 당시에도 10대의 어린 나이,
NERD, GEEK, 빈곤한 중하류 인생의 조합을 가진 불행한 캐릭터는
세계 최초 타이틀을 달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모티브가 된 거미라는 절지동물 역시
친근함 보다는 괴기스럽고 흉칙한 이미지로 정의를 지키는 히어로로서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우려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우연히 방사능에 노출되어 변이된 거미에게 물려
초능력을 얻었지만 덤벙대거나 귀찮다는 이유로 혹은 제 분을 못 참고
실수를 연발하여 스스로 저지른 실수를 가까스로 봉합하는 그의 모습에서 독자들은
입체적인 캐릭터와 공감할 수 있는 여지를 얻었고 지금까지 꾸준한 인기 역시 이를 반영합니다.
아이언-맨 이후로 성공한 양덕 케빈 파이기의 지휘 아래 차근차근 토대를 쌓아
지금은 당당히 금자탑을 이룬 MCU의 인피니티 사가에서 소니 픽처스와의 극적인 협상 끝에
스파이디가 등장하게 되면서 부터 올드 팬 부터 새롭게 마블 유니버스를 접하게 된
젊은 관객까지 톰 홀랜드가 연기한 MCU의 스파이디를 사랑하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뻔한 수순이었습니다.
물론 기본적으로 마블 코믹스의 캐릭터들은 성격적인 결함을 간직하고 있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캐릭터들의 드라마가 극의 재미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 주기에
옆동네의 완벽초인이나 강박증에 걸린 박쥐 남자나 반신반인의 짱쎈 언니 역시
한결같이 올곧은 모습만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페이즈3까지 달려온 인피니티 사가에서 스파이디는 자신만의 매력을 한껏 선보였고
솔로 무비 두 편을 통해 철없는 히어로의 모습을 훌륭하게 재현하며 어쩌면 톰 홀랜드의
마지막 솔로 무비가 될 뻔했던 본작에 대한 기대치를 극한까지 올려놓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트릴로지를 거쳐 마크 웹이 감독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으로의 리부트까지
언제나 스파이디 실사 영화 시리즈는 첫 시퀀스를 스파이디의 탄생에서부터
차곡차곡 서사를 쌓는 방식으로 과도한 친절을 부려가며 독자적인 세계관을 구축하는 식으로
제작되어 왔지만, MCU에서는 <시빌 워>를 통해 이미 불완전하지만 초인으로서
충분히 제 몫을 해낼 수 있는 피터 파커를 선보임으로서 <홈 커밍>에서는 영웅의
기원 없이 메인 빌런으로 등장하는 버드맨..아니 벌쳐와의 대립에 주목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캐릭터를 다듬어 내는 데 성공합니다.
두번째 작품인 <파 프롬 홈>역시 10대 청소년으로서의 피터가 토니로부터
너무나 막중한 책임을 떠맡는 것을 두려워 하기에 미스테리오의 함정에 빠져드는 부분을
설득력 있게 전달함으로써 캐릭터에게 공감할 수 있는 여지를 풍부하게 마련해두었습니다.
중언부언 시작했지만, 결론부터 내놓자면 <노 웨이 홈>이 그리는 스파이디는
코믹스 원작이나 기존의 소니 픽처스 실사영화 시리즈에서 항상 주지시켰던
고독한 영웅으로서의 회귀, 분열된 자아를 본인의 선한 마음과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닥칠 위협으로부터 멀리 떨어뜨려 놓기 위해
어떻게든 스스로의 정체를 숨겨야 하는 고민을 통해 우리가 지금껏 잘 알고있던
원조 스파이더-맨의 회귀에 가깝습니다.
MCU에서 처음 스파이디가 등장했을 때 부터 골수 팬들이 지적하던
토니 스타크라는 멘토에게 너무 많은 것을 의지하고, 유사 부자관계처럼 읽을 수 있는
진부한 가족주의, 토니가 사망한 다음에는 또 다른 어른들에게 정신적으로 기대려다
더 큰 재난에 휩쓸리는 유약한 부분을 다스리고 이제서야 비로소 홀로 설 수 있는
자립형 히어로로서, 혹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리부트'에 해당하는 변화를 겪는데
문제는 이 핵심적인 플롯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너무 많은 것들을
억지로 우겨 담으려고 한 것이 약점으로 느껴집니다.
스파이디 뿐만 아니라,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빌런들은
유독 결핍과 관련된 원인으로 흑화되는 경우가 많았고
실제로 간추려져 실사영화 시리즈에 등장한 빌런들 역시
먹고사니즘으로 인해 범죄를 벌이는 벌쳐를 제외한다면
크고 강력한 힘에 도취되어 거꾸로 그 힘에 먹히는 메타포를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기에 대비되는 스파이디의 선행과 영웅적인 행보가
더욱 돋보이는 것이 원작이 가지고 있는 스파이디의 큰 매력 중 하나인데
개연성이 부족한 각본이 그 빈틈을 더욱 엉성하게 꿰멘 느낌입니다.
물론 20년전의 토비 맥과이어나 트릴로지를 완성하지 못하고
하차하게 된 앤드루 가필드, 그에 대응하는 수퍼 빌런들까지 크리스마스 선물세트처럼
화려한 볼거리와 팬들의 팬ㅌ..아니 눈시울을 적실만한 적재적소의 양념까지
잘 버무려 시청각을 통해 말초적인 즐거움을 주지만 다섯 편의 작품에서 산전수전
공중 및 우주전을 겪으며 차곡차곡 레벨업 해 정신적으로도 성숙해졌고
더 넓은 시야를 갖고 진정한 영웅으로 변모해 나가는 스파이디를 고통과 번민에 빠뜨리는
악의적인 조건들을 켜켜이 덧붙여서 이후 이어져나갈 세 편의 솔로 무비를 통해
어디까지 나락에 떨구며 새디스틱한 쾌감을 얻게 될런지 불안하기도 합니다.
시각효과와 액션 시퀀스를 위해 과감하게 생략한 자질구레한 설정의 충돌이나
점프 컷 처럼 붕 떠있는 씬과 씬의 불협화음은 차치하고라도 독립적인 한 편의 영화로서
본작은 결코 좋은 평가를 내리기 어려운 범작에 그친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물론 배우들의 열연과 압도적인 CG, 기존작의 스코어를 편곡하여 적절한 타이밍에
치고 빠지는 사운드 트랙, 뒷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드는 텁텁함까지 잘 조립되어
결코 '못 만든' 영화라고 말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3> 못지않게 아쉽습니다.
모든 스파이디 관련 작품을 관통하는 하나의 문구―
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
이걸 제작진도 제발 깊게 새겼으면 좋겠습니다.
파스칼 픽처스의 대표이자 전권을 휘두르며 작품을 제작하는
에이미 파스칼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검은 야욕을 쿠키에 뿌리고 말았고
마려운 소변을 참으며 낑낑대다 올라온 닥스2 예고편은 아직까지
기대감을 충족시켜주지 못했으며,
멀쩡한 신분도 가족도 돈도 학력도 여친도 없이 길바닥에 내팽개쳐진
MCU에서 가장 불쌍한 히어로의 후일담은
2~3년 뒤 다시 은막을 통해 만나게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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